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으로 학교폭력 뛰어넘기
함께 부대끼면서 자신과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가
이루고 싶은 꿈 있으면 누구를 괴롭힐 시간도 없어
함께 부대끼면서 자신과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가
이루고 싶은 꿈 있으면 누구를 괴롭힐 시간도 없어
초등학교 6학년인 ㄱ군(13)은 3학년 내내 왕따를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학원에 가기 위해 챙겨온 버스비를 뺏고 왜 때리냐고 따지면 재미삼아 때린다고 했다. 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그 친구들은 혼난 뒤 더 심하게 때렸다. 결국 ㄱ군은 학교를 옮겨야만 했다. 새로운 학교에서는 모든 게 달랐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두레활동을 하며 모든 학생과 교사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건의사항을 이야기했다. 감성무용도 배웠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내 감정을 표현하니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았다. 또 다른 친구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해서도 주제를 정해 토론을 하면서 친구들과 사이도 가까워지고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지금은 모든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생활이 너무 즐겁다.”
ㄱ군의 학교는 부산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금성초등학교다. 2006년 당시 전교생 46명으로 3년 뒤 폐교 예정 후보 학교로 지정됐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은 문화적 경험이 절실했다. 이대로 학교가 문을 닫게 놔둘 수 없다는 생각에 뜻이 맞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모여 학교를 변화시켰다. 그 결과, 지금은 전교생이 120명을 넘고 전학을 오고 싶다는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문화예술교육이 있었다. 이 학교는 지난 4년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예술꽃 씨앗학교’로 지정돼 ‘문화예술교육 중심의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한 바 있다. 7년 전부터 꾸준히 문화예술교육을 해오고 있는 최윤철 교사는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교과과정을 통합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혀 교과서에 문화예술 분야를 넣어서 재구성해봤다. 그러니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오히려 수업시간을 기다렸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문화예술을 교과목뿐만 아니라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행사에 접목시켰다. 1, 2학년은 숲에 들어가 체험활동 식으로 자연에서 다양한 놀잇감을 찾았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보고 봄나물을 캐서 다 같이 비빔밥도 해먹었다.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3, 4학년은 스토리텔링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감성무용을 도입했다. 저학년이 놀이 중심이라면 5, 6학년은 창조성을 더해 생태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연물을 이용해 학교 안내게시판도 직접 만들고 영화를 통해 말하기 수업을 하거나 마을의 문제점을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구청에 건의하기도 했다.
최 교사는 “문화예술교육이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줘야 한다. 그렇게 못하니까 스트레스를 주위에 풀며 옆에 있는 만만한 아이를 괴롭히게 된다. 아이들은 충분히 뛰놀고 부대끼면서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알고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 학부모는 “아이가 온갖 스트레스로 틱장애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병을 얻어서 약을 먹었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며 “모든 학원을 중단하고 이 학교에 온 뒤 자연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과 공부를 접했다. 또한 선생님들은 폭력과 폭언으로 멍들었던 아이를 기다려줘서 그 뒤 아이가 정말 많이 변했다”고 털어놨다.
이 학교의 사례처럼 초등학생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숙련이나 경쟁에 의한 승부욕 자극보다는 소통의 도구로, 흥미나 관심을 유발하고 직접 해봤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예술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친구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풍성한 삶을 가져다준다.
경인교육대학교 정문성 교수는 “문화예술교육의 실질적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면접조사를 해보면 학교 관계자나 마을 주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아이들 입에서 욕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관심사나 서로 공유할 내용이 없어서, 할 말이 없어서 욕한다는 말이 맞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부터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연습하느라 욕할 시간도, 상황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이 학교폭력 예방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일어나는 변화는 놀랍다. 자기도 몰랐던 능력이 발견되며 자신감도 생기고 학교생활도 재밌어진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춰 적합한 교육이 이뤄져야 함에도, 우리는 너무 국영수만을 중시한다. 초등학교 때는 신체나 감성 발달이 주로 일어나므로 이 시기에는 예체능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이 되면 사춘기가 오면서 지적인 발달이 일어나고, 이때는 지식 위주의 공부와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내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박광일(20)씨는 한때 소위 말하는 ‘불량 청소년’이었다. 초등학교 때 혼자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아이들이 좋아해주고 힘이 생기면서 애들을 건들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 돈을 뺏고, ‘빵셔틀’도 시켰다. 그런 그가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해 카메라를 들면서부터 달라졌다. 그는 영상을 만들면서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꼈다. 작업 과정에서 주위 인맥도 필요하고 힘들 때 터놓을 수 있는 선생님과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의 변화는 ‘꿈’이 생기면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졸업작품으로 만든 ‘우린 친구였잖아’도 지난날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박씨는 “지난해 말 화제가 됐던 학교폭력 사태와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보고 예전 생각이 났다. 이와 관련한 유시시(UCC)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나도 동영상을 보고 춤을 배웠고 직접 영상을 만들면서 꿈과 희망을 얻었는데, 다른 아이들도 색다른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나처럼 변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박씨와 함께 유시시를 제작한 양진현(20)씨도 “학교폭력 문제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인데, 주체인 우리가 직접 영상을 제작해서 아이들이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성적이 안 좋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열정이 생긴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거기에 매진하느라 다른 애들 괴롭힐 시간도 없을 것이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일을 통해 자신의 꿈을 갖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둘의 꿈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박씨와 양씨는 각각 연출자와 촬영감독을 꿈꾸며 언젠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 청소년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영화를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학교의 김철한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쳐보면 1학년보다 2, 3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변화가 확실히 나타난다”며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협동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동아리활동을 통해 인정받으니 전반적으로 학업만족도까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최 교사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말이다. “현재 우리의 학교교육은 지나치게 지식 중심이다. 아이들은 경쟁과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강하다. 문화예술교육은 한 가지 기준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지 않는다. 자기 능력에 따라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자아존중감이 향상되고 소통과 창조를 만끽할 수 있다. 아이들을 21세기를 선도할 글로벌 인재가 아닌, 자기의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는 아이들로 만들고 싶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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