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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교육 공약 가운데 공교육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올 정책으로 꼽힌다. 박 당선인은 중학교의 한 학기를 진로탐색 기회로 제공하는 자유학기제를 통해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는 교육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도 이 공약의 취지에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준비 없이 도입될 경우 형식적으로 운영돼, 오히려 교육 부실과 사교육 증가 등의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자유학기제를 내실있게 운영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4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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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체험 중점학교’ 서울 경수중
진로 수업 통해 ‘자기 이해’ 하고
현장 체험 통해 적성여부 시험해
노군 “작가 만난뒤 더 노력하게 돼”
이양 “체험뒤 적성 안맞아 진로 선회”
교사 “아이들 생각 몰라보게 깊어져”
“평소 수업시간엔 쥐죽은 듯 있던 아이가 ‘모의 창업 체험’ 시간에 아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손님을 끌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친구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놓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서울 성동구 경수중에서 진로진학 상담을 맡고 있는 김수영 교사는 모의 창업 체험을 통한 이지헌(가명·16)군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이군은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평소 영어와 수학 등의 교과 성적은 20~30점을 겨우 받는다. 기초가 거의 없다 보니, 수업시간에는 딴 곳을 멍하게 바라보곤 한다. 질문을 받아도 대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고, 대답을 아예 못하거나 안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은 이군이 늘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학교에서 희망하는 학생과 교육복지 지원 대상 학생 등 30여명을 모아 실시한 모의 창업 체험에서 이군은 중학교 입학 뒤 처음으로 ‘적극성’을 보여줬다. 모의 창업 체험은 6~7명의 학생이 모여 이틀 동안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발표하고 제품을 만들어 판 뒤 사업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화분 가게를 창업한 이군의 팀에서 이군은 제작과 마케팅을 맡아 가게 이름을 짓는 데 의견을 내고 화분을 예쁘게 꾸미기도 했다. 다른 팀들은 사진 액자 가게, 손수건 가게, 머그잔 가게 등을 창업했다.
서울 성동구 경수중 3학년 학생들은 지난해 5월15~16일 이틀 동안 요리사, 제빵사, 수의사, 아나운서, 피디 등 60여개 직업현장에서 직업체험을 했다. 경수중학교 제공
경수중은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21개 직업체험 중점학교 가운데 한 곳이었다. 경수중은 일부 학생들이 참여하는 창업 체험 외에도 1~3학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진로교육 커리큘럼을 짜서 1년간 운영했다.
1학년은 한 학기 동안 ‘진로와 직업’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고 적성을 찾는 등 주로 ‘자기 이해’ 활동을 한다.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에는 ‘행복수업’을 통해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2학년들은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와 연계해, 한 학기 동안 철학수업을 한다. 3학년은 5월에 이틀 동안 자신이 원하는 작업장에 3~5명씩 짝을 지어 직업체험을 나간다. 체험에 앞서, 진로·국어·가정 등 3개 교과목 시간에 ‘꿈 찾기’를 주제로 교육을 한다. 진로 시간에는 ‘나의 숨은 능력 30가지 찾기’ ‘내 꿈을 담은 직업 및 관련 정보 찾기’ 등을 통해 자신의 적성과 이에 맞는 직업 정보를 찾고, 국어 시간에는 진로 시간에 한 활동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한다. 직업체험을 다녀온 뒤 체험 보고서를 쓰고 발표대회를 여는 사후 교육까지가 ‘현장 직업체험’의 과정이다.
경수중 학생들이 지난해 현장 체험을 한 직업은 컴퓨터 조립기사, 아나운서, 제빵사, 피디, 연극배우, 자동차 정비사, 어린이집 교사, 일러스트레이터, 요리사, 변호사 등 60개에 이른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틀간의 직업체험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은 한 뼘 더 자랐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노석현(16)군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을 찾았다. 등단한 문인들이 입주해 작품활동을 하는 곳이다. 노군은 이곳에서 시인 김광만씨를 만났다. 노군은 “작가라는 직업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멘토님이 글 쓰는 직업의 실상도 알려주시고 글을 잘 쓰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조언도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직업체험을 다녀온 뒤 노군에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어휘가 있으면 꼭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사전을 찾아본다. “단어의 뜻이나 쓰임새를 잘 알아둬야겠더라고요. 사용하는 단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책도 예전보다 더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게 됐다.
청소년지도사를 꿈꿨던 이보람(16)양은 직업체험을 다녀온 뒤 희망을 바꿨다. “직접 가서 체험해보니, 청소년지도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유아교육과에 진학해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게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요. 고등학교에 가서 꿈에 대해 조금 더 탐색해봐야죠.”
공부가 뒤처지는 이아무개(16)군은 창업체험은 물론 직업체험도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군은 동물 사육사가 꿈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물 사육사가 있는 직업 현장은 섭외가 안 돼, 서울 용산에 있는 컴퓨터 부품 조립가게에 갔다. 이군은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있어서 한 번 가봤다. 직접 해보니 흥미로웠고, 사육사에 대해서도 조금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국어 시간에 ‘꿈 찾기 프로젝트 보고서’ 수업을 진행한 김지선 교사는 “보고서를 쓰는 작업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정보를 찾고, 생각과 정보를 정리한 뒤 글로 써내는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이 좋아지고 생각도 몰라보게 깊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자신과 직접 관련된 내용이다보니 수업 몰입도도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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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강사진 부족땐 ‘백화점식 체험학습’ 난립 ‘진로교육 필요성’ 교사·학생·학부모 합의 필요
시행착오 줄이려면
진로교육 전문가들은 자유학기제의 취지는 좋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도입할 경우 부작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한겨레> 설문조사에 응한 전문가 32명은 자유학기제를 섣불리 도입했을 때 나타날 부작용(복수응답)으로 ‘진로교육을 할 수 있는 교원과 강사진 부족으로 인해 체계 없는 체험학습만 백화점식으로 운영될 우려’(23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교육과정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해 자유학기 자체가 부실하게 운영될 우려’를 하는 이들도 21명이나 됐다. ‘집중이수제처럼 한 학기에 각종 학교행사를 몰아서 운영할 우려’(16명)가 그 뒤를 이었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교육과정 연구 및 시범학교 운영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또 교육 3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종범 청주교대 교수(직업교육)는 “교육공동체의 합의가 없고 교원들의 진로교육 관련 연수가 제대로 안 된 채 자유학기제가 시행될 경우, 진로교육 자체가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학교 밖 사교육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진로교육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이 교육이 아이들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설득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은영 서울 등원중 수석교사도 “정부가 짧은 시간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교사들이 이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학부모들에게도 이 시기에 단순한 지식 위주의 수업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공교육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설득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적으로 줄 세우는 시험 중심의 평가방식에서, 무엇을 배우고 이를 자신의 진로 방향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평가하는 ‘학습 중심’의 평가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학부모·교사가 배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설문조사에 참여해준 분들>
강순희 경기대 교수, 김병숙 경기대 교수, 김봉환 숙명여대 교수, 김진호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김희수 한세대 교수, 박완성 삼육대 교수, 서우석 경인교대 교수, 송병국 순천향대 교수, 어윤경 공주대 교수, 이종범 청주교대 교수, 이은경 명지대 교수, 임경희 순천대 교수, 임은미 전북대 교수, 정철영 서울대 교수, 조붕환 공주교대 교수, 김송미 덕이중 교장, 오금향 교하중 교장, 허은영 등원중 수석교사, 맹영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원,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원, 이지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정연순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장, 정윤경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원, 진미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한상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원,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등 좋은교사운동 소속 교사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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