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 - 풍요
열쇳말 - 풍요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베버에 의하면 원시사회에서 재화의 절대량은 지금보다 부족했지만 교환을 통해 상호 이익을 얻고, 자원이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대사회는 시장에 물건이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늘 결핍에 시달린다. 그것은 희소성의 원칙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베버는 한 사회의 풍요란 이처럼 재화의 절대량이 아닌 사회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국가의 번영, 즉 풍요를 어떻게 정의했을까? 그 또한 부의 총량을 국부의 척도로 보지 않았다. <국부론>은 국부의 정의 및 원천을 명시하며 시작하는데, 국민의 연간 노동이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원천이며, 국가의 부는 이런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총량으로 가늠한다고 했다. ‘총량’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은 사치품과 달리 부자라고 해서 더 많이 가지고 누릴 수 없다. 한 사람의 위(胃)가 한정된 것처럼 빈부와 상관없이 누구라도 생필품 사용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부론>에서 말하는 국가의 풍요는 국민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부족함 없이 사용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보통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하면 기본적인 의식주의 부족함이 없는 가운데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사회가 아닌, 좀 다른 것을 떠올린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의 한 장면. 경제학 박사 학위 준비 중인 번스는 경제학과 우등생 라즈에게 애덤 스미스에 대해 어떻게 배웠느냐고 묻는다. 라즈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가 탐욕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했다고 배웠습니다.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를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것도요. 설령 그 행동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번스는 경제학 박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 단 한 번도 <국부론> 전체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수업에서 시장과 비즈니스의 냉혹함을 설명하면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애덤 스미스를 끌어들인다. 국내총생산(GDP)을 높이기 위해 환경 파괴를 서슴지 않는 국가와, 털끝만큼의 손해도 용납하지 않은 채 이익에만 몰두하는 거대기업의 행태가 자유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이익 추구의 실상이며, 이런 욕심과 경쟁이 존재하는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였다는 설명이다.
라즈의 대답과 번스의 수업은 저자가 생각하는 애덤 스미스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통념을 드러낸 대목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탐욕과 이기심이 만연한 사회’와 ‘다 함께 행복한 사회’는 별생각 없이 듣기에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에서는 이런 괴리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자동차 정비공 해럴드의 몸을 빌려 부활한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이 <국부론>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한 부분만을 왜곡하여 전파하고 있다며 분노한다. 그러면서 <국부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덕감정론>을 읽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장을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인간 본성이야”라고 외치는데, 이 대목은 시장의 작동에 대해 말하기 전 <도덕감정론>에서 언급한 인간 본성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함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도덕감정론>에서 인간 본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찾아보자. <도덕감정론>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principles)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10)
<국부론>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익을 산출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까지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기심과 자기애를 제어하며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고자 하는 존재라는 인간관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 <도덕감정론>을 인용한 것은 반드시 <애덤 스미스 구하기>를 읽으며 <도덕감정론>이나 <국부론>을 찾아 읽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읽기로 작정했다면 끝까지 읽지 못하고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다. 다만 <애덤 스미스 구하기>에는 작가의 상상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므로 원전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책 뒤쪽에 붙어 있는 부록을 보자. 부록2 ‘자료 노트’에는 본문이 원전의 어느 부분에서 인용한 것인지, 그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다. ‘자료 노트’를 본문과 대조해 보며 읽었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원전에 대한 대강의 윤곽이 잡힐 것이다.
부록까지 읽고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로 넘어가 보자. 이 책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핵심을 <애덤 스미스 구하기>와 비슷한 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원전을 읽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며, 읽다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 대안으로 혹은 장차 원전으로 가는 다리[橋脚]로서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원전을 읽고 나서 일종의 해석으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는 원전의 방대한 내용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 읽다 포기할 정도의 분량이 아니므로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이 책에는 애덤 스미스 당시 영국 사회의 분위기, 저자의 생애, 주요 개념에 대한 해설 등이 포함되어 있어 원전의 이해를 돕는 참고서적으로서도 읽어볼 만하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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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구하기>조너선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생각의 나무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도메 다쿠오 지음, 우경봉 옮김,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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