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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최덕수·박래전의 잇단 분신…“광주를 잊지 말라” / 박정기

등록 2012-02-19 19:20

조성만 열사 장례를 준비중이던 1988년 5월18일 분신해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힌 단국대생 최덕수씨의 묘비에 ‘광주는 살아 있다. 끝까지 투쟁하라’는 유언이 새겨져 있다.(왼쪽) 뒤이어 6월4일 ‘광주를 기억하라’며 몸을 사른 숭실대생 박래전씨의 장례식이 교정에서 열리고 있다.(오른쪽)
조성만 열사 장례를 준비중이던 1988년 5월18일 분신해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힌 단국대생 최덕수씨의 묘비에 ‘광주는 살아 있다. 끝까지 투쟁하라’는 유언이 새겨져 있다.(왼쪽) 뒤이어 6월4일 ‘광주를 기억하라’며 몸을 사른 숭실대생 박래전씨의 장례식이 교정에서 열리고 있다.(오른쪽)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53
서울대생 조성만이 운명한 지 사흘 뒤인 1988년 5월18일 단국대생 최덕수가 분신했다. 조성만의 장지를 광주 망월동 묘역으로 정하고 장례식 준비로 경황이 없을 때였다. 조성만의 주검은 백병원에서 명동성당 영안실로 옮겨 안치돼 있었다. 오후나절, 소식을 들은 박정기는 유가협·민가협 회원들과 함께 순천향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날은 바로 5·18 광주항쟁 8돌이었다. 최덕수는 68년 전북 정읍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시절 대부분의 열사들처럼 그도 숨질 때까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87년 장학생으로 단국대에 입학한 그는 대선 기간 ‘민중 후보’ 백기완을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88년엔 형편이 어려워 휴학을 하고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분신 전날인 5월17일, 최덕수는 단국대 교내에서 열린 ‘광주 영령 추모식’에서 성명서를 낭독했다. “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을 겪은 지 8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아직도 진상은 규명되지 않은 채 허구적인 ‘말의 잔치’만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80년 이후 해마다 5월이면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와 투신과 분신이 이어졌다. 지난해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는 했지만 신군부세력의 재집권으로 광주항쟁 등 5공화국의 범죄와 비리에 대한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 단국대 교정은 학교 축제인 대동제 준비로 분주했다. 최덕수는 교정을 둘러본 뒤 총학생회실을 찾아가 말했다.

“오늘이 ‘5·18’ 여덟 돌인디 학교 분위기가 왜 이런대요? 광주항쟁의 뜻을 되새겨야 하는 날인디.”

그는 혼자 핸드마이크를 들고 ‘5·18 정신의 뜻을 되새기자’고 학생들에게 외쳤다. 시계탑 주변을 오가며 홀로 선전 활동을 벌이던 그는 오전 11시께 몸에 불을 붙인 뒤 외쳤다.

“광주항쟁 진상 규명”, “국정조사권 발동”,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자”


학생들은 그를 진화한 뒤 순천향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서 그는 친구들에게 당부했다.

“광주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광주를 잊어선 안 돼.”

저녁 무렵 학생들은 환자를 화상 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겼다. 박정기도 한강성심병원으로 따라갔다. 그는 이소선과 함께 중환자실에서 최덕수를 만났다. 박정기는 환자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꼭 살그라. 살아내야 한대이.”

입술만 움직일 뿐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사투중이던 9일 동안 박정기는 불경을 외며 소생을 기도했다. 하지만 5월26일 스물한 살의 나이로 최덕수는 끝내 세상을 등졌다.

5월30일 장례식과 노제를 마친 그의 운구 행렬은 모교인 전북 정읍의 배영고를 거쳐 광주로 향했다. 이날 운구차엔 숭실대 학생 박래전이 타고 있었다. 그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도착할 때까지 운구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긴 시간 꼼짝 않고 운구를 잡고 앉아 있는 학생에게 최덕수의 아버지 최종철이 물었다.

“왜 말 한마디 없이 덕수의 관만 붙잡고 있냐?”

박래전은 멍하니 최종철을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그는 낯선 학생의 모습이 꺼림칙했다. 최종철은 아들이 떠난 뒤 울화와 지병으로 2009년 세상을 떠났고, 최덕수의 어머니 고순임은 폐지를 모으는 일을 하면서 홀로 생계를 이었다. 그는 아들의 뜻을 이어 지금도 유가협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래전은 5일 뒤인 6월4일 숭실대 학생회관 5층 옥상에서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하며 구호를 외쳤다.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 파쇼 타도하자”,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이날은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 100일째였다.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던 박래전은 3통의 유서를 학생회실 책상 서랍 속에 남겨두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한강성심병원으로 달려간 박정기와 유가협 회원들은 유서를 받아들었다.

“어머님, 아버님께. 천하의 몹쓸 불효자 막내가 드립니다. 이제 두 분의 곁을 떠나려 함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러나 부모님께 자신의 죽음을 설득하고 있는 편지를 차마 다 읽을 수 없었다. 박정기에겐 박종철의 편지였고, 이소선에겐 전태일의 편지였고, 배은심에겐 이한열의 편지였기 때문이다. 박래전은 유서를 이렇게 끝맺고 있었다.

“절대로, 절대로 저의 죽음을 비관하시지 마세요. … 어떻게든 살아서 아들과 함께 싸우는 이 땅의 어머님, 아버님이 되세요. 절대로 목숨을 버리시면 안 됩니다. 어머님, 아버님. 모질게 먹은 마음이라 눈물조차 흐르지 않아요. 어머님, 아버님. 안녕히. 6월2일 불효자 막내 드림.”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또다른 유서에서 박래전은 전국의 학생들을 향해 물러섬 없는 투쟁을 요청했다.

“이제 나는 이 세계를 버리려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되기에. 나의 죽음이 마지막 죽음이길 바란다. … 피눈물로,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일어나라! 백만학도여! 나의 죽음을, 선배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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