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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서울역 노숙자들도 동참한 의문사규명 입법운동 / 박정기

등록 2012-04-18 20:02

유가협은 1998년 4월24일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대국민 캠페인 선포식’을 열고 4월27일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대국민 캠페인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유가협은 1998년 4월24일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대국민 캠페인 선포식’을 열고 4월27일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대국민 캠페인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96
1998년 4월24일, 유가협은 서울역에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대국민 캠페인 선포식’을 했다. 88~89년 135일간의 기독교회관 농성 이후 유가협은 지속적으로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을 벌여왔다. 당시 ‘5공 특위’에서 진상조사가 무산된 뒤 이춘원(이이동의 아버지)을 비롯해 ‘의문사의 한’을 풀지 못한 유가족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박정기에게 먼저 떠난 유가족들이 남긴 유언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였다. 지난 9년 동안 허영춘(허원근의 아버지)·신정학(신호수의 아버지) 등 의문사지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개한 의문사 입법 활동은 지난한 여정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93년 4월13일 유가협은 ‘군 의문사 11명에 대한 진정서’를 국방부 특감단에 제출했다. 이날부터 ‘의문사 전면 재조사 촉구를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였다. 5월1일 메이데이 행사가 열린 연세대에서 시작해 서울·부산·대구·울산 등 전국을 다니며 국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94년 11월4일 유가협은 10만명의 서명지와 함께 국회에 입법 청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입법은 무산됐다. 97년 12월 대통령선거 기간엔 후보들에게 ‘열사들의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공약화할 것을 요구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전국민족민주열사추모(기념)사업회연대회의’(추모연대)와 유가협은 의문사 진상규명법과 민주화운동 유공자법 제정을 위한 3개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97년부터 해마다 캠페인과 학술회의, 공청회 등을 열었다. 학술회의에서 박원순·장기표·천정배 등이 발제를 통해 의문사 해결 방안을 제안하고 토론했다. 이를 바탕으로 98년 5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의뢰해 법안의 초안을 잡았다. 법안 작성은 정태상·이상훈·윤기원 변호사가 맡았다.

유가협은 서울역에서 32일에 걸친 입법운동에 돌입했다. 서울역 캠페인을 앞두고 박정기는 유가족들과 함께 한반도 모양의 커다란 걸개그림에 열사들의 사진을 붙였다. 서울역엔 걸개그림과 함께 영정사진과 대자보가 전시되었다. 그 옆엔 무대를 설치하고 일주일에 두세 차례 공연을 열었다. 김정환이 이끄는 가극단 금강과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가 주로 공연을 했다. 대학의 노래패와 지역 문예일꾼들도 공연에 참여했다. 모두 한 푼의 공연료 없이 참여한 자발적인 연대였다. 일요일만 빼고 매일 오후 한두시엔 집회를 열었다.

서울역 캠페인을 시작하기 직전 천주교인권위원회 고상만의 소개로 손종필이 유가협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는 추모연대의 한현우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했다. 추모연대의 김학철과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이형숙, 그리고 여러 추모사업회 간사들이 자리를 지켰다.

언제나처럼 민가협 어머니들도 찾아와 일손을 보탰다. 전국연합과 범민련 등 민주화운동 단체들과 노동조합, 각 대학 학생회에서 연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역사를 오가는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전시된 사진을 바라보았다. 유가족들은 시민들에게 열사들의 삶과 의문사를 설명하고 서명을 받았다. 어떤 시민들은 영정사진 앞에서 옷을 여미고 절을 올렸다. 한번은 말없이 영정 앞에서 절을 올린 한 시민이 자신이 의문사와 관련된 군인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올린 절은 사죄의 표현이었다. 그는 양심선언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날 이후 김학철이 몇차례 그에게 연락했지만 양심선언에 대한 부담을 느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들이 집회 도중 마이크를 뺏는 등 행사를 방해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일주일가량 지난 뒤부턴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자보 등을 자세히 읽고 열사들의 삶을 궁금해했다. 유가족들은 그들과 푼돈도 나누고 먹거리며 술도 함께 마셨다. 그럴 땐 경찰들이 노숙인들을 나무랐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이분들이 어떤 분들이신데 감히 돈을 구걸해?”

박정기는 괜찮다며 경찰의 제지를 만류했다.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를 후원 모금함에 넣는 노숙인도 여럿 있었다.

서울역 캠페인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유가협은 5월25일부터 의문사 책임기관 항의방문을 시작했다. 국방부·안기부·기무사·경찰청으로 이어졌다. 각 기관을 여러 차례 방문해 집회를 열고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경찰청 외엔 항의시위를 거의 경험한 적 없는 기관들이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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