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남자학교에서 연극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명예교사인 배우 안석환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남자학교 제공
[함께하는 교육] ‘남자학교’ 다니는 청소년들
지난 5월 말 남자학교가 문을 열었다. 16~18살 소년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명예교사들을 만나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느끼고 배우는 곳이다. 무뚝뚝하고 혼란스러운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함께’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있다.
“애들이 숫기가 없어서 아직 말을 잘 못해요. 일단 선생님이 말문을 트면 아이들도 할 겁니다.” (고무신. 남자학교 교장인 그는 본명 대신 ‘고무신’이라는 활동명을 쓴다.)
“요즘엔 잘 모르겠지만 저 어릴 때는 여자는 조신해야 하고 남자들은 무게감을 지니고 살라고 강요받았어요. 저는 여기에 내성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한테 말하는 것만 해도 스스로 대견스럽네요.(웃음)”
그룹 시나위 리더인 신대철씨의 말이다. 지난 8월30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남자학교. 이곳에 신씨와 직장인 밴드 ‘알트 탭’ 그리고 16~18살의 남학생 12명이 모였다.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과 꿈을 이루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시나위 신대철 등 교사로 참석
남자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기획한 ‘문화예술 명예교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학교다. 5월31일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씩 11월 초까지 운영된다. 명예교사로 신씨 외에도 배우 안석환, 요리사 박찬일씨 등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참여했다.
고무신 교장은 “남자학교는 소년들이 혼란스럽기만 한 성장통을 함께 나누고 롤모델을 만나 자신 있게 자신을 살아낼 수 있게 연습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소년들에게 왜곡된 남자다움에서 벗어나 올바른 남성성을 형성시켜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 신체적·정신적으로 과도기를 맞은 아이들에게 집짓기·도예·연극·음악 등을 통해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처음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로 직접 집을 지었다. 몸을 움직이기를 극도로 싫어한 아이들에게 힘들지만 성취감도 맛보게 했던 시간이었다. 연극시간에는 몸의 감각을 깨워서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또 감정표현에 무뚝뚝하고 소통에 서툰 남자아이들이 대본 읽기를 통해 극중 인물을 분석하며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느끼도록 했다. 도예시간에는 10㎏짜리 흙덩이를 안고 마을 한 바퀴를 돌게 했다. 이때 흙은 아이를 의미한다. 손에서 절대 내려놓지 않도록 규칙을 정해 부성애를 체험하는 동시에 가족을 되돌아볼 기회를 마련했다.
이날 신씨는 “아버지가 대마초 사건으로 잡혀가고 활동정지가 내려져 집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아버지를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연히 기타를 배우게 됐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음악을 안 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밴드를 하면서 ‘조화’를 배우고 감정이 제대로 녹아든 음악이 감동을 준다는 것도 알았다”고 했다.
학생들은 신씨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하라고 하자 쭈뼛쭈뼛하고 고개만 흔들었다. 고무신이 물었다. “말 못하고 쭈뼛해하는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의 어린 시절과 이 아이들의 자라는 과정이 분명 다를 거 같은데요.” 이에 신씨는 “나도 사실 이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운을 떼며 “하지만 같은 게 하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 나이 때는 그랬다. 인생을 살아가는 게 결국 그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남자로 살아간다는 건 뭘까
성장통 겪는 청소년들의 고민에
문화예술 명사들이 나섰다 롤모델과 직접 대화하고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니
왜곡된 남성성이 벗겨지고
배려와 여유 마음 자리잡는다
삶의 주체로 다시 서는 순간이다 그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목표를 가져야 해요. 난 뮤지션이니까 음악적으로 업적을 남기고 싶어요. 여러분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자꾸 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착각 때문에 아무것도 찾지 않거나 멈춰버린 경우가 있는데 ‘이대로 살래’ 하는 순간 진짜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퇴물이 되는 거죠. 나이가 먹어도 진취적이고 새로운 걸 계속 찾는 사람은 뭔가 해내요. 여러분들 모두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꾸려나가길 바라요.” 고등학교 1학년인 김아무개군은 “뭔가 살면서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어서” 남자학교에 들어왔다. 그는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딱딱한데 이곳은 성적과 상관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편하게 대해준다”며 “동네 형처럼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내가 성장한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는 아빠와의 관계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고 일 때문에 힘들어서 아빠를 한 달에 일주일 정도 봤다. 무책임하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 모습에 실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곳에서 남자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같은 남자니까 공감대가 생기고 가끔 아빠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신대철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이해를 하게 돼요. 가족에게 소홀하고 술을 마시는 게 아빠만의 삶의 무게가 힘들어서 그렇다는 것을.” 김군은 여기 와서 내적인 문제나 자기 스스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학교 때문인지 몰라도 예전에는 상처를 숨기고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여기 선생님한테 얘기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고 했다.
“자신 낮추는 게 훨씬 남성다워”
올해 4월 고입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 진학을 준비중인 김재현(18)군은 남자학교가 남다르다. 5살 때 할머니가 절에 보내서 그곳에서 동자승으로 지내다 사춘기 때 뛰쳐나왔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싶은 마음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뒤 청소년보호시설에서 지내던 중 우연히 남자학교를 접했다. “무엇보다 ‘소년, 남자가 되다’라는 주제가 맘에 들었어요.”
초창기에는 힘들었다.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남자들만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와 경계심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 와서 ‘안녕?’ 하며 인사했는데 당황해서 ‘너, 나 아냐?’라고 맞받아쳤어요. 그래도 한편으론 고마웠죠. 저도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점점 인사성도 밝아지고 활발해졌어요.(웃음)”
김군은 그동안 아빠와의 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었고 롤모델도 찾을 수 없었다. 혼자 지내다 보니 남을 잘 안 믿고 개인적 측면이 강했다. 그는 “여기서 만나는 선생님 한 분 한 분마다 색깔이 다르고 자신들의 경험과 히스토리를 들려주는데 좋은 내용이 많다”며 “오늘 신대철 선생님이 들려준 음악과 밴드활동에 조화가 중요하듯 공동체나 가족도 배려가 없으면 무너진다, 혼자서는 안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얘기했다.
한편 지난 6일에는 배우 안석환씨의 두 번째 수업이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영화 <26년>의 시나리오를 읽고 실제 영화와 비교해보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조폭 진배가 몸담은 수호파 두목 ‘안수호’ 역을 맡았었다. 배우들이 촬영 전에 하는 전체 대본 리딩처럼 똑같이 진행된 이날, 아이들은 총 92신으로 된 대본을 두 시간이 넘도록 읽었다.
안씨는 “영화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어떤 식의 결과물이 나왔는지 실제 상영된 영화를 보고 다시 얘기해보자.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사내란 뭔지, 극중 주인공인 진배와 ‘그 사람’ 중 누가 더 사내다울까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의 풍생고 1학년인 김진수군은 항상 웃고 남자학교에서도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김군은 “사실 평소에 감정표현을 잘 안 한다. 그래서 대본을 읽을 때 감정을 싣는 게 어려웠다”며 “공부는 책상에 앉아 지식을 배우는 게 전부라 생각했는데 남자학교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혀보니 의미도 있고 느끼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4년 전부터 명예교사로 활동해온 안씨는 “요즘은 남성보다는 사내다움이라는 것이 수컷다움을 얘기하는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수컷처럼 보이려고 눈물도 흘리지 않고 강한 척했던 예전에 비해 요즘 친구들이 나약하게 보이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교복에 ‘빡빡이’ 세대였던 우리는 규칙적이고 흑백논리로 나누어 사람을 판단하는 사고방식을 배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더 자유롭고 상상력이 풍부한 거 같아 다행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소통과 배려’를 강조했다. “저는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당당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소통의 기본은 배려예요. 자신을 높여서 강해 보이려 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훨씬 남성답죠. 자꾸 내 것만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좀더 큰 의미에서의 ‘우리’를 보고 살아갔으면 해요. 처음엔 서먹했던 여러분들이 지금 한 덩어리가 돼서 큰 우리를 만든 것처럼요.”
프로그램 하며 공동체의식 형성
중학교를 마치고 학교 밖 강의를 찾아다니며 홈스쿨링을 하는 양승훈(17)군은 “보통 남자는 위엄 있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남녀를 구분 짓는 게 상대방에게 더 거리를 두고 차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 같다”며 “남자라기보다 나 자신으로서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게 더 중요한 거 같다”고 얘기했다. 양군에게 남자학교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집짓기다. 그는 “초반에 2주 동안 땡볕 아래서 진짜 힘들게 지었다. 도중에 그만둔 친구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완공 뒤에는 예정된 기간 내에 책임감 있게 해냈다는 것이 놀랍고 뿌듯했다”며 “제각각인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해나가면서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관계 맺기도 수월해졌다”고 덧붙였다.
고무신은 “처음 한 달은 과제가 주어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하고 우물쭈물했다. 시키던 것만 하던 아이들이 어른들이 나서 과정을 한두 번 보여주자 이제는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서 함께 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돈 벌어오는 사람, 큰소리치는 사람이에요. 제대로 된 남자를 못 보고 자라는 경우가 많죠. 이곳에서는 단지 남자가 아니라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를 알려줘요. 저는 아이들이 ‘잘 듣고 잘 웃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단순히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안 좋은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허허 웃어넘기는 사람이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 과정에서 곱씹어볼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성장통 겪는 청소년들의 고민에
문화예술 명사들이 나섰다 롤모델과 직접 대화하고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니
왜곡된 남성성이 벗겨지고
배려와 여유 마음 자리잡는다
삶의 주체로 다시 서는 순간이다 그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목표를 가져야 해요. 난 뮤지션이니까 음악적으로 업적을 남기고 싶어요. 여러분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자꾸 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착각 때문에 아무것도 찾지 않거나 멈춰버린 경우가 있는데 ‘이대로 살래’ 하는 순간 진짜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퇴물이 되는 거죠. 나이가 먹어도 진취적이고 새로운 걸 계속 찾는 사람은 뭔가 해내요. 여러분들 모두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꾸려나가길 바라요.” 고등학교 1학년인 김아무개군은 “뭔가 살면서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어서” 남자학교에 들어왔다. 그는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딱딱한데 이곳은 성적과 상관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편하게 대해준다”며 “동네 형처럼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내가 성장한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는 아빠와의 관계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고 일 때문에 힘들어서 아빠를 한 달에 일주일 정도 봤다. 무책임하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 모습에 실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곳에서 남자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같은 남자니까 공감대가 생기고 가끔 아빠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신대철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이해를 하게 돼요. 가족에게 소홀하고 술을 마시는 게 아빠만의 삶의 무게가 힘들어서 그렇다는 것을.” 김군은 여기 와서 내적인 문제나 자기 스스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학교 때문인지 몰라도 예전에는 상처를 숨기고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여기 선생님한테 얘기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고 했다.
지난 8월30일 남자학교 음악수업 명예교사로 나선 그룹 시나위 리더 신대철씨가 직장인밴드 ‘알트 탭’과 함께 학생들에게 꿈을 이루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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