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부터 유럽팀을 잇달아 꺾으며 대회 최대의 돌풍을 일으켰던 한국팀 선수들이 팔을 벌린 채 마주 달리며 환호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NIE 홈스쿨] 축구의 정치사회학
축구팬들이 밤잠을 설치는 계절이 왔습니다. 8월17일(한국시각) 영국 프리미어 리그가 개막했습니다. 내년 5월까지 이어지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즐긴 뒤 2014년 6월13일부터는 브라질월드컵에 푹 빠져 지내야 합니다. 비단 축구팬뿐일까요. 월드컵은 전세계 사람들 누구나 열광하는 축제의 한마당입니다.
사람들은 축구를 두고 ‘지구상 가장 많은 선수와 관중을 보유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라고 말합니다. 운동장과 공 하나, 골대 두 개만 있으면 됩니다. 경기 규칙도 단순합니다. 여럿이서 발만 이용해 공을 골대로 넣으면 됩니다. 잘사는 나라이건 못사는 나라이건, 고지대이건 해변이건 누구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입니다. 하지만 축구를 단순히 스포츠라고 부르면 서운합니다.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슈의 생산지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돼지나 소의 오줌통에 공기를 넣어 차고 다녔다는 기록을 근거로 축구의 기원이 고대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축구의 근원에 대한 설은 너무도 많습니다.
근대 축구와 연결되는 가장 믿을 만한 설은 영국에서 축구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북유럽 바이킹족인 데인인의 폭정 아래 학대를 받아왔던 영국인들이 데인인 군대가 철수한 뒤 전쟁터에서 패잔병들의 두개골을 차며 승전을 축하했던 게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인데요. 축구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데도 영국의 영향이 큽니다. 영국은 19세기 식민지 개척을 위해 전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축구까지 전파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축구협회를 만들고, 리그제 시스템 등을 만들어 스포츠로 발전시킨 나라이기도 합니다. 영국을 ‘축구 종주국’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축구는 원시성과 집단성이 강한 스포츠입니다. 축구선수들은 야구선수들과 다르게 상대편 선수들과 몸을 직접 부딪치며 그라운드 위를 달립니다. 야구선수들과 비교하면 걸친 옷도 많지 않습니다. 집단의 임무도 분명합니다. “협동해서 저기 있는 먹이를 잡아와라!” 이런 임무 아래 거친 들판을 뛰어다니듯 그라운드를 누비며 공 하나를 골대에 넣어야 합니다. 부족들이 사냥감을 놓고, 한몸이 되어 돌진하는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다른 팀 선수들과 몸으로 부딪히면서 같은 편 선수들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야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게임입니다.
지배자들은 축구의 이런 공동체적 특성을 잘 활용해 국민 단결의 신화도 만들어냅니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등으로 연결짓는 겁니다. 때론 민중의 저항을 잠재우는 데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축구는 ‘정치’라고도 불립니다.
공 1개로 22명이 경기하는 축구는
집단성이 아주 강합니다
권력자들은 이런 특성을 활용해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고
불만과 저항을 잠재웁니다
쇼비니즘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남미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축구가 모든 사람을 환각에
빠지게 했다고 비판합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1960~70년대 남미 여러 국가의 독재자들은 인권탄압과 각종 경제정책 등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축구로 관심을 돌리고, 축구 우승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남미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영국인들이 세계에 상당히 나쁜 일을 했는데 축구처럼 바보 같은 것을 만연시킨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르헨티나는 오랜 시간 군부독재 시대를 겪었습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을 치르던 해에도 쿠데타에 반대한 정치인, 지식인 등 3만여명이 처형당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축구가 모든 사람을 환각에 빠지게 했던 상황에 분노했습니다. 지난 5월에 사망한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는 1978년 아르헨티나 정세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아르헨티나월드컵을 유치하고,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편파 판정을 주도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강호 헝가리와 맞붙은 조별 리그에서 상대 선수 2명을 퇴장시키면서 2-1로 이긴 뒤 2차 조별 리그 조편성도 일방적으로 했습니다. 전 대회 우승팀 서독과 준우승팀 네덜란드를 한쪽으로 몰고,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6-0으로 크게 이겼습니다. 비델라가 경기 전 페루의 부채 5000만달러를 탕감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클럽은 정치색이 뚜렷한 걸로 유명합니다. 선거철이 되면 클럽 차원에서 지지 후보를 표명하는데 정계에서 쫓겨난 지도자는 이때를 노려 복귀를 시도합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프로축구 리그를 민중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로, 통치 도구로 영리하게 이용했습니다. “우승 못 하면 처형!” 1934년 제2회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한테 무솔리니가 했던 말입니다. 축구에 민족적 요소가 강하다 보니 때로는 국가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들이 불거지기도 합니다. 경기 열기가 국가 대 국가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1969년 남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정치, 경제, 영토 문제 등으로 날카롭게 대립했던 때 월드컵 축구 예선전을 계기로 5일 동안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축구는 종종 ‘전투’로 은유됩니다. 국가대표팀을 부를 때도 ‘태극전사’(한국),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전차부대’(독일), ‘삼사자 군단’(잉글랜드), ‘무적함대’(스페인)라는 비유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승부 조작 사건의 배후에는 마피아가 있고, 그 마피아의 배후에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정치 파벌이 축구 파벌이 됩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과거부터 왕당파가 지지하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와 시민 공화파가 지지하는 바르셀로나 선수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곤 했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프로야구팀에 투영되는 지역감정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입니다. 대형 스포츠 축제의 천막을 걷어보면 스포츠 쇼비니즘(Chauvinism)이 관중들을 보며 웃고 있습니다. 쇼비니즘이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광신적인 애국주의나 국수적 이기주의를 말합니다. 시민들이 국가에 대한 불만이 커질 때 스포츠는 애국심을 불태우게 할 만한 정치 소재가 됩니다. 특히 전세계인 누구나가 좋아하는 축구는 그 소재로 제격입니다. 귀신에 홀린 듯 축구에 취하는 평민들의 모습은 옛날이야기가 된 것도 같습니다.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 민족으로 손꼽히는 브라질 사람들은 요즘 월드컵에 대한 국가 재정지출 삭감을 요구합니다. 브라질 정부는 5억1900만헤알(약 2725억원)을 들여 포르탈레자 월드컵 경기장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인구 2억명 가운데 1300만명이 기아에 가까운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경제 효과 등 국가적 이익을 선전하지만 시민들은 이 말에 유혹당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시대, 절대빈곤이라는 현실 앞에서 축구는 더 이상 군중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이벤트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책으로 확장하기 |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를 싫어하진 않지만 축구광들은 싫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축구가 대중의 사회의식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합니다. 문화학자 피터 트리포나스가 쓴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사진)를 보면 “축구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에 혁명이 가능한가?”라는 에코의 질문이 나옵니다. 축구에 모든 사회적 정념이 쏠리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의제가 논의될 이유조차 사라지는 걸 지적하는 겁니다. 이 책은 축구를 향한 에코의 비판적 시각을 소개합니다. 광장에 나와 국기를 흔드는 축구팬들을 떠올리면 축구를 합리적인 설명이나 효과적인 치료법도 없는 문화 신경증으로 판단하는 에코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의도 해보게 됩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축구의 특성
축구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 종목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관람하고 있다. 흔히 축구가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으로 원시성과 단순성을 들고 있다. 여기서 원시성이란 체력을 바탕으로 달리고 사람과 사람이 몸싸움을 하며 격렬하게 공을 뺏고 드리블하여 상대의 골문에 공을 넣는 경기방식을 의미한다. 또 축구는 장소, 룰, 장비 등의 기본 조건이 매우 간편하게 설정되어 있다. 공만 있으면 평평한 곳 어디서든지 즐길 수 있다. (고등학교 <스포츠 문화>(대구광역시교육청) 53쪽)
논제로 정리하기 | 스포츠의 사회적 성격
광운대 2011년 모의논술에서는 ‘(가), (나), (다)의 논지를 활용해 글로벌 시대 스포츠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는 논제가 주어졌습니다.
(가)는 스포츠가 내부적으로는 결속력을 확보하고 외부적으로는 민족국가의 홍보로 쓰였다는 내용을 전개하고 있고, (나)는 월드컵이 축구라는 문화상품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주의적 현상을 띤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는 스포츠가 ‘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 개 글의 논지를 정리하면 현대사회에서 스포츠가 ‘직접 참여하는 것’에서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으로 바뀌면서 민족주의적인 특징과 상업주의적인 성격 등을 드러내게 됐다는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집단성이 아주 강합니다
권력자들은 이런 특성을 활용해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고
불만과 저항을 잠재웁니다
쇼비니즘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남미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축구가 모든 사람을 환각에
빠지게 했다고 비판합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1960~70년대 남미 여러 국가의 독재자들은 인권탄압과 각종 경제정책 등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축구로 관심을 돌리고, 축구 우승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남미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영국인들이 세계에 상당히 나쁜 일을 했는데 축구처럼 바보 같은 것을 만연시킨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르헨티나는 오랜 시간 군부독재 시대를 겪었습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을 치르던 해에도 쿠데타에 반대한 정치인, 지식인 등 3만여명이 처형당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축구가 모든 사람을 환각에 빠지게 했던 상황에 분노했습니다. 지난 5월에 사망한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는 1978년 아르헨티나 정세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아르헨티나월드컵을 유치하고,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편파 판정을 주도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강호 헝가리와 맞붙은 조별 리그에서 상대 선수 2명을 퇴장시키면서 2-1로 이긴 뒤 2차 조별 리그 조편성도 일방적으로 했습니다. 전 대회 우승팀 서독과 준우승팀 네덜란드를 한쪽으로 몰고,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6-0으로 크게 이겼습니다. 비델라가 경기 전 페루의 부채 5000만달러를 탕감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클럽은 정치색이 뚜렷한 걸로 유명합니다. 선거철이 되면 클럽 차원에서 지지 후보를 표명하는데 정계에서 쫓겨난 지도자는 이때를 노려 복귀를 시도합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프로축구 리그를 민중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로, 통치 도구로 영리하게 이용했습니다. “우승 못 하면 처형!” 1934년 제2회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한테 무솔리니가 했던 말입니다. 축구에 민족적 요소가 강하다 보니 때로는 국가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들이 불거지기도 합니다. 경기 열기가 국가 대 국가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1969년 남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정치, 경제, 영토 문제 등으로 날카롭게 대립했던 때 월드컵 축구 예선전을 계기로 5일 동안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축구는 종종 ‘전투’로 은유됩니다. 국가대표팀을 부를 때도 ‘태극전사’(한국),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전차부대’(독일), ‘삼사자 군단’(잉글랜드), ‘무적함대’(스페인)라는 비유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승부 조작 사건의 배후에는 마피아가 있고, 그 마피아의 배후에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정치 파벌이 축구 파벌이 됩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과거부터 왕당파가 지지하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와 시민 공화파가 지지하는 바르셀로나 선수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곤 했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프로야구팀에 투영되는 지역감정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입니다. 대형 스포츠 축제의 천막을 걷어보면 스포츠 쇼비니즘(Chauvinism)이 관중들을 보며 웃고 있습니다. 쇼비니즘이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광신적인 애국주의나 국수적 이기주의를 말합니다. 시민들이 국가에 대한 불만이 커질 때 스포츠는 애국심을 불태우게 할 만한 정치 소재가 됩니다. 특히 전세계인 누구나가 좋아하는 축구는 그 소재로 제격입니다. 귀신에 홀린 듯 축구에 취하는 평민들의 모습은 옛날이야기가 된 것도 같습니다.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 민족으로 손꼽히는 브라질 사람들은 요즘 월드컵에 대한 국가 재정지출 삭감을 요구합니다. 브라질 정부는 5억1900만헤알(약 2725억원)을 들여 포르탈레자 월드컵 경기장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인구 2억명 가운데 1300만명이 기아에 가까운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경제 효과 등 국가적 이익을 선전하지만 시민들은 이 말에 유혹당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시대, 절대빈곤이라는 현실 앞에서 축구는 더 이상 군중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이벤트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책으로 확장하기 |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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