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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무엇이 우선일까요

등록 2014-02-03 20:30수정 2014-02-03 23:20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국민카드 본사 앞에서 개인정보 유출 카드회사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해당 회사 신용카드를 가위로 자르고 있다. 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국민카드 본사 앞에서 개인정보 유출 카드회사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해당 회사 신용카드를 가위로 자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NIE 홈스쿨]

디지털 시대 ‘잊혀질 권리’ 논란
신용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5년 전 이미 해지한 카드 정보도 삭제가 안 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단순한 금융사고가 아닙니다. 디지털 시대에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은행에 가서 “카드 또는 통장을 해지하겠다”고 하면 계약 관련 내용이 담긴 문서를 일정 기간 보관한 뒤 폐기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흔적들은 쉽게 지우기 힘듭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있습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오랫동안 잘 보존되고 복제도 잘됩니다.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잘 보존된다는 점에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긴 흔적이 어느 날 우리 목을 옭아매게 될지 모릅니다.

2009년 9월에 터진 이른바 ‘박재범 사건’은 디지털 시대에 함부로 흔적을 남겼다가 어떤 일을 당할 수 있는지를 말해줬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가수 박재범은 2009년 초반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9월, 박재범이 2005년 연습생 시절(당시 18살)에 미국의 웹사이트 마이스페이스에 올렸던 글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맹비난을 받습니다. 그 글은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박재범은 “철없던 시절 생소한 한국 생활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주변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와 같은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며 “깊이 반성하고, 창피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비난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박재범이 사석에서 홧김에 이런 말을 했다면 이 발언이 이렇게 일파만파 확산됐을까요? “온라인에 있던 글을 그냥 지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흔적은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남긴 흔적을 내 손으로 지웠다고 하더라도 흔적이 다 지워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 내 흔적을 복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자신의 생각을 공공연하게 알리기 위해서는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내 생각을 적은 글을 종이에 활자로 인쇄해 일일이 복사하고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했습니다. 반면 디지털 시대에는 내 생각을 인터넷 세상에 매우 간편하게 실시간으로 알릴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등 각종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소통 창구가 생기면서 이런 일들은 더욱 손쉬워졌습니다. 누군가 올려둔 글은 대량 복사가 가능해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집니다.

디지털 시대엔 인터넷을 통해
내 생각을 손쉽게 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족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디지털 흔적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에 있는 각종 정보, 흔적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도 등장했습니다. 디지털 장의사는 온라인상에 있는 개인정보뿐 아니라 개인이 남긴 글, 사진 등 다양한 흔적을 지워주는 일을 합니다. 과거에는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연예인, 이미지 관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정치인 등이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주요 고객이었지만 이젠 일반인들의 이용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무심코 유출된 개인정보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납니다.

인터넷 서비스의 확대와 발전으로 개인들의 정보가 여기저기 기록되고, 이 기록에 대한 처리 요구들이 높아지면서 이를 보호하려는 법적 울타리도 생기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12년 1월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를 명문화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확정해 2014년 발효를 앞두고 있습니다. 잊혀질 권리란, 인터넷에서 생성·저장·유통되는 개인의 사진이나 글, 개인 성향과 관련한 정보에 대해 소유권을 강화하고, 여기에 대해 유통기한을 정하거나 이를 삭제·수정·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유럽연합이 발효를 앞두고 있는 법안에서 말하는 ‘잊혀질 권리’는 사업자들이 합법적 근거 없이 보유하고 있는 사용자에 관한 정보를 삭제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유럽연합 거주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업자는 역외에 서버를 두고 있더라도 이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위반을 했을 때는 100만유로 또는 1년 매출의 2%까지 벌금을 물게 됩니다.

온라인상의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유럽 사회에서 가장 먼저 대두됐습니다. 이와 관련한 판결도 있습니다. 1990년 독일에서는 발터 제들마이어라는 배우가 살해당했습니다. 범인 볼프강 베를레와 만프레트 라우버는 15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출소한 뒤 위키피디아에 이 사건과 관련한 항목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지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과거 저질렀던 일에 대한 죗값을 모두 치렀지만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독일 법정은 2008년 1월 이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 독일어판에서 이들의 이름은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운영하는 위키피디아 영어판에는 이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근거가 됐습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아주 강하게 보장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정보기술 업체도 반발했습니다. 정보의 수집과 유통을 통제하면 인터넷 발전을 저해할 거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 사건이 말해주듯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있습니다.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쪽에서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듭니다. 온라인으로 모든 정보와 기록이 유통되면 박재범 사건처럼 한 시절에 했던 단편적인 생각들이 지워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주홍글씨’가 되어 누군가를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잊혀질 권리 보장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알 권리 침해’ 등을 이유로 듭니다. “잊혀질 권리가 무제한의 권리로 행사된다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행위가 중단된다. 친일파가 자신들의 잊혀질 권리를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또 잊혀질 권리가 표현의 자유와 권력 감시 등 인터넷의 순기능을 없애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정보 사회의 빛과 그림자

정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낙관론자들은 정보 사회에는 자유와 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실현할 것으로 본다. 또한 가상공간 속에서 상호 교류가 가능해져 많은 사람들이 가상 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이는 사회 통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정보 격차로 인한 새로운 사회 불평등 구조가 생길 것으로 본다. 또한 개인 정보 노출에 따른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가상공간에 몰입함으로써 연대 의식과 대면적 인간관계가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고등학교 <사회·문화> 금성출판사, 253쪽)

책으로 확장하기 | <잊혀질 권리>

대부분의 것이 온라인에서 기록되고 기억되는 세상에서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잊혀질 권리>는 ‘잊혀질 권리’라는 개념을 놓고,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놓은 완벽한 기억의 세계를 탐색하면서 역설적으로 회복되어야 할 ‘망각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자 빅토어 마이어쇤베르거는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이 일종의 감시기술을 만들어내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망각의 미덕’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화하고 개념화한다. 덕분에 무엇보다 중요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다시 얻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록과 보존이 손쉽고 간편하다는 점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적절한 망각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핵심 기제”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논제로 정리하기 | 사이버스페이스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

서강대 2004년 모의논술에서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가 무엇인지 밝히고 바람직한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논술하라’는 논제가 주어졌습니다. 첫번째 글은 사이버스페이스를 현실의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치외법권의 공간’으로 파악하는 글이고, 두번째 글은 인터넷은 다양한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끌어냈지만 무질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생적 질서’가 아닌 ‘강제적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글입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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