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청소년공정무역연합동아리 ‘키푸’(cafe.naver.com/kyfu) 학생들이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자는 관련 이벤트를 벌이는 모습이다. 사진 속 서 있는 학생 가운데 왼쪽에서 여섯째 학생이 이 동아리를 만든 회장 이준하군, 넷째 학생이 부회장 조정배군이다. 키푸 제공
공정무역 참여하는 학생 늘어나
자발적 활동으로 체험지식 쌓아
자발적 활동으로 체험지식 쌓아
서울 염광고 3학년 이준하군은 명함을 들고 다닌다. 명함에는 ‘키작은 아이들의 푸른꿈 키푸, 한번 만나 저녁 먹고 싶은 회장’이라고 적혀 있다. 활동하고 있는 공정무역 관련 청소년 연합동아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만든 것이다.
이군은 지난해 학교 교사의 추천으로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공정무역에 관심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경영에 관심이 많았지만 공정무역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은 이때 처음 해봤다. 강연을 들으면서 머리를 스쳐간 질문이 있었다. ‘제품을 만든 노동자한테 대가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공정무역 살리기 운동까지 해서 그들을 도와야 할까?’ 곧장 절친 조정배군과 ‘일석이조’라는 팀을 꾸려 공정무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전문가를 찾다가 아름다운재단 공정무역사업처 ‘아름다운커피’를 알게 됐다.
“직접 팔아봐야 알죠. 둘이 모은 용돈 24만원으로 20% 싼 가격에 공정무역 제품부터 샀습니다. 다행히 학생들이 문을 두드릴 때 무척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시더라구요. 무작정 거리에서 판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요. 학교를 중심으로 특히, 학생들한테 영향을 주는 선생님들한테 지속적으로 공급했습니다.”
공정무역 행사에도 발빠르게 뛰어다녔다. 지난해 서강대에서 열린 ‘공정무역 응원지수 높이기 캠페인’ 발대식에서는 비슷한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이군은 “아무래도 학교 밖 정보를 접할 기회도 많고, 국제이슈에도 밝은 특목고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다. 일부만이 아닌 모든 학생이 활동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연합동아리에는 일반계고 약 15곳이 참여중이다. 부산, 제주 등 지역지부도 만들어졌다. 6월9일, 이군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전국청소년공정무역연합동아리’가 발대식을 연다. 일반계고, 특목고 구분 없이 모두가 연대하는 연합이다.
남들이 빈곤지수를 계산하며 공정무역 개념을 알게 됐다면 이군은 ‘공정무역’을 실천하면서 무역, 빈곤, 윤리, 경제, 기업 등의 개념을 배웠다.
“공정무역 덕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소식이나 노동자 인권 문제 등을 눈여겨봤습니다. 문득 왜 저 멀리 있는 아이들은 도우면서 저와 가까이 있는 농민들 생각은 못하고 살았을까 싶었어요. 얼마 전 열린 공정무역 페스티벌에서 쌀강정 초콜릿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우리 쌀을 쓰면서 우리 농민도 돕고, 공정무역 코코아로 만든 초콜릿을 쓰면서 아프리카 아이들도 돕자는 뜻이었죠.”
지난 5월12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및 덕수궁 돌담길 일대에서 열린 세계 공정무역의 날 한국 페스티벌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이준하군이 만든 초콜릿 강정을 사먹고 갔다. 이 행사는 ‘공정무역과 함께하는 일주일’(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 서울시 공동주최) 가운데 일부였다. 행사를 찾은 학생들 가운데에는 세계 공정무역의 날을 기념해 전국사회교사모임과 아름다운커피 등이 마련한 ‘공정무역 바로 알기 수업’ 등을 듣고 행사장을 방문한 학생들도 많았다.
수도권 중·고등학교 약 10곳 교실에서 실시한 계기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빈곤 문제를 활자로 보다가 가슴으로 만나는 기회도 마련했다. 서울 삼각산고 2학년 강필구군은 이제 축구공을 공으로만 보지 않는다. 공을 보면 그걸 만든 아이들 얼굴이 그려진다. 2학년 장유진양도 일종의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지구상에 평생 초콜릿 맛을 모르고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데 적잖이 놀랐다. 용돈을 모아 공정무역 제품을 사려고 생각중이다. 학교에서 착한경제연구반이라는 학습두레 리더를 맡은 2학년 유동우군은 요즘 공부했던 세금 문제와 공정무역을 연관지어 생각하게 됐다.
“세금은 빈부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잖아요. 넓게 보면 공정무역도 제3세계 아이들과 우리들 사이의 빈부격차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더라구요.”
서울 창북중에서는 5월21일부터 일주일을 공정무역 주간으로 잡아 관련 수업, 사진전, 제품 만나보기, 동영상 시청 등의 행사를 열었다. 행사 첫날 <히말라야 커피로드> 동영상을 보던 2학년 강하나, 서해나, 박시온양은 “행사를 통해 공정무역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이런 행사가 일상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은 정치, 사회, 경제, 윤리, 지리 등 다양한 교과와 연계되는 현실맥락적인 사회이슈다. 강하나양은 “공정무역이라는 주제 하나만으로 경제활동, 무역, 시민윤리 등을 다 배울 수 있다”며 “다양한 개념들이 연계돼 있어서 이거 하다 진도를 못 나가면 어쩌나 걱정은 안 한다”고 했다.
공정무역 활동을 통해 체험적 지식을 쌓으면서 간접적인 사회 경험을 하는 학생도 있다. 조정배군은 아름다운커피에 문을 두드리면서 비영리를 추구하는 직업군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다
‘키작은 아이들의 푸른꿈 키푸’의 회장 이준하군의 일상에는 변화가 많다. 이군은 지금 중소기업청에서 실시하는 실전창업리그 ‘슈퍼스타 브이(V)’에 나가려고 준비중이다. 공정무역을 알게 된 뒤로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 “공정무역 초콜릿은 없나요?”라고 묻는 습관이 생겼다. “자꾸 물어보면 왠지 갖다 놓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이군은 “교과서만으로는 하기 힘든 경험들을 해보면서 내가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고 했다.
“많은 친구들이 시험문제는 잘 풀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세상에서 적용하지 못합니다. 활동을 통해서 빈곤, 경제, 사회문제 등을 두루 알게 됐습니다. 꿈에 대한 확신도 생겼어요. 돈은 크게 못 벌어도 저도, 노동자·생산자들도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얻게 해주는, 기본을 지키는 회사를 차리는 게 꿈입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삼각산고 학생들이 공정무역을 주제로 만든 포스터.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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