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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유가협 합류한 박래군…동생 뜻이어 인권운동가로 / 박정기

등록 2012-02-20 19:53수정 2012-02-20 21:56

1988년 6월 분신한 박래전 열사의 친형인 박래군씨가 2007년 6월 숭실대에서 열린 ‘박래전 인권기금 전달식’에서 민주화운동 보상금 1억5000만원을 인권재단 사람에 기증하는 뜻을 밝히고 있다. 박씨는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유가협 활동에 참여하며 인권운동가가 됐다.  사진 <민중의소리> 제공
1988년 6월 분신한 박래전 열사의 친형인 박래군씨가 2007년 6월 숭실대에서 열린 ‘박래전 인권기금 전달식’에서 민주화운동 보상금 1억5000만원을 인권재단 사람에 기증하는 뜻을 밝히고 있다. 박씨는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유가협 활동에 참여하며 인권운동가가 됐다. 사진 <민중의소리> 제공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54
박래전은 1988년 6월6일 밤 12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박래전이 분신하던 6월4일, 그의 형 박래군은 20일 전 강남성모병원에서 추락사한 연세대 선배 고정희의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밤늦게 귀가해 자고 있는 그를 집주인이 깨워 동생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박래군과 박래전. 두 살 터울의 형제는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에게 “창자까지 이어져 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우애가 깊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형제는 학생운동가로 활동했고, 박래군은 노동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겪었다.

박래군은 가족 대표로서 장례와 관련한 모든 사항을 위임받았다. 그 덕분에 유가협과 유가족 사이 소통이 원활했다. 박래전의 장례는 6월12일 ‘민중해방열사 고 박래전 민주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장지는 이소선 어머니의 설득으로 전태일이 있는 남양주시 마석의 모란공원으로 결정했다.

박래군은 이를 계기로 처음 유가협을 알게 되었다. 당시 외부에 알려진 단체는 민가협이어서, 유가협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유가협이 널리 알려진 건 88년 10월17일 의문사 진상규명 장기농성에 돌입한 이후다.

박정기와 박래군의 만남도 이때 시작되었다. 박정기는 박래군과 유가족을 위로하고 함께 장례를 준비했다. 박래군이 본격적으로 박정기와 더불어 유가협 활동을 한 것은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이 시작된 지 열흘가량 지나서였다.

“광주는 살아있다”는 말을 남기며 잇달아 세상을 떠난 학생 최덕수의 어머니 고순임과 박래전의 형 박래군은 유가협에서 각별한 관계로 지냈다. 고순임은 아들의 장례 기간 내내 자리를 지킨 박래전과 유가협의 사무국장으로 만난 박래군을 자식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내가 덕수 보고자퍼하믄 우리 래군이가 내 손을 꼭 잡고 ‘엄마, 내 속도 무지 아퍼잉. 그니까 울지 마. 우리 웃고 살게잉.’ 글케 위로해줘요.”

여느 유가족이 그렇듯 박래군도 장례 때보다 장례를 마친 뒤 비로소 동생의 부재를 실감했다. 3개월가량 방황의 시간을 보낸 그는 유가협에 가입했다.


박래전의 장례 직전이 6월10일. ‘청년학생 6·10 민주화투쟁 1주년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이 연세대에서 열렸다. 출정식엔 전국에서 2만여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이한열의 장례식을 준비하며 결의하고 건설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명동성당에서 할복 투신한 조성만의 뜻을 잇기 위해 ‘판문점 출정식’을 열었다. 이날의 행사는 대중적인 통일운동의 신호탄이 되었다. 학생들은 임진각을 거쳐 판문점에서 남북청년학생회담을 열 계획이었다. 전날 김일성대학에서 발대식을 한 북한의 학생대표단 13명은 회담을 위해 오후 3시 판문점에 도착했다.

박정기는 이날 연세대에서 판문점으로 떠나는 학생들을 배웅했다. 유가협 회원들은 연세대 교문을 오가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깃발을 펄럭였다. 대나무 깃대에 걸린 깃발엔 유가협의 상징적인 문구인 “산 자여 따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이 문구는 청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가협 회원들이 가는 자리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출정식 행사를 마친 뒤 수십명의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교문을 향해 나섰다. 교문 바깥엔 전경들과 페퍼포그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정기와 유가협 회원들은 앞장서 나서는 학생들을 붙잡아 격려하고 뙤약볕에 흘린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학생들은 교문 바깥으로 나서며 구호를 외쳤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다연발 최루탄이 쏟아졌다. 최루탄은 교문 안까지 뿌옇게 밀려들어왔다. 전경들이 달려들었지만 앞장선 청년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하며 연행되었다. 다시 또 한 무리의 학생들이 교문을 향해 나아갔다. 판문점을 향한 발걸음은 교문 앞에서 매번 좌절되었지만 다시 한 무리의 학생들이 교문을 향해 나아갔다.

박정기는 최루탄에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지만 학생들을 끌어안으며 배웅했다. 앞장선 학생들도, 후미에서 바라보는 학생들도, 유가협 회원들도 모두 울었다. 박정기는 연행될 게 뻔한 길을 자초하는 학생들의 용기에 탄복하면서도 말리고 싶었다. 최루탄은 공중에서 끊임없이 쏟아졌고, 학생들은 교문 밖으로 판문점을 향해 나아갔다.

“매우 비장한 날이었지. 내는 뒤에 있는데 학생들이 개처럼 얻어맞고 끌려가는 걸 보는 심정이 어떻겠나. 차마 보낼 수가 없는데 보내야잖아.”

남북청년학생회담은 전경들에게 가로막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날 출정식에서 학생 151명이 다치고, 800명가량이 연행되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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