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 박사의 톡 까놓고 진로 talk
지난 6~9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갱 작품전이 열렸다. 고갱(1848~1903)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은행원(증권 중개인)에서 화가로 변신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산업문명에 회의를 느껴 타히티 섬으로 간 고갱은 원시적 삶을 동경했고 인간의 삶과 진로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했다. 어쩌면 진로라는 문제를 놓고 고갱처럼 깊은 고민을 한 화가도 없을 것이다.
고갱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 한 가지를 말하라면, 단연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어디로 향하는가?>다. 이는 모든 인간이 가진 진로라는 문제를 압축하는 작품이다. 우리라는 관점을 나라는 관점으로 축소하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삶의 본질적 질문이 된다.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다. 즉 삶의 목적과 나의 진로설정에 대한 질문이 담긴 주제다. 특히 청소년기와 사춘기 시절에 많이 하는 고민이다. 나는 왜 우리 부모님에게 태어났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공부)이 내게 맞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어떤 삶의 목표와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원시적 삶에서 멀어질수록 이런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기술과 문명은 자연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행위다. 과거 씨족사회, 농촌사회의 경우 이웃은 말 그대로 이웃사촌이었으나 지금은 무관심한 객체며 의지할 수 없는 존재며, 경쟁의 대상이므로 인간 내면은 점점 더 본질에 대한 향수를 느낄 것이다.
몇 천 년 전 농경사회에서 직업의 종류는 매우 협소했으며 각자의 인생진로도 예측 가능한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다양한 인생진로가 펼쳐있고 불과 몇 년 후를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과거 어느 예술가나 해봄 직한 인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진로 고민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인류 진로의 고민에 대한 답이 없듯이 개인차원의 진로 고민에 대한 답도 없다. 그저 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행위만이 있을 뿐이다. 예들 들어, 고갱에겐 도시에서 증권 중개인이라는 극히 현실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진로였을까, 아니면 타히티와 같은 원시 섬 속에서 가난과 고독, 자살시도와 같은 세속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진로였을까? 우리는 한 화가의 진로에 대해서 어떠한 현명한 답을 줄 수 있을까? 사실 가치철학의 문제에서 답이란 없다. 그저 자신만의 답을 하루하루 만들어 가면서 살 뿐이다. 고갱이 화가가 아닌 성공한 증권 중개인으로서의 부유함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선택하였다면, 우리는 영혼을 적시는 인상 깊은 그의 작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고갱의 부모라면, 자식에게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화가의 삶의 진로를 선택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후자보단 전자의 인생(성공한 증권 중개인)을 선택하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답 없는 질문이 내게 온다면 나는 어떤 말을 내 자식에게 해줄 수 있을까?
삶 아니면 죽음, 행복 아니면 불행, 현실 아니면 이상 등의 이분법적 사고는 문제를 악화시킬지 모른다. 성공한 증권 중개인으로서의 고갱과 고뇌하는 화가로서 고갱이란 극단적 구분도 가능하지만, 우리에게 일상적 선택은 그림을 좋아하는 증권 중개인으로서의 고갱, 아니면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화가로서의 고갱이란 삶이 일반적이란 것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가 어디로 가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을 떠나 중용·중도·균형이라는 기준에서 진로를 고민해본다면, 우리는 좀 더 확률이 높은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내 자식이 성공한 화가가 되지 못하고 평범한 미술 강사가 될지라도, 억대의 연봉을 받는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펀드판매원일지라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미술 강사도 고갱·고흐와 같은 불꽃 같은 꿈을 향해, 느리지만 다가갈 수 있으며 펀드판매원도 그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같은 자산 운영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꿈이란 진로는 실현 여부의 이분법적 완료형이 아니라 영원한 미래 진행형이기에 그 고민이 아름답다.
김상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자격연구실 연구원·<톡 까놓고 직업 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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