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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YMCA 간사로 기독학생운동 통합 추진 / 오재식

등록 2013-03-04 19:42

오재식은 1967년 1월 대한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대학부 간사를 맡아 기독학생운동단체 통합을 추진하며 그 방안의 하나로 ‘학생사회개발단’(학사단)을 조직했다. 사진은 그가 2011년 7월 대학부 후배들에게 40년 전 ‘알린스키 조직운동과 학생사회개발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YMCA전국연맹 제공
오재식은 1967년 1월 대한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대학부 간사를 맡아 기독학생운동단체 통합을 추진하며 그 방안의 하나로 ‘학생사회개발단’(학사단)을 조직했다. 사진은 그가 2011년 7월 대학부 후배들에게 40년 전 ‘알린스키 조직운동과 학생사회개발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YMCA전국연맹 제공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41
오재식은 1966년 11월 귀국하자마자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일을 시작했으나 강원용 원장과 뜻이 어긋나 곧 그만뒀다. 앞뒤 생각 없이 사표를 내고 보니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아내 노옥신은 재식이 유학 간 2년 동안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교사 생활을 하느라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쉴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사이 옥신은 불광동에 집까지 장만해 놓았다. 당시 전세 계약기간인 6개월마다 이사를 하느라 힘들었던 옥신은 마침 정부에서 개발한 값싼 국민주택 청약에 응모했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되었던 것이다. 집은 10평으로 비좁았지만 마당은 60평이나 되었다. 미국에서 옥신의 편지를 통해서 집을 상상하곤 했던 재식은 불광동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옥신이 새벽마다 뒷산에서 캐다 심고 잔디밭에 갖가지 꽃들로 가득한 정원이 그야말로 별천지 같았다. 마당 한편의 닭장에는 닭까지 수십마리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달걀이라도 먹일 겸 키운 닭은 사실 재식이 돌아오면 몸보신시킬 목적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면서 가장 노릇을 완벽하게 해온 옥신에게 재식은 그저 고마움에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이제 다시 가장의 도리를 해야 할 재식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마땅한 취직자리를 찾지 못해 한동안 친구에게 돈을 빌려 생활했다. 급기야는 미국에서 너무 마음에 들어 큰맘 먹고 사왔던 타자기까지 팔아가며 근근이 버텨야 했다.

그런 어느날 숭실대 교수로 있는 조요한 선생한테 연락이 와 다방에서 만났다. 그는 서울대 기독학생회 선배이기도 했다. “일해야지?” “그래야 하는데 일할 곳이 없어요.”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던 재식에게 그가 나직이 물었다. “와이엠시에이(YMCA) 자리 내가 제안해볼 테니, 너 해볼래?” 조 선생의 장인은 그때 와이엠시에이 총무인 김치묵 목사였다.

당시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와이엠시에이 학생부 간사인 강문규 선생이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세계연맹)으로 가게 되어 후임자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재식이 추천됐을 때 내부에서는 반발이 있었다. 왜 굳이 기독학생회(KSCM) 출신에게 일을 맡기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임 강 선생과 학생부 위원장인 감리교신학대학의 김용옥 교수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덕분에 재식은 67년 1월 와이엠시에이 대학생부 간사로 부임할 수 있었다.

재식이 기독학생운동으로 돌아와 보니 당장 기독학생운동 단체의 통합이 시급했다. 세계연맹에서는 이미 55년 ‘1국 1회원 원칙’에 따라 한국의 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해달라는 권유를 했고, 그 뒤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현영학·서남동·김용옥·조요한 교수 등 당시 와이엠시에이의 지도교수진은 대단했다. 다행히도 이들은 대학시절부터 잘 알던 사이라 재식을 환영해주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재식은 통합 문제를 꺼냈고 모두들 찬성이었다. “통합을 위해선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그야 말할 것도 없지. 네가 한번 해봐.”

이들이 지원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한국기독학생회(KSCM) 총무는 박형규 목사였고,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총무는 박영숙 선생이었다. 박영숙 선생은 학생부 간사를 할 때부터 통합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 그 후배인 이종경 간사에게도 그 뜻을 전해둔 상태였다. 와이엠시에이에서 재식과 함께 일하는 이신행 간사까지, 이들 세 단체의 실무자들이 모여 통합운동에 관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재식은 통합을 위해서는 공동의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사울 알린스키에게 배운 원칙이었다. 공동의 지향점을 향해 걸어가면서 서로 가까워짐으로써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 경험으로는, 단체끼리 무조건 통합만 해놓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으면 오히려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우선 단체들이 공유할 수 있는 미래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그 지향점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현재진행형의 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재식의 의견이 제시되자 곧 격렬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실무자들끼리 열심히 토론한 결과물을 이사회나 위원회에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때 마침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재식은 ‘왜 한국의 사회문제 현장에서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일을 하는가.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도 현장에 가야 한다’고 선동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조직이 바로 학사단이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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