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학생인권조례
(상) 서울 여중생 현아의 한숨
(하) 정착 힘쓰는 경기 청명고 학생인권조례는 억압과 통제 위주의 학교를 ‘민주시민 육성의 옥토’로 변화시키는 빗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 처음 도입된 뒤 광주와 서울에서 잇따라 싹을 틔웠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조례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서울의 한 중학교와 성장통 속에 인권친화적인 학교 문화를 일궈 가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사례를 통해 학생인권조례의 현주소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중학교 2학년생 현아(가명)는 아침 6시40분이면 잠에서 깬다. 눈을 뜨면 침대 맞은편 의자에 지난밤 걸어둔 교복이 보인다. 한숨이 나온다. 현아는 교복 입기가 싫다. 교복을 입으면 으레 따라붙는 온갖 규제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현아의 학교에서 단발머리는 귀밑 7㎝를 넘으면 안 된다. 머리를 기르려면 반드시 묶어야 한다. 묶기 전 길이는 귀밑 25㎝까지 가능하다. 몇 주 전, 옆 반 아이가 앞머리를 자르려다 실수로 옆머리까지 뭉텅 잘랐다. 할 수 없이 커트를 했는데 그조차 벌점을 받았다. 현아의 학교에 단발 또는 묶은 머리 외에 ‘제3의 머리’는 없다. 현아의 서랍장엔 흰 양말, 흰색 속옷이 가득하다. 겨울을 빼고는 흰 양말만 신어야 한다. 겨울엔 살색 스타킹은 안 되고 검정 스타킹만 신을 수 있다.(참고 ①) 그나마 두 달 전과 비교하면 교칙이 많이 나아졌다. 지난 3월 말까지만 해도 머리 길이는 단발의 경우 귀밑 5㎝, 긴 머리는 귀밑 20㎝까지만 가능했다. 치마 길이는 무릎 아래로 5㎝ 이상, 양말은 복숭아뼈 위로 2㎝ 이상 유지하고 신발도 운동화는 안 되고 구두만 가능했다. 지금은 조금씩 완화됐다.
지난 3월20일 현아는 서울시교육청 인권상담센터에 전화했다. 학교 규정을 들은 전화 상담자는 “지난 1월 서울에도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됐기 때문에 일선 학교는 교칙에서 두발·복장 등을 자의적으로 제한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내친김에 학교를 신고했다. 담임선생님에게도 신고 사실을 알렸다. 다음날 교장선생님이 현아를 불렀다. 교육청에서 학교에 시정을 요구한 모양이다.
교장선생님은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다. 현아는 공청회를 열어 교칙 개정을 위한 전교생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공청회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학생 간부들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면 대의원대회를 열어서 교칙 개정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아는 지금까지 학급회의에서조차 제대로 토론이 진행되는 걸 본 적이 없다.(②)
결국 직접 나섰다. 뜻을 같이하는 몇몇 친구들과 1·2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며 머리 길이 제한을 푸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연판장을 돌렸다. 1·2학년 300명 가운데 30명을 빼고는 모두 동그라미를 쳤다. 현아가 이 연판장을 생활지도부 선생님께 제출하면서 ‘공청회를 열자’고 말하자 선생님은 “(간부도 아니면서) 네가 뭔데 이런 걸 하냐”고 말했다. 결국 공청회는 열리지 않았고, 학생 간부와 학부모 의견에 따라 머리 길이 제한이 단발은 2㎝, 묶은 머리는 5㎝ 완화되는 정도로 교칙이 바뀌었다.(③)
등교 뒤 담임선생님과 첫 인사를 하면 바로 휴대폰 수거가 시작된다. 마련된 상자에 휴대폰을 제출하면 하교할 때 돌려받는다. 지난해엔 휴대폰에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도 벌점을 받았다.(④)
복장·두발 규제 변한게 없어
등교뒤 휴대폰 수거 당하고
격주마다 ‘예배 수업’ 강요 직접 교칙 개정 설문조사에
생활지도 교사 “네가 뭔데”
‘사투리 쓴다’ 면박…체벌도 현아네 학교는 격주 금요일마다 2시간짜리 ‘예배 수업’을 한다. 현아의 학교는 기독교 학교다. 천주교를 믿는 현아는 기도문이나 기도방식이 달라 기도하기 싫지만, 아직 ‘수업 거부’나 ‘기도 거부’를 말하진 못했다.(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들은 종종 ‘생활지도’를 한다. 지난 7일 3교시 때 ㄱ선생님은 들어오자마자 ‘립틴트 적발’을 시작했다. 립틴트를 입술에 바르면 윤기가 나고 색깔이 선명해진다. “모두 손 내려”라고 한 뒤 분단별로 돌아다니며 입술을 유심히 쳐다봤다. 두세 명의 표적이 정해졌다. “너 발랐지?” “아닌데요.” “발랐잖아.” “안 발랐는데요.” “이따 교무실로 내려와.” 그 친구는 정말로 바르지 않았다고 했다. 현아가 ㄱ선생님을 더 싫어하게 된 건 몇 달 전이다. 울산에서 전학온 반 친구가 수업시간에 질문하자, ㄱ선생님은 “너, 내가 사투리 고칠 때까지 말하지 말랬지”라며 면박을 줬다.(⑥) 언젠가는 수업시간에 문제를 낸 뒤 무작위로 번호를 불러 해당 번호의 학생이 답을 못하자 자로 때렸다. 답을 모른다고 때리다니….(⑦)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점심을 먹으며 현아는 친구 성연(가명)이를 걱정했다. 성연이는 지난 4일 인터넷 게시판에 학교 규정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교내봉사 5일의 징계를 받았다. 이유는 두 달 전 바뀌기 전의 교칙을 올리고 선생님과 관련해 과장된 표현을 써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학교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였다. ‘귀밑 5㎝로 제한하는 것과 7㎝로 제한하는 게 그렇게 큰 차이일까.’ 현아는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으며, 학교가 감옥 같다고 생각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교과부가 ‘조례시행’ 발목…교사들은 거부감 여전 흔들리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왜 학교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걸까? 무엇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발목 잡기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교과부는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다음날 대법원에 조례무효 확인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 교육청이 조례에 맞게 학칙을 개정하라고 일선 학교에 지시하자 곧바로 학칙 개정 중단 명령을 내리는 등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하승수 변호사는 “사실상 초·중등교육법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권’의 정신을 조례에서 조금 더 구체화하고 있을 뿐인데, 교과부가 서울이라는 지역의 상징성 때문인지 억지스럽게 딴죽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81% “조례 설명 못받아”
곽 교육감 재판 진행도 영향 교육청보다 상급기관인 교과부가 인권조례 무력화에 앞장서는 상황이다 보니, 학교에서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지난 4일 ‘서울학생인권조례 정착화를 위한 청소년네트워크’가 서울의 중·고등학생 12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시행과 내용에 대해 안내나 설명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80.9%(1031명)가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교사들의 거부감도 여전하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아직 ‘학생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서울의 한 중학교 생활지도부 교사는 “(인권조례 탓에) 교사의 권위가 떨어져, 학생 지도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학교라는 공간이 여전히 관료적 지시와 명령 체계 속에 놓여 있다 보니, 교사들이 학생인권 보장에 적극적이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곽노현 교육감이 7월 선거법 위반 사건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앞두고 있어 시교육청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정책을 펴기 어려운 상황도 인권조례 안착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박수진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 ‘뭉칫돈’ 최소한의 팩트도 못대면서…검찰, 왜 터뜨렸을까
■ 박근혜 “마지막 힘 다하려 한다”
■ 수학여행·봄꽃놀이 ‘공포의 질주’
■ 왕차관의 남자…“포스코선 그의 말이면 안되는 일 없었다”
■ 군대 간 김 일병, 애인과 문자는 ‘OK’
(하) 정착 힘쓰는 경기 청명고 학생인권조례는 억압과 통제 위주의 학교를 ‘민주시민 육성의 옥토’로 변화시키는 빗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 처음 도입된 뒤 광주와 서울에서 잇따라 싹을 틔웠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조례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서울의 한 중학교와 성장통 속에 인권친화적인 학교 문화를 일궈 가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사례를 통해 학생인권조례의 현주소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중학교 2학년생 현아(가명)는 아침 6시40분이면 잠에서 깬다. 눈을 뜨면 침대 맞은편 의자에 지난밤 걸어둔 교복이 보인다. 한숨이 나온다. 현아는 교복 입기가 싫다. 교복을 입으면 으레 따라붙는 온갖 규제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현아의 학교에서 단발머리는 귀밑 7㎝를 넘으면 안 된다. 머리를 기르려면 반드시 묶어야 한다. 묶기 전 길이는 귀밑 25㎝까지 가능하다. 몇 주 전, 옆 반 아이가 앞머리를 자르려다 실수로 옆머리까지 뭉텅 잘랐다. 할 수 없이 커트를 했는데 그조차 벌점을 받았다. 현아의 학교에 단발 또는 묶은 머리 외에 ‘제3의 머리’는 없다. 현아의 서랍장엔 흰 양말, 흰색 속옷이 가득하다. 겨울을 빼고는 흰 양말만 신어야 한다. 겨울엔 살색 스타킹은 안 되고 검정 스타킹만 신을 수 있다.(참고 ①) 그나마 두 달 전과 비교하면 교칙이 많이 나아졌다. 지난 3월 말까지만 해도 머리 길이는 단발의 경우 귀밑 5㎝, 긴 머리는 귀밑 20㎝까지만 가능했다. 치마 길이는 무릎 아래로 5㎝ 이상, 양말은 복숭아뼈 위로 2㎝ 이상 유지하고 신발도 운동화는 안 되고 구두만 가능했다. 지금은 조금씩 완화됐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지난 17일 학교 정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 등을 점검하는 ‘교문 지도’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등교뒤 휴대폰 수거 당하고
격주마다 ‘예배 수업’ 강요 직접 교칙 개정 설문조사에
생활지도 교사 “네가 뭔데”
‘사투리 쓴다’ 면박…체벌도 현아네 학교는 격주 금요일마다 2시간짜리 ‘예배 수업’을 한다. 현아의 학교는 기독교 학교다. 천주교를 믿는 현아는 기도문이나 기도방식이 달라 기도하기 싫지만, 아직 ‘수업 거부’나 ‘기도 거부’를 말하진 못했다.(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들은 종종 ‘생활지도’를 한다. 지난 7일 3교시 때 ㄱ선생님은 들어오자마자 ‘립틴트 적발’을 시작했다. 립틴트를 입술에 바르면 윤기가 나고 색깔이 선명해진다. “모두 손 내려”라고 한 뒤 분단별로 돌아다니며 입술을 유심히 쳐다봤다. 두세 명의 표적이 정해졌다. “너 발랐지?” “아닌데요.” “발랐잖아.” “안 발랐는데요.” “이따 교무실로 내려와.” 그 친구는 정말로 바르지 않았다고 했다. 현아가 ㄱ선생님을 더 싫어하게 된 건 몇 달 전이다. 울산에서 전학온 반 친구가 수업시간에 질문하자, ㄱ선생님은 “너, 내가 사투리 고칠 때까지 말하지 말랬지”라며 면박을 줬다.(⑥) 언젠가는 수업시간에 문제를 낸 뒤 무작위로 번호를 불러 해당 번호의 학생이 답을 못하자 자로 때렸다. 답을 모른다고 때리다니….(⑦)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점심을 먹으며 현아는 친구 성연(가명)이를 걱정했다. 성연이는 지난 4일 인터넷 게시판에 학교 규정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교내봉사 5일의 징계를 받았다. 이유는 두 달 전 바뀌기 전의 교칙을 올리고 선생님과 관련해 과장된 표현을 써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학교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였다. ‘귀밑 5㎝로 제한하는 것과 7㎝로 제한하는 게 그렇게 큰 차이일까.’ 현아는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으며, 학교가 감옥 같다고 생각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교과부가 ‘조례시행’ 발목…교사들은 거부감 여전 흔들리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왜 학교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걸까? 무엇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발목 잡기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교과부는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다음날 대법원에 조례무효 확인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 교육청이 조례에 맞게 학칙을 개정하라고 일선 학교에 지시하자 곧바로 학칙 개정 중단 명령을 내리는 등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하승수 변호사는 “사실상 초·중등교육법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권’의 정신을 조례에서 조금 더 구체화하고 있을 뿐인데, 교과부가 서울이라는 지역의 상징성 때문인지 억지스럽게 딴죽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81% “조례 설명 못받아”
곽 교육감 재판 진행도 영향 교육청보다 상급기관인 교과부가 인권조례 무력화에 앞장서는 상황이다 보니, 학교에서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지난 4일 ‘서울학생인권조례 정착화를 위한 청소년네트워크’가 서울의 중·고등학생 12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시행과 내용에 대해 안내나 설명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80.9%(1031명)가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교사들의 거부감도 여전하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아직 ‘학생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서울의 한 중학교 생활지도부 교사는 “(인권조례 탓에) 교사의 권위가 떨어져, 학생 지도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학교라는 공간이 여전히 관료적 지시와 명령 체계 속에 놓여 있다 보니, 교사들이 학생인권 보장에 적극적이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곽노현 교육감이 7월 선거법 위반 사건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앞두고 있어 시교육청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정책을 펴기 어려운 상황도 인권조례 안착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박수진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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