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은 예습, 학교 수업은 복습이라 생각하기도
교사의 철저한 수업준비와 관리자 인식 갖춰져야
교사의 철저한 수업준비와 관리자 인식 갖춰져야
서울의 한 외고에 다니는 ㄱ양(18)은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했다. 영어는 저학년 때 시작하고 5, 6학년 때는 중학교 수학 과정을 배웠다. 1년 내지는 2년을 앞서서 진도를 나가고 이후에는 계속 반복했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1년이 좀 안 되게 선행학습을 했지만, 많이 한 친구들은 고등학교 과정 전체를 다 마치고 오기도 했다.
특히 외고 입학 전, 아이들 학력 수준도 확인하고 반을 나누거나 장학금을 주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 범위는 고등학교 과정의 수준이었는데, 교재를 미리 지정해준 뒤 알아서 공부하게 하고 시험을 봤다. “미리 시험을 치고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선행학습이 불가피하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일반고에 가더라도 수학 진도가 대개 빠르다고 한다. 법에 정해진 교과과정은 지켜야 하니까 보통 2학년 때 수능 범위까지 다 끝내고 그 이후부터는 문제풀이를 최대한 반복한다더라.”
ㄱ양은 주변에 선행학습을 안 하는 친구는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과정은 앞서가는 것보다 누가 많이 보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영어는 짧은 시간에 되는 것도 아니니까 더더욱 선행을 하게 된다. 그는 “학교에서 정규과정대로 진도는 나가지만 속도가 빨라서 수업이 소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행학습을 해서 일단 미리 한번 배우고 나면 수업 내용은 지루할 수 있지만 그만큼 익숙하니까 이해하기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행학습이 예습, 학교수업이 복습이라고 했다. 내신시험을 볼 때도 선행학습은 맛보기로 하고, 학교수업은 선생님이 강조하는 걸 위주로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필요로 한다면 선행학습은 필요하지만, 내신은 학교 선생님이 우선이니까 선행했다고 수업을 안 듣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지방의 일반고 2학년인 ㄴ양은 그 전까지는 혼자 공부하다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학원 다니는 친구들한테 뒤처질까봐 걱정돼서 학원을 등록했다. 그런데 3, 4개월 다니다보니 학원에 휘둘려 자기 공부가 없는 게 힘들고 자신이 느꼈던 위기감이 그냥 기분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고 그만뒀다. 이후부터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모르는 수학문제만 대학생인 친언니에게 물어본다.
그는 “방학 때 학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선행학습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찾아봐도 복습을 해주는 학원은 없었다. 그래서 학원을 다니게 되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선행학습을 하게 된다”며 “하지만 사실 선행을 했건 안 했건 학교 선생님들의 수업 속도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새 학기 때 아이들이 ‘한바퀴 돌고 왔다’(선행을 끝냈다)고 수업을 제대로 안 듣거나 선생님들도 그걸 전제하고 제대로 안 챙기고 진도를 팍팍 나가버린다. 그래서 다시 사교육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기나 친구들이나 진도를 무작정 나가봤자 실제로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선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도움이 된다면 자기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시간낭비라는 말이다.
선행학습은 예습을 넘어, 학습자가 학교 교육과정에 앞서서 하는 학습을 말한다. 보통 예체능이나 사회, 과학보다는 영어와 수학을 위주로 선행학습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1년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발표한 한국 수학교육 현안 조사 연구 자료는 보면, 초등학생의 64.2%, 중학생의 56.3%, 고등학생의 62.9%가 1학기 이상 선행학습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선행학습 정도는 초·중·고등학생 모두 절반을 넘는 이들이 적게는 1학기에서 많게는 3년 이상 선행학습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사교육 시장의 대세도 선행학습일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조사한 2011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교과 사교육 수강 목적 중 선행학습이 52.1%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말, 교육과학기술부와 경상북도교육청에서 주최한 ‘선행학습 없는 바른 교육 만들기 공모전’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공모전은 선행학습의 폐해를 인식하고 제 속도에 맞는 학습을 한 학생이나 학부모, 교원들의 경험과 우수학습법, 교육법을 발굴하기 위해 진행됐다.
이 공모전에서 학부모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경남 창원의 주정씨는 중학교 3학년 딸이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주변의 권유로 수학학원에 등록시켰다. 학원에서는 방학 3개월 동안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빠르게 가르치며 문제풀이를 반복했다. 그는 “애가 집에 와서도 계속 문제를 많이 푸는데 틀린 문제를 보니까 너무 단순한 거였다. 학원에서 깊이 있게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간략하게 설명하고 계속 문제만 풀어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이는 자꾸 문제를 틀리니까 나중에는 울면서 자신이 수학을 너무 못한다며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학원을 옮기기도 하면서 1년 정도 지났지만 아이의 자신감은 떨어지고 성적도 나아지지 않아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나섰다.” 그는 서점에 가서 자기주도학습이나 공부 잘하는 아이의 책도 읽고, 공부 습관에 대한 텔레비전 다큐도 적극적으로 찾아봤다.
“구체적 목표 세우고 자기 수준에 맞게 공부해야”
그러면서 학원의 시스템이 짧은 시간에 욱여넣는 식으로 선행만 해서 아이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 학원이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이니까 아이가 시키는 것만 하고 딱히 목표나 계획도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후 학원을 끊은 아이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학습계획도 짜면서 공부를 했다. 학원에서처럼 이해하지 못하면서 진도를 계속 넘어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이해한 만큼, 수준에 맞춰서 공부를 해 나갔다. 주로 <교육방송>(EBS)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공부하고 교과서 익힘 문제를 여러 번 풀었다. 엄마인 주씨가 한 일이라고는 스케줄 확인과 가끔씩 하는 잔소리뿐이었다. 그는 “혼자 공부하고 처음 6개월 동안은 딸의 성적에 크게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받은 점수를 혼자 해서도 똑같이 해냈으니 잘했다고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1년이 좀 지나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80점대였던 수학을 스스로 공부하면서 내공이 쌓이자 100점을 맞은 것이다. 또한 다른 과목의 경우도 수업 전후로 예습과 복습을 꾸준히, 충실하게 했다. 수업 전에 해당 과목 교과서 지문이나 익힘 문제를 한번 읽으면서 오늘 뭘 배울지 미리 알고 나면 수업 때 머리에 더 잘 들어온다고 했다. 1학년 때 전교 55등이던 딸아이는 3학년 졸업을 앞두고 1등까지 올랐다. 그는 “학원에서 한번 배우고 반복해서 배우면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자기 수준에 맞게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하다”며 “혼자 목표를 세우며 공부하면 동기부여도 확실하고, 나중에 성취했을 때 뿌듯함과 자신감이 생기더라. 이 과정에서 엄마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고, 아이는 자기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서울 성심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권기하 교사는 교원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선행학습만 잘했다고 대학 입시에 유리할 게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특히 요즘 대세인 입학사정관제는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실제 학교 수업 안에서 모든 평가가 이뤄졌을 때 특정 과목 성적만 뛰어나거나 팀워크에 녹아들지 못한 학생은 곤란하다. 선행학습보다는 수업 중, 방과후, 동아리 활동에서 본인이 뭘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흐름”이라고 얘기했다.
권 교사는 한때 사교육에 몸담으며 단과반 수업을 진행했었다. 학원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료를 만들고 강의능력을 키워야 한다. 당연히 수업 내용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될 수 없다. 반면, 학교에 들어와 보니 교사들은 수업보다는 행정 공문, 진학 지도, 청결 등에 집중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는 이런 인식과 시스템의 차이가 안타까웠고, 수업이 교사와 학교의 가장 최우선 관심사가 되도록 노력했다.
“동료 교사 2명과 함께 어휘인증제를 만들었어요. 1, 2, 3단계로 나눠 1년에 4번을 보는데,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고 그에 비례해 수행평가에 반영했죠. 운영이 잘되니 효과는 물론 아이들 반응도 좋더라구요.” 또한 수준별 분반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맞춤식 수업을 제공하고 학습 효율도 높이고 있다. 그는 “분반을 무조건 성적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본인의 수준보다 높거나 낮은 반을 선택하도록 한 뒤 일주일간 수업을 듣고 친구들끼리 맞교환도 가능하도록 했다. 우열반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불만 없이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외에도 집중영역제를 실시해 학기별로 1학기는 어법, 2학기는 쓰기나 독해 등으로 나누어 수업을 한다.
그는 항상 동료 교사들과 수업 중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개발하고 공유한다. 또 2년 전까지 <교육방송> 강의를 맡아 어휘 암기와 어법, 독해 수업방법에 대해 열심히 알렸다. 현재는 교육청 직무강사로 서울, 인천, 부산 등에 강의를 다니면서도 본인이 만든 자료를 여기저기 다 나눠준다. 학교 수업에서 교사가 완벽한 수업을 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수업만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도 수업 중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가 철저한 자료준비와 끊임없는 연수를 통해 수업 테크닉을 늘리고, 이를 관리 감독하는 학교 관리자의 마인드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행학습의 폐해를 직접 경험했거나 옆에서 지켜본 이들이 말하는 공통된 대안은 결국 ‘공교육의 정상화’였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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