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 박사의 톡 까놓고 진로 talk
스페인 태생의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피카소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화가다. 한데 그가 스페인 태생이라는 것과 도예가·판화가·삽화가·시인·희곡작가로 활동한 사실은 잘 모른다.
피카소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다양한 장르로 표현했다. 앙드레 살몽의 시집(1905)을 시작으로 모두 156편의 작품에 삽화를 그렸으며 1935부터 1959년까지 340편의 시를 썼고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희곡도 발표했다. 당시 그의 글과 시는 운율과 철자 및 맞춤법 등을 무시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른 파격적 형식의 작품으로 표현된다.
왜 미술 외에 피카소의 다른 예술적·문학적 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카소는 화가로서의 재능은 충분히 발현했고 당대 및 후대에도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화가와 점점 멀어지는 분야일수록 그의 재능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가로서의 능력만큼 인정받지 못했다. 일례로 피카소는 흙에 대한 묘한 매력을 도예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도예 작품에 대한 당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사람들은 피카소의 도예 작품을 보면서 도예 견습생들이 피카소와 작업한다면 평생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피카소의 삶을 통해 우리는 직업진로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아무리 좋은 능력도 다듬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예술적 능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도예나 시·희곡 등의 분야에서 그 능력은 충분히 발현되지 못했다.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그의 생각과 예술적 영감을 도예나 시·희곡 등으로 표현하기엔 표현 도구(그림·도예·시·희곡 등)를 다루고 익히고 연습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진정한 능력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그것을 연습하고 익히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아웃라이어>의 저자 맬컴 글래드웰은 어느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의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피카소는 이미 14살 정도에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술적 측면은 다 습득하였다고 한다. 반면 시와 희곡의 경우 운율적 표현이나 철자·문법 등의 형식적 측면에 대한 학습은 충분히 못했을 것이다. 예술적 영감이나 상상력·창의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그 표현 도구를 익히는 법을 다듬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둘째, 개인적 능력의 발현과 삶의 성공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출생하여 청소년기를 보냈다. 스페인에서 피카소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의 능력이 발현되고 인정된 곳은 미술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였다. 만약 피카소가 스페인에서 계속 생활했다면 그의 능력이 발현될 수 있었을까? 설령 발현되었다고 할지라도 당대에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무지한 체제하에서는 폰 노이만(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도 약국 점원이 되고, 엔리코 페르미(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정원사가 된다.”
스티글리츠의 말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제도적·환경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그 능력이 발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피카소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초현실적 예술 장르인 큐비즘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큐비즘 같은 높은 예술적 감각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도시는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파리의 도시문화와 환경이 그의 능력이 발현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피카소가 스페인을 떠나 파리를 향한 것은 현명한 진로 선택이었던 것이다.
피카소라는 인물의 재능과 다양한 직업 활동을 통해 우리는 진로탐색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성공한 진로는 1만 시간의 노력으로 구슬을 만들어야 하며 그 구슬을 꿸 수 있는 적절한 도구를 찾아야 하며 꿴 구슬의 가치를 알아볼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자격연구실 연구원·<톡 까놓고 직업 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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