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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과도한 대학진학률 주범은 서열의식

등록 2014-01-06 19:52

김상호 박사의 톡 까놓고 진로 talk
대학은 중세시대 성당이 운영하던 스콜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근현대적 의미로 볼 때 초기 대학으로는 대략 1000년 전의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 살레르노 대학, 프랑스의 파리 대학,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등이 모태가 된 것으로 본다. 이 당시 대학에서 가르친 학문은 법학·신학·철학·수사학·논리학·기하학·산수·천문학·의학·화성학 등이었다. 초기 대학의 경우 학문 영역이 넓지 않았으며 직업적 측면에서는 성직자·법조인·의사와 같은 전문 인력을 양성했다. 동양 교육기관과 비교하였을 때 ‘진리탐구’라는 학문적 기능 외에도 실용적 측면을 강조했다. 초기 대학은 ‘상류층 소수의 특정 직업’으로 연결되었기에 일반인에게 진로탐색의 고려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10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학교육은 보편적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고등교육 이수자는 10명 가운데 4~5명이며, 우리나라에선 10명 가운데 8~9명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대학은 보편적 교육기관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사회구조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문명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직업적 분화와 복잡한 경제·사회·문화·기술구조 때문에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배워야 할 것들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이시디 국가의 대학진학률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오이시디 국가와 비교하여 대학진학률이 두 배가 될 정도로 사회·경제·문화·기술구조가 복잡한가? 그렇지는 않다. 한국의 과도한 대학진학률은 복잡한 사회·경제·문화구조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대학진학 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학진학 열기가 이토록 뜨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 측면에서 고등학교 졸업자와 비교하여 대졸자가 더 돈을 잘 번다는 교육투자수익률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고졸취업자의 일자리 문제로 설명하기에 우리의 대학진학률은 너무도 높아 보인다.

한국의 과도한 대학진학률에 대한 타당한 설명은 바로 과도한 학력중시 풍토다. 설명하자면,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고용불평등뿐만 아니라 결혼·인간관계 등의 경제외적 활동까지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 학력과 학벌은 단순히 경제생활의 영위 수단을 넘어 인간을 서열화하는 잣대로까지 활용된다. 연봉으로 서열화하고, 학벌로 서열화하고, 미모로 서열화하고, 심지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서열화하고…. 학력도 출신 대학, 출신 고등학교, 출신 대학원, 학위도 국내 학위, 해외 학위로 구분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올림픽 수상식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의 얼굴이 밝지 않고 오히려 뚱한 얼굴을 하는 풍경이다.

다른 국가 선수들은 동메달·은메달 수상 때 밝게 웃는데 유독 한국 선수들은 슬픈 얼굴을 하거나 심지어 울기까지 한다. 선수들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우리의 서열의식과 문화가 만들어 낸 결과다. 다수 선진국들은 금메달·은메달·동메달에 대한 총 메달에 따른 순위 집계방식을 취하나, 우리나라는 금메달 우선에 따른 순위 집계 방식을 고집한다. 집계 방식 외에도 연금과 포상금에서 금메달과 은·동메달 간에 큰 격차를 두고 있다. 철저한 서열 매기기 중심의 문화다. 대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각 개인이 가진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고 활용할 때 국가경쟁력이 향상되며 국민이 행복하게 된다. 10명 가운데 8명이 대학졸업자인 사회는 획일화된 사회를 만들 뿐이다. 적어도 필자에겐 대학 나온 사람이 운영하는 동네빵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졸자가 만든 빵이든 대학교수가 만든 빵이든 값싸고 맛이 있으면 된다. 매표소 직원이 되기 위해 대학 졸업장을 가져야 한다는 자격기준은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애초의 대학 설립 목적과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며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다. 실용적 측면이 너무 강조되어 대학이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기능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지는 않은가? 대학이 취업의 관문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진정한 대학교육의 의미와 책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학에 의해 사람의 서열을 구분하는 것은 대학의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

김상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자격연구실 연구원·<톡 까놓고 직업 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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