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옹 지음, 아이세움 // <한글의 탄생> 노마히데키 지음, 김진아 김기연 박수진 옮김, 돌베개
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 - 훈민정음
열쇳말 - 훈민정음
‘훈민정음’이라고 하면 어렵고 무겁고 공부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느낌부터 드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읽고 쓰기를 다 하는 이도 많은데 말이다.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을 읽을 때만큼은 그런 마음의 부담을 접어도 된다.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 배경, 원리, 보급과 발전 등에 대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김슬옹은 훈민정음(해례본)에 매혹되었다고 고백한다.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적었으나 당대 최고의 철학을 담고 있으며, 감칠맛 나는 비유가 살아있고, 운율이 아름답게 맞아떨어지는 등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은근하면서도 꾸준한 끌림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에서는 먼저 훈민정음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훈민정음은 글자 이름이면서 책 이름이기도 하다. 언해본, 예의본, 해례본 등이 있는데, 이 중 해례본은 1962년 대한민국 국보 70호로, 1997년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창제 동기와 취지를 설명한 세종 서문과 글자를 만드는 원리와 기준을 담은 해례, 창제 경위, 의의, 가치 등을 적은 정인지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유교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았던 당시,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었다. 배우고 쓰기 쉬운 문자는 백성을 가르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터였다. ‘바른 소리’에는 표준 발음을 설정하여 혼란스럽던 소리를 가지런히 하겠다는 뜻이 반영되었다.
책에서는 백성 교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 당시의 사건을 소개한다. 세종 즉위 후 10년 되던 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존속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 이후 어전회의에서 능지처참으로 다스리자는 안이 나왔지만, 이보다는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세종은 충신과 열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급하여 그로써 풍속을 정돈하고자 했다. ‘왜 가르치고자 했는가’에 대한 동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언어학자로서 세종의 면모를 살펴 적은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종은 소리에 관한 학문인 ‘운학’과 문자에 관한 ‘문자학’을 다룬 여러 서적을 탐독했다. 훈민정음 반포 이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운서 연구에 매진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독자적인 운서인 <동국정운>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세종실록 여러 곳에 문자학을 장려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세종의 탁월한 음감 또한 언어 연구에 결정적 요소였다. 당시는 음성 실험 기구 등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고,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내는 데 순전히 인간의 청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는 훈민정음 창제 10년 전 편경 연주를 듣고 난 세종이 아홉 번째 매가 내는 소리가 약간 높다고 지적하는 장면이 있다. 편경을 만들 때 가늠하기 위해 사용했던 먹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리에 대한 세종의 예민한 지각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에서는 이와 같은 세종의 예술 감각, 수학 및 과학의 장려, 우주만물과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등 다양한 요소가 훈민정음 창제에 녹아들었음을 설명한다. 훈민정음은 음악, 미술, 수학, 과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통섭 학문의 열매라는 것이다.
<한글의 탄생>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원리, 이후의 변천 등을 다루고 있다.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 이름이며, 오늘날은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결국 <한글의 탄생> 또한 훈민정음 연구의 한 맥으로 볼 수 있다.
이 책 저자 또한 훈민정음에 매료된 사람이다. 미술가로 활동하던 중 한국어와 한글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이후 독학으로 공부하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한국어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한국어를 모어로 하고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한글은 숨을 쉬듯, 물을 마시듯 자연스레 삶에 스며 있다. 한글을 적으며 전율을 느끼거나 감탄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내 것에 대한 겸양 또한 대놓고 찬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한글의 탄생> 저자 노마 히데키는 일본인이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 놓고 경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책의 곳곳에서 그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와 같은 음성학적인 기술의 리얼리티는 역시 압도적이다”(157쪽), “(방점은) 실로 이해하기 쉬운 형상화이다. 평성에는 무점, 즉 ‘제로’를 찍는다는 아이디어도 재미있다”(197쪽) 등 훈민정음(해례본)을 놀라워하며 즐겁게 읽는 저자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일본 문자인 가나와 한글을 비교한 대목에서도 이런 눈길이 한결같다. 한자 표기에 있어 가나와 한자는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글은 한자와 한 글자씩 대응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글이 한자와 함께 써도 조화를 이루는 편리한 문자임을 역설한다. 더 나아가 한글로 일본어를 적어보기까지 한다. 그렇게 하고 나니 가나의 다섯 모음 ‘아, 이, 우, 에, 오’가 확연하게 드러나며 동사의 활용 구조가 선명해진다. 저자는 가나만으로 표기하여 배울 때는 이런 원리를 찾아내기 힘들다고 덧붙인다.
<한글의 탄생>은 한글 창제 및 변천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다른 훈민정음 연구서와 맥락을 공유하지만, 이와 같은 ‘바깥’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글에 대한 연구와 감상 모두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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