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누구’와 사는지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해

등록 2012-05-14 10:52수정 2012-05-21 13:25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ㄴ씨가 어린이날 행사에 참가해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ㄴ씨가 어린이날 행사에 참가해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편견에 멍드는 아이들
한부모가정은 다를 뿐 잘못된 게 아냐
한부모가정의 목소리를 듣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ㄱ군(16)은 엄마랑 여동생과 함께 모자원에 살고 있다. 이곳은 엄마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가정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ㄱ군의 아버지는 3살 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ㄱ군은 친구들에게 아빠가 없다는 말도, 모자원에 산다는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 “우리 학년에 엄마 없는 여자애가 있는데 친구들이 걔랑 다툴 때면 ‘엄마 없는 X’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그걸 보고 나는 애들한테 절대 얘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부모 가구수는 160만가구에 달했다. 여기서 한부모 가구는 일반가구 중 아빠 또는 엄마와 미혼자녀로만 구성된 가구(조손가구 제외)로, 전체 가구의 9.2% 정도를 차지했다. 이 중 아빠와 자녀가 함께 사는 부자가구가 21.8%, 엄마와 아이만 사는 모자가구가 78.2%였다. 청소년 한부모가정의 경우는 인구조사 때 미혼이라고 답하면 자녀 수는 묻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청소년 미혼부(모)는 물론 이별 또는 사별로 인한 한부모가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주변의 편견과 차별로 삼중고를 겪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얘기한 ㄱ군도 엄마가 몸이 많이 아파서 기초생활수급자인 상태다. 그의 꿈은 정보기술(IT) 연구원이지만, 집안 형편상 엄마는 기술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신다. 모자원 담당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ㄱ군을 후원해줄 곳을 찾는 중이다.

ㄱ군은 교복 살 돈이 없어서 매주 교내에서 판매하는 중고 교복을 1000~2000원을 주고 구매한다. 친구들에게 모자원에 산다는 걸 들킬까봐 한 시간 일찍 등교하고, 수업이 끝나면 일이 있다며 교문이나 큰길에서 헤어진다. 모자원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위치해 있어서 친구들에게는 근처 아파트에 산다고 한 뒤 후문 담을 넘어 모자원으로 가기도 한다.

예전에 엄마가 혼자서 돈을 벌 때는 동생이랑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당연히 학원은 다닐 엄두도 못 냈다. “사실 주변에 학원 안 다니는 애들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영어스피킹이나 창작과 관련된 수행평가는 학원에서 다 똑같은 답안을 받아 외우다 보니 오히려 점수를 깎인다”고 말했다. ㄱ군은 방과후에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원 외에 모르는 것은 선생님께 물어보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전교 5등 안에 든다.

서울 정릉동에 위치한 영락모자원은 ‘영락○○○’이라고 불린다. 유순도 원장은 “아이들이 누가 집이 어디냐 물어보면 난감해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설’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일부러 다른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혼모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주거 문제라고 말했다. 미혼모들이 직업훈련을 받고 취업해서 수급자에서 탈피하고 임금을 받으며 자립을 시도하려 해도 주택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힌다고 덧붙였다. 이혼 후 모자원에서 지내는 ㄴ씨도 “사회배려대상자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결국 집 문제 때문에 수급자로 남아 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간다”며 “멀쩡히 일할 수 있는데도 주택청약 점수를 따기 위해 자활근로를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유 원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가족관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한부모가정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인식이 뒤따라주지 못하지만 스스로 그런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부모가정 부모를 보면 겉으로는 당당해하면서도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본인부터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모자원에서 지내는 최형숙(40)씨는 남자친구와 오랜 만남 끝에 헤어졌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고민 끝에 혼자서 애 하나 못 키우겠나 싶어 낳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자란 준서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예비소집일에 갔다가 방과후 아이돌보미 저소득층 지원 1순위 대상이 ‘시설 수용 아동’이란 걸 알게 됐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거주’라고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수용’이라고 적은 것이 화가 났다. 교과부와 교육청에 전화해 따졌지만 돌아온 건 변명뿐 달라진 건 없었다.

얼마 전 반대표 학부모가 불러 모임에 갔다가 황당한 일도 겪었다. 한 학부모가 미혼모가족단체에서 일하는 그를 인터뷰한 기사를 봤다며 “대단한 일 한다. 아들한테 아빠의 빈자리가 점점 커질 텐데 어쩌려고 그러냐”고 비꼬듯 얘기한 것이다. 그는 오히려 당당하게 되받아치며 “내 일이니까 한다. 그리고 아이는 아빠랑 잘 만나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실제 아이는 아빠와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에서 진행한 집단상담프로그램 ‘부모자녀교실’에서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부모에게 쓴 편지.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에서 진행한 집단상담프로그램 ‘부모자녀교실’에서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부모에게 쓴 편지.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에서 진행한 집단상담프로그램 ‘부모자녀교실’에서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부모에게 쓴 편지.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에서 진행한 집단상담프로그램 ‘부모자녀교실’에서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부모에게 쓴 편지.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에서 진행한 집단상담프로그램 ‘부모자녀교실’에서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부모에게 쓴 편지.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에서 진행한 집단상담프로그램 ‘부모자녀교실’에서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부모에게 쓴 편지.

그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육아일기를 쓰고 매달 아이에게 편지도 쓰면서 알콩달콩 지내는 것이 행복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이런 편견과 차별로 아이가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내가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미혼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직장에서도 나오게 되고, 그나마 열었던 가게마저 문을 닫아야만 했다. 나의 선택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이다. 엄마가 미혼모라고 해서 손가락질받지 않고 나와 분리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게 해주고 싶다. 자기가 잘한 만큼 제대로 인정받으면서.”

ㄴ씨는 12년 전 사업을 함께 하던 아내가 빚을 크게 지고 사라진 뒤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다. 처음엔 어떻게든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지만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간 지 1년쯤 될 무렵, 학교부적응 증상을 나타냈다.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교우관계를 잘 살펴봐달라고 부탁했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는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학과에 들어갔다가 올해 졸업을 했다. 그동안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한부모가정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아이는 대인기피증 증상을 보이며 친구를 사귀기 싫어하고, 언제부턴가 집에만 처박혀 있다. 병원 진단 결과, 병명은 없고 우울증 증세만 조금 보인다고 했다. 그는 요즘 들어 답답할 때가 있다.

“다그치다 보면 부작용 생길 거 아니까 계속 기다리는 중이다. 다행히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사가 집으로 찾아와 상담치료를 시작했다. 아들을 이해하려고 공부를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내가 지도를 하고 돌봐주는데 정작 내 아이 돌보기가 안 된다는 게 제일 힘들다.”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의 황은숙 소장은 한부모가정 아이들의 학교부적응 사태의 원인을 교사와 교육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사는 보통 한부모가정 아이에 대해 동정과 비판, 둘 중 하나의 시각을 가진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아도 똑같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교사의 편견과 낮은 기대감이 아이의 학교부적응을 낳는다”며 “교육과정에 양부모가정을 정상이라고 가르치니 한부모가정 아이는 은연중에 열등의식을 갖게 된다. 무시하거나 놀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친구 사귀기가 힘들고 이로 인해 교우관계가 단절돼 사회성까지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의 학생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누구누구랑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들었던 한 미혼모의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 있는 한부모가족의 현실이자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이 미친 거야.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지금 숨으면 앞으로 달라질 건 없어. 이건 아무것도 아냐. 한부모가정은 다를 뿐이지, 잘못된 게 아냐.”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한겨레 인기기사>

[화보] 노무현 미공개 사진, 이 열매는 어떤 맛?
“노건평 비자금 맞다면 내 목을 베라”
노무현 마지막 부탁 “담배 하나, 담배 한개만”
왕차관의 남자…“포스코선 그의 말이면 안되는 일 없었다”
진보당 온라인 경선부정 첫 물증 나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