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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이들은 졸지 않고, 부모는 기다려주고

등록 2013-09-02 20:26

황인춘(왼쪽 둘째)씨 가족이 8월2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자택에서 연초 손수 만든 각자의 신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가장 인상깊었던 일과 새해 다짐 등이 쓰여 있다. 황씨는 가족간 소통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법을 깨칠 수 있게 도와준 점이 사교육 탈출의 열쇠였다고 귀띔했다. 왼쪽부터 딸 주혜양, 황씨, 부인 이순나씨, 아들 진우군.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황인춘(왼쪽 둘째)씨 가족이 8월2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자택에서 연초 손수 만든 각자의 신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가장 인상깊었던 일과 새해 다짐 등이 쓰여 있다. 황씨는 가족간 소통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법을 깨칠 수 있게 도와준 점이 사교육 탈출의 열쇠였다고 귀띔했다. 왼쪽부터 딸 주혜양, 황씨, 부인 이순나씨, 아들 진우군.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교육 탈출] ‘사교육 끊은 지 5년’ 황인춘씨 가족
일요일 오후, 인터뷰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서울 도봉구 황인춘, 이순나씨 집에 들어섰다. 고교 1학년인 딸 주혜와 초등 6학년인 아들 진우는 직접 반죽한 머핀을 오븐에 넣느라 바쁘다. 아빠가 직접 내린 커피로 시원한 라테 한 잔을 즉석에서 내준다. 집안을 휭하니 둘러보니 서재 문에 매달린 커다란 샌드백이 먼저 눈에 띈다. 아빠와 아들이 쓰는 것이려니 했더니 뜻밖에도 주혜 것이란다.

벽면에 겹겹으로 걸린 상장들보다 눈길을 더 잡아끄는 것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걸린 4개의 <가족일보>. 가족 4명 각자가 작년의 베스트3 사건과 올해 꼭 해야 할 일 3가지를 적어 놓았다. 가만, 커다란 세계지도가 거꾸로 걸려 있네. 지도를 돌려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대륙으로 막힌 나라가 아니라 망망대해를 발판으로 세계 어디로든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걸어놓았다고. 환경이 다르면 삶도 달라진다는데, 5년 넘게 ‘사교육 탈출’을 실천하고 있다는 이 가족, 뭐가 달라도 다를 것 같아 서둘러 인터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사교육을 하지 않았나?

아빠 “진우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글자도 제대로 몰랐다. 저학년 때 영어와 독서논술 학원에 잠깐 보낸 적이 있었는데 하기 싫다는 의견을 존중해 그만두게 했다. 사교육을 전혀 안 해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는데 우연히 <아깝다 학원비>라는 소책자를 접하고 부부가 함께 교육을 받으면서 믿음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교육받은 대로 잘 지켜왔다. 올해 큰아이가 고교생이 되면서 이제 또 다른 고비가 온 것 같다. 공부라는 게 단시일에 되는 게 아니고, 중학교 때 하던 대로 차곡차곡 해나가다 보면 역시 잘해나가리라고 믿는다.”

사교육을 안 받으면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나?

아빠 “3년 전까지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문 앞에서 가족들이 반드시 외치는 구호가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눈은?” “귀는?” “입은?”이라고 선창하면 주혜와 진우는 “반짝반짝!” “쫑긋쫑긋!” “또박또박!”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한 3년을 그렇게 했다. 성적보다는 수업시간에 졸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생활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몇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아이들도 몸으로 받아들였다. 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것이 일상의 좋은 생활태도가 된 것 같다.”

엄마 “집에서는 주로 그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짧게 복습한다.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짧지만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한 덕분에 나오는 효과는 다른 아이와 비슷하거나 더 좋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방과 후 학교에서 영상제작동아리, 암벽등반동아리, 축구동아리 등의 활동을 하고 따로 복싱, 기타, 축구, 합기도 등의 취미생활도 한다. 공부를 많이 할 시간도 학원에 갈 시간도 없다. 밤에는 아무리 늦어도 11시 전에 자도록 한다.”

주혜 “친구들도 집에서 어떻게 공부하는지, 학원은 왜 안 다니는지 물어보곤 한다. 그러면 ‘너 수업시간에 잘 때 난 안 잔다’고 대답해 준다. 그럼 아이들도 ‘그래 맞아, 너 안 자더라’ 하고 인정한다. 어떤 선생님은 진짜 졸리게 가르치시지만 그럴 때 다른 아이들이 다 자도 나는 정말 안 자려고 노력한다.”

진우 “공부에 관심 많은 친구가 나를 따라하고 싶어 한다. 그 애도 학원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하고 싶다면서 자기 엄마한테 얘기도 하고, 우리 집에 와서 어떻게 공부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그런다. ‘수업시간에 잘 듣고 교과서 위주로 복습을 해라’라고 가르쳐 줬다. 친구는 이제 내 말을 믿는데 친구의 엄마는 아직도 안 믿어서 아직 그 친구를 학원에 보낸다.(웃음) 그래도 나는 누나만큼은 집중을 못 한다.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그런다. 그래도 들을 건 다 듣는다. (웃음)”

고1 딸, 초등 6년 아들
학교서 배운 건 그날 복습하고
성적보다 수업시간 집중에 초점
방과후엔 복습, 취미생활 병행하고
늦어도 밤 11시전엔 잠자리에

아이들 스스로 계획표 짜고 실행
4년 지나자 ‘자기주도’ 몸에 배어
부모 임무는 관심 갖고 지켜봐주기

학교 수업에 집중하는 것 말고 또 다른 것은 없나?

아빠 “아이들이 ‘자기주도’가 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자기주도’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더라. 우연한 계기로 ‘계획표’에 주목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표를 짜고 자기가 계획한 대로 실행해 본다면 그게 자기 주도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시험 때와 방학 때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표를 짜도록 했다. 처음부터 아무런 가이드 없이, 무조건 자기들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못 지킬 게 뻔한 계획표를 짜는 걸 보면서 속으로 답답했지만 말 안 하고 꾹 참았다. 일부러 시행착오를 많이 겪게 했다. 스스로 짜보고 미흡하더라도 일단 짧게라도 실행해보고, 뭐가 문제인지 스스로 알아보게 했다. 나중에 애들이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안 가르쳐 줬느냐고 짜증을 많이 냈다.(웃음) 그런 과정 속에서 두 번의 방학을 소비했다. 처음에는 일 단위로 욕심껏 빽빽하게 짜다 보니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꾸 하다 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양도 알게 되고 생활의 변수까지도 파악하게 된다. 계획표를 점점 여유가 있게 짜니 스스로 목표 삼은 것을 거의 다 이루게 되면서 자기주도의 틀이 잡혔다. 계획표 평가는 계획대로 했는지를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았다. 그것과 성적을 연관시키지는 않는다.”

주혜 “시험 3주 전에 3주간의 계획표를 다 짠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공부의 양을 적고 그대로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는데 아무리 많이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킬 수 있으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짜야 한다. 계획표는 누구를 보여주려고 짜는 게 아니라 내가 지키려고 짜는 거니까.”

학원에 다녀서 더 잘하고 싶진 않나?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생길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

주혜 “공부를 더 잘하고 싶긴 한데, 학원에 다닌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많이 봤다. 최상위권 아이들 중에 학원에 안 다니는 애들도 있다. 그럼 뭐, 그렇게 힘들게 학원에 다녀야 하나? 공부가 다는 아니지 않나. 놀기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빈둥거리기도 해야 한다. 모르는 문제는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오래 걸려도 그냥 혼자 붙잡고 있는다. 혼자 어렵게 공부하면 그게 더 잘 외워지고, 며칠씩 끙끙거리다가 풀면 기분이 좋다. 어려운 문제를 그냥 한두 시간 동안 다 해 버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똑똑한 애들이라면 그냥 보고 있으면 풀리겠지만 나는 그렇게 안 된다. 한번 풀어보고 모르겠으면 그냥 놔두고 다음날 또 풀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생각나지 않던 수학 공식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냥 풀린다. ”

아빠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여유가 있다면 모든 아이들이 다 가능할 것이다. 빨리 해결하라고 재촉하지 않고 스스로도 급할 게 없다면,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남들과 달리 사교육 없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불안하지는 않나?

엄마 “불안하다. 분명히 부모로서의 욕심과 욕망이 아직도 내 안에 숨어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떠올린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된다. 욕심을 많이 내려놓긴 했지만 잔소리도 하고 싶고 성적에도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그럴 때면 남편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만약 다른 부모들도 4년 정도 따라했는데 이만큼 못하면 그 아이들은 공부에 적성이 없다는 얘긴가?

아빠 “그럼 좀더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방법도 가족만의 특별함이 있고 아이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밖엔 답이 없는 것 같다. 부모는 그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다. 부모가 버티는 데까지가 한계다. 다니면서 내 이야기 해주면 다들 부러워하면서 스킬과 테크닉, 이런 것만 따라하려고 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지속적으로 못한다는 거다. 짧은 시간에 좋은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방법들인데 부모들은 아이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탓에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리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엄마 “자기주도가 되기까지는 무조건 방치하는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어릴 때 혼자 할 수 있는 건 혼자 하게 하고, 문장 불러주기나 답 맞추기 정도는 처음엔 옆에서 도와줬다. 그렇게 한 학기 정도 지나니 그것도 다 혼자 할 수 있게 된다. 이젠 옆에 아무도 없어도 된다.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잘 들여 주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것 같다.”

아빠와 엄마가 다른 부모들과 비교해 볼 때 특별히 다른 점이 있나? 부모님을 잘 만난 것 같나? %로 평가하자면?

주혜 “뭐, 그렇게 다른 점이 있나?(웃음) 중학교 때 어쩌다 한번 성적이 잘 나오니 공부가 재미있고 공부가 막 하고 싶었다. 근데 고등학생이 되니까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 고민을 부모님께 이야기했는데 그냥 편하게 들어주셨다.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님과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마음 편하고 좋다. 근데 다른 아이들은 자기 부모님과 이야기를 잘 안 한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하고 좀 친한 것 같다. 공부에 대해서 자유롭게 해 주니 마음도 편하고. 90%는 잘 만난 것 같다. 10%는 티브이와 컴퓨터를 마음대로 못하게 해서 깎았다. (웃음)”

진우 “아빠를 생각하면 엄마를 도와주는 모습이, 엄마는 나를 반겨주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70% 정도 부모를 잘 만난 것 같다. 30%는 티브이와 컴퓨터를 통제해서 깎았다. (웃음)”

황인춘, 이순나씨 부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게 하지만 유일하게 통제하는 게 텔레비전 시청과 컴퓨터 게임이다. 가족 전체의 생활 패턴을 흩뜨리기 때문에 텔레비전 시청과 컴퓨터 게임은 주당 2~4시간으로 철저하게 제한해 왔다. 이제는 각자 취미활동으로 바빠 티브이나 컴퓨터를 할 시간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 주혜와 진우가 남은 머핀 두 개를 예쁘게 싸서 건넨다. 진우는 “저는 완전 우등생은 아니고요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고 운동 잘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 사이에서 좀 노는 정도예요”라며 멋쩍어했다. 돌아오는 길,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주혜, 씩씩하고 해맑은 진우의 얼굴이 떠올라 나 혼자 배시시 웃는다.

김정주/<아이와 함께 제주도 배낭여행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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