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 - 식(食)
<음식의 제국>에번 D. G. 프레이저/앤드루 리마스 지음, 유영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식량의 세계사>톰 스탠디지 지음, 박중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에서 화자는 어머니가 덜어주신 설렁탕 국물에 밥을 말아 눈물을 삼키며 씹어 먹는다. 제힘으로 어머니를 돌보지 못하고 이모댁으로 모셔야 하는 가난과 절망, 그리고 그러한 아들에게도 여전한 어머니의 사랑은 한 그릇 설렁탕에 담겨 고스란히 전해진다. 반 고흐의 대표작인 ‘감자를 먹는 사람들’ 또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은 고된 노동과 배고픔의 고통을 잠재워줄 소중한 음식 앞에 앉아 있다. 감자가 담긴 접시를 앞에 두고 이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식탁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게 먹거리가 아니었다면 이들에게서 그토록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먹을 것이 주는 특별한 감동을 잘 알고 있다. 먹을 것을 통하면 낯선 이들 사이에 쉽게 공감의 길이 열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종종 백마디의 말을 음식을 만들거나, 차리거나, 먹는 장면으로 전달한다. 그렇기에 음식은 생존의 전제인 동시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평범한 진리를 여러 예술 작품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도 음식은 중요한 소재가 된다. 더불어 음식을 매개로 한 역사 탐구는 다른 소재에 비해 상당한 매력이 있다. 먹거리에 얽힌 인간의 역사는 화석화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생존의 발자취이기 때문일 것이다.
<식량의 세계사>는 인간 생활의 변천사를 먹거리를 중심으로 풀어나간 책으로, 현재 인류가 가장 많이 먹는 곡식인 밀, 벼, 옥수수 등 3대 작물을 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이들 작물이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개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과 작물 간 상호 의존성이 깊어졌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작물 경작을 통해 식량을 얻고, 농작물로 개량된 식물은 인간의 손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서식지를 넓힐 수 있었으므로, 인간에서 작물로의 일방적 영향이 아닌 쌍방의 이용이었다는 얘기다.
농경의 시작이 인간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다. 수렵채취를 통해 음식을 섭취하던 시기에 인간은 75종의 다양한 먹거리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었지만, 농경 이후 재배하는 작물 중심으로 식단이 바뀌게 되면서 여러 건강상의 문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평균 신장이 줄어들고, 구루병, 괴혈병, 빈혈 등 영양 불균형에 의한 질병이 발생했음을 증거로 든다.
한편 농경에서 비롯한 잉여 식량은 정치, 사회적으로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었다. 수렵 채집 위주의 원시 경제에서 구성원 간에 평등한 지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집단이 살아남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먹거리를 구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그들은 먹을 것을 찾는 대신 도로 건설, 건축, 예술 활동 등 다른 일에 동원되거나 몰입할 수 있었다. 즉 농경은 직업의 분화와 사회 전체적으로 조직화된 분업의 기반이 되었고, 식량 분배는 사회의 위계질서 및 거대 정치권력 수립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었다.
농업혁명에 이어 산업혁명 과정에서도 먹거리는 기계의 도입에 필적하는 구실을 했다. 감자와 설탕 같은 값싸고 열량 높은 음식은 노동자의 주식이 되었고, 석탄이 방적기를 돌리는 연료로 이용되었듯 값싸고 열량 높은 음식은 노동의 연료로 공급되었던 것이다. 설탕은 1800년 노동자의 전체 칼로리 구성 중 4%에 해당했지만, 점차 비중이 높아져 1900년에는 22%까지 올라갔다. 설탕을 넣은 차는 노동자가 맑은 정신으로 오랜 시간 작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식량의 세계사>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혁명은 ‘녹색혁명’이다. 질소가 포함된 인공비료의 개발은 녹색혁명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발명이었다. 이후 증대된 농업생산력으로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정도의 식량을 생산해내기에 이르렀다. 과거 대기근을 예상했던 맬서스나 폴 얼리크의 경고가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녹색혁명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인공비료 및 농약의 사용, 관개를 위한 댐 건설 등은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되었고, 농약 중독 등 노동자의 건강 문제 또한 심각하게 떠올랐다. 이에 대해 <식량의 세계사>에서는 비료 양 조절, 전통 농법과 현대 농법의 혼합, 대수층 관리, 유전자조작작물(GMO) 이용 등의 해법을 제시한다.
<식량의 세계사>와 함께 읽어볼 <음식의 제국>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잉여 식량 확보, 저장 및 운송, 판매 등 식품의 생산 및 유통을 축으로 접근한다. 식량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해 좀더 많은 논의를 담고 있고, 현재의 식량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공정무역, 유기농, 슬로푸드 등의 소주제를 담고 있어, 풍요로운 관점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유전자조작작물에 대한 각 저자의 입장도 대조해 볼 만하다. <식량의 세계사>에서는 유전자조작작물을 농경의 시작부터 진행되어온 육종 개량의 연장선에서 설명한다. 이 책은 유전자조작작물 출현의 필연성과 필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반면, <음식의 제국>에서는 다소 회의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중국에서 개발중인 유전자 조작 벼가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등 예기치 못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에서 그러한 저자의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음식의 제국>과 <식량의 세계사>는 농경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식량이 문화에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그런데 내용 대부분이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 중심이라 전 지구적 조망이라고 보기 어렵다. 많이 아쉬워 다음 회에는 한국, 중국의 음식문화를 다룬 책을 두 권 더 소개할 예정이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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