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센터 내 여행학교에서 가진 도보여행 ‘마을프로젝트’ 전시를 촬영하고 있는 김민지씨.
비진학 청소년들이 말하는 삶
졸업식이 끝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새 학기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코트와 교복, 가방, 신발을 포함한 중고등학생의 등교 패션이 100만원을 육박한다는 얘기가 들리는 한편, 대학 새내기들은 학교생활 지침을 안내받고 선배들과 대면식을 한다.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새 학기를 기다리는 동안,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08년 83.8%에 이르렀던 전국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이 해마다 조금씩 줄어 2011년에는 72.5%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곳은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간판이자 취업을 위한 최고 스펙이다. 중고등학생들이 대학이 인생의 전부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대학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여기며 자신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 있다.
또래집단 만날 기회 적어 아쉬워
청소년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라이프 코칭을 하고 있는 이어진(22)씨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원래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유학을 가려고 하다가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혼자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 “책은 물론 여기저기 강의도 찾아다니며 듣고, 코칭센터에서 공부도 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에서 발행하는 심리 관련 자격증 심사를 받고 있다.” 이씨는 솔직히 처음 대학을 떠올렸을 때는 자율적이고 원하는 공부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교수님의 일방적 가르침에다 학점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공부까지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접었다고 한다.
이씨는 기성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기성세대가 요즘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가장 미안해야 할 부분은 고민해야 할 것들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부모가 대신 고민을 해주고, 학원도 알아서 보내주니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행복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마땅히 해야 할 고민들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의 권유로 먼저 코치 일을 시작한 어머니는 동종업계 선배이자 조언자이다. 어머니 유연경씨는 “솔직히 한국 사회에는 지연과 학연이 고착화돼 있다.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노력을 했을 때 학력이 없어서 평가절하된다면 속상할 것 같다. 하지만 대학을 강요할 순 없다. 믿고 지켜볼 뿐이고, 어떤 일을 하든 아이가 행복하다면 상관없다”고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는 길이 쉬운 길은 아니다. 하지만 소속이나 정해진 틀 없이 바로 사회에 뛰어들고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비진학 청소년들의 고충은 또래집단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한 점이었다. 대다수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과 일하다 보니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토로했다. 또한 일을 하다가 오히려 공부나 대학의 필요성을 깨닫기도 한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강하나(20)씨는 올해 초부터 서울대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다. 또래가 한명도 없는 탓에 분위기 맞추는 게 힘들어 처음엔 운 적도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어려서 귀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기보다 존중해 준다. 그래도 일하다 보면 어려움도 있고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오히려 이 일을 하면서부터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고 말한 강씨는 “내 인생에 대학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에 대학에 가볼까 한다. 지금 일하는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오래 일하기 위해 공부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두려워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라 비진학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일단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기보다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막연히 꿈꾸고 생각만 하지 않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했다. 또한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있다면 여기저기 직접 찾아 나섰다. 김민지(21)씨는 지금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이와 관련한 출판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김씨는 고2 때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가서 18살 때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아져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주변에 인맥을 찾아 인문학도 배우고 연출과 촬영, 편집 기법까지 배워 모든 걸 혼자 다 한다. “원래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아서 고2 때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번 시험이 끝나면, 수능만 끝나면 하면서 미래를 살았던 것 같다. 문득 그 미래가 언제까지나 끝없는 미래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부모님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기성세대에게 미래를 인질로 협박당하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 택한 길을 걷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처럼 고민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자 했다. “내가 본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사람들의 ‘샘플’이 됐으면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게 모험이든 안정이든 옳고 그른 건 없지만 자기 머릿속에서 ‘이건 아니야!’라고 외치는데도 나만 이런 것 같아서 무서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참는 친구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 꽤 많다고.”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의 안재민 선생은 “대학진학률이 전보다 낮아진 건 긍정적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대학만 가겠다는 아이들도 많다. 요즘은 평생교육 시대라 공부할 기회가 과거보다 다양해져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대학을 가든 취업이나 창업을 하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학교 때부터 절친인 서인석(22)씨와 김준혁(22)씨는 다른 친구 한명과 ‘세 개’라는 대안적 삶을 꿈꾸는 청년 집단을 만들어 활동중이다. 이들은 <우리는 인문학교다>라는 책도 내고, 청소년문화축제를 직접 기획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도 부천에 있는 고리울 청소년문화의집과 덕성여대, 삼각산고등학교 등 여기저기서 강의를 했거나 하고 있다. 서씨는 “대학만 바라보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우리가 진짜 필요한 공부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공부는 필요하지만 꼭 학교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가끔 우리를 이해 못하거나 이상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한테는 이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도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이 대두되고 있는데, 대부분 권위적이고 승자독식 구조다. 어떤 경쟁을 할 것인가 고민할 통로조차 차단해버린다. 일단 자신이 어떤 공부를, 왜 하고 싶은지 본인에게 물어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취재를 통해 만난 비진학 청소년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목적을 가지고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더딜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분명히 내딛는다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쉽고 당연한 길이, 또 다른 이에게는 부담스럽고 내키지 않는 길일 수 있다. 자신의 나이만큼 고민하고 방황하며 각자의 인생을 당당히 살아가길 바란다. 이들의 미래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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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학생을 상담하고 있는 이어진씨.
서울대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강하나씨.
두려워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라 비진학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일단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기보다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막연히 꿈꾸고 생각만 하지 않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했다. 또한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있다면 여기저기 직접 찾아 나섰다. 김민지(21)씨는 지금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이와 관련한 출판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김씨는 고2 때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가서 18살 때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아져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주변에 인맥을 찾아 인문학도 배우고 연출과 촬영, 편집 기법까지 배워 모든 걸 혼자 다 한다. “원래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아서 고2 때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번 시험이 끝나면, 수능만 끝나면 하면서 미래를 살았던 것 같다. 문득 그 미래가 언제까지나 끝없는 미래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부모님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기성세대에게 미래를 인질로 협박당하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 택한 길을 걷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처럼 고민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자 했다. “내가 본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사람들의 ‘샘플’이 됐으면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게 모험이든 안정이든 옳고 그른 건 없지만 자기 머릿속에서 ‘이건 아니야!’라고 외치는데도 나만 이런 것 같아서 무서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참는 친구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 꽤 많다고.”
구미시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주최한 청년멘토 워크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김준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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