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조례 외치는 대구 학생들
성적 차별에 체벌·막말…‘보수 대구’서 인권탑 쌓기
성적 차별에 체벌·막말…‘보수 대구’서 인권탑 쌓기
지난해 12월 대구 ㄷ중 2학년 권아무개(당시 13살)군이 친구들의 상습적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지난 4월까지 대구에서 넉달 만에 모두 9명의 중·고교생이 투신해 7명이 숨졌다. 지난 4월에는 ㅊ중에서 교사가 남학생을 무차별 폭행해 뇌출혈로 입원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대구학생인권연대가 지난해 7월 학생 118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구의 학생인권 수준이 다른 지역과 견줘 ‘매우 좋지 않다’거나 ‘좋지 않다’고 답한 학생이 36.8%였다. 반면 교사는 305명 가운데 20.3%만 같은 답을 했다. 게다가 ‘학생은 인간으로서 모든 권리를 갖고 있고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일반 시민 300명 가운데 67.3%가 ‘매우 반대’ 또는 ‘조금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연쇄적인 학생들의 비극과 폭력, 학생인권에 대한 지역사회의 이런 인식은 과연 서로 무관할까?
■ 당당하게 때리고 맞아라? 대구 ㄱ고 3학년 김아무개(17)군은 지난 3월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ㄱ고는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구에서도 서울대생을 많이 배출하는 ‘명문’으로 꼽힌다. 매년 서울대 합격생 명단이 빼곡히 적힌 펼침막을 교문 앞에 걸어둔다. 하지만 김군에게 학교는 끔찍한 공간이었다. 지난해 가을 자습시간에는 뜬금없이 교사로부터 “너 빨갱이냐”는 얘기를 들었다. 라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건넨 말이었다. 김군은 교사에게 “이런 책 읽으면 다 빨갱이입니까?”라고 되물었지만 교사는 “선생에게 대든다”며 ‘교사 지시 불이행’으로 벌점 4점을 부과했다.
이 학교의 학칙은 △동맹 휴학을 선동하거나 동참한 학생 △반국가적 언동을 한 학생 △사상이 불온하거나 이적행위를 한 학생은 ‘퇴학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두발 길이를 ‘앞머리 5㎝, 뒷머리 2㎝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여름에는 교복 상의를 벗을 수 없고, 겨울에는 교복 상의 위에 따로 외투를 입을 수 없다.
학교에서 똑같은 규격으로 매를 제작해 교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학교는 이 매를 ‘당당매’로 불렀다. ‘당당하게 때리고 당당하게 맞는 매’라는 뜻이라고 했다. “대구는 명문 사학을 자처하는 학교도 많고, 그에 따라 유독 입시경쟁이 치열합니다. 교사들은 폭력을 쓰면서도 성적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정당화해요.”
■ 여성 비하 폭언에 피멍 임아무개(16)양이 다니는 수성구의 ㄴ고는 남녀공학이지만, 남녀 학생이 따로 반을 나누어 수업을 받는다. 체육시간이 되면 여학생은 강당을 쓰고 남학생은 운동장을 쓴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이 꺼림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사귄다’는 이유로 교무실에 불려가 ‘행동이 방정하지 못하다’며 벌점을 받기도 했다.
교사들은 “남자 녀석들은 꼭 때려야 정신을 차린다”며 야구 방망이로 수시로 체벌을 한다. 조금이라도 “왜?”라는 의문을 표시했다가는 ‘교사 지시 불이행’에 따른 벌점이나 체벌을 각오해야 한다. 임양은 “학생회에서도 의견을 냈을 때 참관 교사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말하면 끝”이라며 “교사들에게 학생의 인권이 높아지면 교사의 권위가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나 욕설도 공공연히 내뱉는다. 달성군에 있는 ㄷ고 2학년 박아무개(17)양은 최근 윤리수업 시간에 교사로부터 “여자는 집안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옛날 같았으면 너희는 여기서 공부도 못 한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수성구 ㄹ고에 다니는 성아무개(16)양도 학교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교사들은 수업시간에도 “버릇없는 년”, “가시나”, “싸가지 없는 년들” 등과 같은 상소리를 심심찮게 쓴다. 한 체육교사는 화를 내면서 “가시나들 아가리 안 닥치나?”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머리를 파마한 여학생을 쫓아가 머리채를 잡고 욕설을 하면서 뺨을 때리기도 한다.
■ 성적지상주의의 짙은 그림자 ㄹ고에서는 학력 차별도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1등부터 40등까지는 ‘영재반’, 41등부터 80등까지는 ‘심야자습반’으로 분류해, 영재반에는 독서실 형태의 자습 공간을 따로 내주고 간식도 제공한다. “우리 학교가 수성구에서 ‘공고’, ‘상고’로 불릴 정도로 하위권에 속한다고 인식되니까, 학교에선 ‘영재반’이라도 만들어서 ‘영재반에 가면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인식을 학부모들에게 심어주길 원하는 것 같아요.” 이 학교 한 학생의 말이다.
대구에선 학생들을 학교에서 24시간 통제할 수 있도록 기숙사를 만드는 학교도 부쩍 늘었다. 우동기 교육감이 대구의 모든 고등학교에 ‘기숙사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0년 7월 취임한 뒤,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13~14개 고교에 기숙사가 생겼다.
달서구 ㅁ고 2학년 김아무개(17)군은 지난해 1년 동안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학교에서 김군의 집은 자전거로 10분 거리지만, 부모님과 김군 모두 기숙사 생활을 통해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기숙사에선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점호를 받는다. 학교에서 정규 수업과 방과후 수업을 받은 뒤 저녁 식사를 하고 기숙사에 입실한다. 독서실에서 자정까지 공부를 하고, 4인 1실인 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 따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공부를 더 하는 친구들도 있다. 사감 교사가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외출은 토요일 하루가 전부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집보다는 기숙사를 선호하는 부모님들이 많죠. 지난해엔 크리스마스도 기숙사에서 보냈습니다.”
■ 청소년들 “우리라도 나서자” 폭력이 난무하고 경쟁이 삶을 옥죄는 이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대구학생인권연대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구지부 등을 중심으로 올해 초부터 학생인권조례 초안 작성 작업을 하고 있다. 초안 작성에 직접 뛰어든 지역 청소년들은 올 하반기 주민발의를 통해 경기와 서울, 광주에 이어 대구에 네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주민발의안이 보수 성향의 우 교육감이 이끌고 있는 대구시교육청과 새누리당 의원 일색인 시의회를 통과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사회도 학생들의 인권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다. 김병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구지부 교권팀장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경쟁 위주 교육정책을 가장 잘 따르는 곳이 대구이고, 학생들이 공부에서 벗어나 놀 수 있는 공간이나 문화시설이 가장 없는 곳도 대구”라며 “변화를 혼란으로 받아들이는 폐쇄적인 지역 문화 때문에 교사나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지도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고 말했다.
대구학생인권연대의 지난해 7월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학생들의 권리 행사’에 대해 일반 시민의 67.3%가 반대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비슷한 설문조사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가 2010년 10월 수도권 학부모 9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학생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필요 없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7.7%에 그쳤다.
대구의 보수적인 지역적 특수성과 함께, 토건·섬유 산업 등의 발달로 한때 호황을 누리던 지역 경제가 급속하게 침체되면서 위기의식이 커져 학생인권에 무관심한 문화를 더 강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수 대구청소년문화센터 ‘우리세상’ 사무처장은 “대구는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공무원 외엔 소규모 회사 월급쟁이와 비정규직밖에 직업이 없을 정도로 지역 경제가 붕괴되어 있는 탓에, 기성세대의 경제적 피해의식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돼 폭력적인 경쟁 교육이 만연해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무감각하게 순응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어 학생인권 문제를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이재훈 박수진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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