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협은 1989년 12월 한울삶 집들이에 앞서 열사들의 영정사진부터 만들어 벽을 채웠다. 사진은 2007년 12월 인혁당 유가족들의 성금으로, 20년 사이 늘어난 열사들의 영정사진을 추가로 제작해 전시한 날이다. 가운데가 고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이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74
1989년 12월 한울삶 집들이를 하기 앞서 유가족들이 맨 처음 한 일은 자식들의 영정사진을 한쪽 벽에 걸어두는 것이었다. 전국의 회원들이 영정을 안고 서울에 올라왔다. 박정기는 표구점에서 배운 솜씨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끼워넣어 액자를 만들었다. 영정이 없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땐 일반 사진을 들고 사진관에 가서 확대했다. 확대한 사진은 흐려진 부분을 직접 그리고 매만졌다. 박정기는 그 후로 분신 사건이 발생하면 맨 먼저 고인의 사진을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집들이를 하는 날, 영정사진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자식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싶었던 유가족들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날이었다. 회원들은 벽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사글세와 전세를 전전하던 가난한 가족이 집을 얻었을 때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동안 사무실과 숙소가 없어 식당과 움막집을 떠돈 일들, 기독교회관 3층 시멘트 바닥에서 겨울을 이겨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매일 밤이면 최루탄 범벅이 되어 온기 없는 농성장으로 돌아가던 이들에게 이제 돌아갈 집이 생긴 것이다.
박정기는 어느 재야단체도 할 수 없는 일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에 마음이 들떴다. 집을 갖고 있는 재야단체는 거의 없었다. 유가족들에겐 꼭 필요한 집이었다. 다른 단체는 일꾼들이 들고 나는 곳이지만, 유가협은 한번 회원이 되면 머무는 곳이었다. 사무실을 얻을 수 없는 처지에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한울삶에서 영정사진이 있는 벽면은 상징적인 공간이자 유가족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리이다. 박정기는 사진 아래쪽에 앉고 눕기를 좋아했다. 그는 한울삶의 영정사진과 함께한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변변찮은 밥도 나누며, 정말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를 보시기 바란다. … 죽은 자식들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있으니 우리는 한울삶에 가면 내 집에 간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그 얼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못다 한 투쟁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 고민한다. 나나 유가협에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그 얼굴들도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들도 우리와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눈에 뭐가 씌어서가 아니라 이젠 한울삶의 그 얼굴들은 죽은 이들의 얼굴이 아니라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는 얼굴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볼 때마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날에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그때에 우리들 삶이 한울삶 그 뜻대로 평등해지리라 믿는다.”
박정기와 유가족들은 시시때때로 벽면에 걸린 자식들의 사진을 보며 혼잣말했다.
“갔다 오마.”
“내 오늘도 투쟁하러 간다. 기다리고 있그라.”
현재까지 불면증을 겪는 유가족들은 한울삶에 오면 잠이 잘 온다고 한다. 불면증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박정기는 한울삶만 들어서면 마음이 탁 트인다. 그는 서울에 도착하면 맨 먼저 박종철의 영정 앞에서 액자를 쓰다듬고 어루만진다. 다른 지방의 유가족들도 한울삶에 오면 자식을 먼저 찾는다.
유가협엔 감기가 걸렸을 때 영정을 보면 낫는다는 말이 있다. 영정은 그네들에게 위로의 사진이고, 치료의 사진이다. 서울의 자녀와 친인척을 제쳐두고 한울삶만 오갈 만큼 이곳은 유가족들의 ‘서울 집’이 되었다.
외부의 방문객들은 한울삶에 들어서면 맨 먼저 영정사진 앞에서 묵념을 했다.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벽면 가득한 열사들의 영정 앞에서 놀라 걸음을 멈추고 할 말을 잃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먹먹한 심정으로 하나하나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반면에 유가족들은 영정사진이 있는 방을 편안해했다. 집에서 혼자 자식의 사진을 볼 땐 애달파하지만 한울삶에서 다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편안한 기분이 든다.
한울삶을 얻은 뒤 유가족들은 깊은 밤 농성장에서 나누던 자식들 살았을 적 추억들을 이어갔다. 어머니·아버지들은 그 추억을 수없이 되새김하면서도 마치 처음 말하고 처음 듣는 것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웃다가 울다가 보면 새벽이 밝아오곤 했다. 누군가 내일의 투쟁을 위해 잠들자고 투정을 부릴 때도 있었다. 이소선·박정기·배은심은 한울삶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박래군도 1년 동안 한울삶에서 살았다.
열사들의 영정사진과 유가족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한울삶을 마련한 이후 유가협 활동은 한층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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