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졸업식이 열린 올린공대 강당에서는 4학년 학생들이 5~6명씩 12개의 팀을 이뤄 지난 1년 동안 기업들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학생들이 농기계 회사 애그코와 함께 트랙터에 농약 자동 공급장치를 개발한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올린공대 ‘프로젝트 교육’ 새바람
전교생 340명 소규모…고정된 학과·교과과정 없어
철저한 실습교육 통해 문제 해결력 갖춘 인재 양성
기업들도 만족감…MS·구글 등 ‘졸업생 모시기’ 경쟁
전교생 340명 소규모…고정된 학과·교과과정 없어
철저한 실습교육 통해 문제 해결력 갖춘 인재 양성
기업들도 만족감…MS·구글 등 ‘졸업생 모시기’ 경쟁
정년보장(테뉴어) 교수가 한명도 없다. 총장을 비롯한 모든 교수가 5년마다 계약 갱신 심사대에 오른다. 전기, 컴퓨터, 기계공학 등 분야별 학사학위를 수여하지만 학과는 없다. 고정된 교과과정도 없다. 모든 교과과정은 5년 주기로 자동 폐기되고 완전히 새로 설계된다. 논문과 연구성과가 대학 평가의 주요 요소가 되면서 그 역량의 중심인 대학원 육성이 세계 유명 대학들의 한결같은 흐름이지만, 이곳엔 대학원 자체가 없다. 4년 8학기 가운데 강의가 차지하는 부분은 20%에 불과하다.
학부 중심의 프로젝트 위주 실습 교육으로 기존 대학의 공학교육 관행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올린공과대학을 <한겨레>가 지난 15일 찾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졸업생의 20%를 뽑아가는 등 구글·페이스북 등 유수의 기업들이 선호하는 창의적이면서도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는, 새로운 교육방식의 명문공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학의 연구방식으로는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며 프로젝트 기반형 교육법을 도입한 덕분이다. 졸업식이 열린 이날 대학 강당에선 4학년 학생 65명이 지난 1년간 기업 12곳과 함께 12개의 팀을 이뤄 연구한 결과물을 공개하는 ‘스코프’ 발표회가 열렸다.
졸업반 스콧 톰슨은 5명과 팀을 이뤄 농기계 회사인 애그코가 의뢰한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다. 이 회사는 비료나 농약을 작물에 분사하는 트랙터를 제작해왔는데, 하루 20번가량 탱크가 빌 때마다 작업자가 내려서 새로 내용물을 공급받아야 했다. 약물에 노출되어 위험하고, 시간도 걸리는 작업이었다. 다양한 전공자가 모인 올린 대학생 팀은 여러 접근법을 모색한 끝에 위성항법장치(GPS), 카메라, 큐아르(QR)코드 등의 기술을 활용한 원격 원료공급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7년 설립돼 2002년부터 학생 교육에 나서, 지난 7년간 5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전교생 340여명의 소규모 공과대학이지만, 올린이 거둔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졸업생 다수가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따고, 올린 졸업생을 받아들인 기업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올린공대는 기계공학과 로봇 분야 위주이고, 컴퓨터 부문은 교수도 2명에 불과하고 과목도 6개 미만이지만, 기업들의 졸업생 모시기는 경쟁적이다. 리처드 밀러 총장은 “4년 전 1명의 인턴을 받았다가 직원으로 채용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듬해 8명으로 늘리더니 올해는 졸업생의 20%를 뽑아갔다”며 “엠에스는 올린 전담 사정관을 두고 지난해 12번 학교를 방문해 100여명을 인터뷰했다”고 말했다. 밀러 총장은 “구글은 지난해 12명의 졸업생을 뽑아갔다”며 “구글은 올린 출신들이 뛰어난 성과를 보여줘 계속 뽑지만, 서류상 자격요건이 안 되는 만큼 올린 교과과정에 컴퓨터과학을 보강해 관련 학위를 수여하라고 제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올린공대는 기존 공학교육을 전면 개선하기 위해 프랭클린올린재단이 4억6000만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대학이다. 고교 졸업성적이 뛰어난 학생을 뽑아 등록금 50%를 지원하고 교수 1명이 9명을 맡아 지도하는 소수정예 지도방식이란 특성도 있지만, 차별점은 독특한 교육방식에 있다. 새 기술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공학 특성상 졸업하면 금세 구식이 되어버리는 지식 대신 프로젝트 기반의 학습을 통해 독자적인 문제 해결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방식이다. 2~3년간 강의와 시험을 통해 이론과 지식을 가르친 뒤 실습에 들어가는 기존 공대 교육과 달리, 1학년부터 곧바로 실습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필요한 물리학, 수학, 역학, 생물학 등을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배워나가는 구조다.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이론적 기초를 스스로 학습하고, 다양한 배경과 전공의 학생들이 모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기존 교육과정에서는 불가능하던 산지식을 현장에서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린공대는 다양한 분야를 뒤섞은 학제간 교육과 인문학,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졸업을 위해서는 필수 12학점을 비롯해 인문학과 경영 분야 28학점을 이수해야 하고, 인근 브랜다이스대학, 뱁슨대학, 웰즐리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종합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1, 2학년은 자연형태를 본뜬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보는 ‘디자인 네이처’와 사용자 측면에서 수요조사를 수행하고 제품을 만들어보는 협동디자인과정도 독특한 교과목이다.
니덤(미국 매사추세츠)/
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자전거 타보듯 실제 해보는 교육 필수”
리처드 밀러 올린공대 총장
리처드 밀러(사진) 올린공대 총장은 1999년 올린공대 설립을 기초하고 이 대학 총장을 맡아오면서 새로운 공학교육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5일 올린공대에서 그를 만났다.
-대학을 프로젝트 기반으로 바꾸는 데 어려움은 없나?
“세계적으로 대학은 박사학위와 수준 높은 연구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다. 대학에서 연구는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계이지만, 기업가 정신이 회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연구는 실험실에서 반복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과거에 관한 것이다. 연구는 사업에서 회계처럼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대학에서의 기존 연구방식으로는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연구자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왜 프로젝트 기반의 학습법을 도입했나?
“다중지능을 주창한 하버드대학의 인지과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철학에 기반했다. 가드너에 따르면, 말과 논리 같은 지식활동은 두뇌에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소통 능력, 대인관계 등 다양한 영역의 지능이 존재한다. 우린 ‘앎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했다. 자전거나 바이올린을 익힐 때 책으로부터 뭔가 배울 수는 있지만, 실제 해보는 게 필수적이다. 춤도 마찬가지다. 예술에서의 학습이 이렇다. 연구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 예술가가 논문 발표할 필요 없다. 실행을 통해 배우고 청중 반응을 보면서 스스로 학습한다. 애플은 논문 대신 소프트웨어와 제품으로 사용자와 감정적 유대를 만든다. 바로 예술의 방식이다. 이게 우리의 디자인 중심 사고이고, 균형화된 교육을 추구하는 배경이다. 학생들에게 교재를 강의하고 시험 보면 두달 뒤 다 잊어버린다. 하지만 실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운 것은 다르다. 학생들이 우리가 상상하지 않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배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나?
“우리 학생들은 자기주도적 학습과 실습 프로젝트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지만, 다른 명문 대학원에선 ‘난 할 수 없어’ 태도를 배우게 된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교수들이 주도해왔는데, 대학 혁신의 주체가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교수에 의한, 교수를 위한, 교수의 대학’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올린은 변화를 추구하는 주체가 학생이다. 어디에 자원을 투입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 판단의 기준은 학생을 위한 것이냐이다. 우린 학생을 파트너로 여긴다. 학생 누구도 나를 총장, 교수로 부르지 않는다. 애칭 ‘릭’으로 부를 뿐이다. 나는 10명 단위로 1년에 30여차례 모든 학생을 집으로 불러 저녁을 함께 먹는다.”
니덤/구본권 기자
“내년 개교 NHN학교 올린공대를 모델로”
김평철 ‘넥스트’ 학장
2013년 소프트웨어 전문 고등교육기관으로 문을 여는 엔에이치엔(NHN) 넥스트는 미국 올린공대를 모델로,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해마다 120명을 모집해 교수 한명이 15명 이하의 학생을 지도하고, 개인별 전용 학습공간 제공과 함께 2년6개월 교육기간의 학비 전액을 엔에이치엔이 지원한다는 특전도 눈길을 끌지만, 엔에이치엔 넥스트가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교육방식이다.
업무 생산성이나 효율성 등 기업용이 아닌 범용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을 길러낸다는 목표 아래, 소프트웨어 분야만이 아니라 인문학, 사용자경험(UX), 디자인을 가르치고, 현장 중심의 프로젝트 위주 교육을 하겠다는 게 넥스트의 지향점이다. 현재 마련된 교과과정에는 개발·디자인 분야와 함께 인간의 이해, 세계의 이해, 비판적 사고, 인터넷 윤리 등이 포함돼 있다. 넥스트는 인가받은 대학 교육과정은 아니지만, 독학사를 딸 수 있도록 지원해 대학에 준하는 교육기관으로 기능한다는 게 계획이다.
김평철(사진) 넥스트 학장은 지난 14~15일 올린공대를 방문해 교육과정을 참관하고, 리처드 밀러 올린공대 총장 등을 만나 현장실습 위주 대학교육의 효과를 직접 살펴봤다. 김 학장은 “올린공대를 둘러보고 넥스트의 교육 방향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학장은 충남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선임 엔지니어와 엔에이치엔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을 지냈다.
김 학장은 “올린공대가 학부 교육에서 학생들의 배움을 극대화하는 것은 넥스트와 취지가 같다”며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수를 여럿 확보하여 프로젝트 중심으로 가르치고, 기업체와도 직접 협력하는 방식의 학습이 넥스트에서 준비중인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구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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