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인천 계산여고 역사동아리 ‘역지사지’ 아이들이 교내 동아리발표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제작한 1년간의 활동자료집과 포토북 패널을 들고 있다. 대회 결과 역지사지 동아리는 2년 연속 교내 최우수 동아리로 선정됐다. 박대훈 교사 제공
[함께하는 교육] 인천 계산여고 역사동아리 ‘역지사지’
출범 3년에 각종 대회 상 휩쓸어
답사는 물론 봉사, 대회 참가까지
지난해 한달 3개꼴 일정도 빡빡
모든 활동 기록 남겨 동아리사료로
출범 3년에 각종 대회 상 휩쓸어
답사는 물론 봉사, 대회 참가까지
지난해 한달 3개꼴 일정도 빡빡
모든 활동 기록 남겨 동아리사료로
‘역지사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본다는 한자성어다. 인천 계양구의 계산여고에서는 ‘역지사지’가 또다른 의미로 통한다. ‘지난 과거를 탐구하고 탐구한 것을 기록한다’는 뜻을 품은 교내 역사동아리 ‘역지사지’(歷知史知)를 가리킨다. 2011년 5월 첫발을 뗀 뒤 이제 갓 3돌을 앞둔 신생 동아리지만, 각종 전국대회 수상이 ‘전통’처럼 굳어져 있다. 2012년 ‘청소년 역사체험 발표대회’(동북아역사재단) 1위, ‘우리역사 바로알기대회’(국사편찬위원회) 고등부 동상, 2013년 ‘대한민국 청소년박람회’ 여성가족부 장관상, ‘역사와 삶 독서대회’(민족문제연구소 외) 고등부문 수상 등. 2012년부터 2년 연속 교내 최우수 동아리 선정은 당연할 정도다.
전국 단위 수상 실적만큼이나 동아리 활동 반경도 넓다. 인천 계양구의 지역 문화재를 보호하는 ‘청소년 문화재 지킴이단’ 활동부터 인천 개항장과 서울의 도성 순례, 제주 강정마을과 일본 오키나와 현지답사까지. 과거와 현재의 역사 현장을 두루 누빈다. 2013년 한해 동안의 활동만 33가지다. 단순히 계산해도 한달에 3개꼴의 활동을 소화할 만큼 일정이 빡빡하다.
동아리 활동은 답사와 봉사, 각종 대회 참가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답사라고 해서 단순히 문화재를 돌아보고 오는 게 아니다. 박대훈 지도교사는 “다루고 싶은 주제를 토론으로 정한 뒤 사전 자료조사를 거쳐 그에 적합한 지역을 찾아가는 ‘주제별 답사’”라고 소개한다. 지난해 3월 제주 강정마을과 5월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온 게 대표적이다. ‘평화의 섬, 잠들지 않는 바다’라는 주제로 ‘해군기지 건설’이란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일 양국의 섬을 돌아봤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구럼비 바위 폭파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우리나라의 안보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기지를 만든다고 해서 당장 전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오키나와에 가니 태평양전쟁의 참혹함이 확 느껴졌다. 헤노코 지역으로 해군기지를 이전하는 데 반대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제주 문제를 이해하게 됐다.” 이하은양의 설명이다.
뜻밖의 만남도 있었다. 한솔지양은 오키나와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린 시절 한국인 누나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했다며 우리에게 사과를 했다. ‘위안부’ 할머니 얘기였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꼭 ‘위안부’ 할머니들께 전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교내에서 ‘위안부’ 할머니께 편지쓰기와 모금운동을 펼친 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자유발언 기회를 얻어 일본인 할아버지의 사과를 전한 남유경양은 “청중들도 훌쩍였다. ‘위안부’ 할머니가 내게 내민 손길이 따뜻했다”고 말했다.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역지사지의 ‘주제별 답사’ 활동은 해결책 모색까지 나아갔다. 인천의 ‘송도’(松島)가 일본식 지명의 잔재라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직접 그 일대를 찾았다. 소나무가 많아 ‘송도’라 불렸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역사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을 인터뷰하고, 국회도서관에서 사료 등을 찾아가며 ‘송도’란 지명은 일본의 3대 경관 이름이자 일제 해군 군함의 이름인 ‘마쓰시마’의 한자 표기에서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이들은 근거 자료집을 만들고, 서명운동도 벌인 뒤 지난해 5월 인천시청에 지명 변경을 청원했다. 김채연양은 “답변은 듣지 못했지만, 그 뒤부터 도로 표지판을 유심히 보게 됐다”고 했다. 일본식 지명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학교 주변의 중학생을 상대로 역사교실도 열었다. 중학생 때 역지사지 동아리 소식을 전해 듣고 계산여고에 진학하고 싶었다는 1학년 유재영양의 경험담이 계기였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중학생들과 역사 지식을 나누고, 그 아이들이 장차 동아리 후배로도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수강 대상을 ‘여중생’으로 제한한 이유다. 과연 몇 명이나 모일까 걱정도 했지만, 총 48명이 지원해 20명을 선발했다. 역사라는 공통의 주제로 생면부지의 아이들이 ‘멘토’와 ‘멘티’로 만난 셈이다.
아이들은 이 모든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개인별 활동일지부터 답사 보고서, 활동자료집, 사진과 영상자료 등이 동아리의 사료로 남겨진다. 유화연양은 “자료집은 점점 두툼해지고 있다. 우리 동아리가 발전하는 모습이 생생한 기록으로 드러나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지금 남겨둔 기록과 훗날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며 아이들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 대화하는 경험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솔지양은 “예전에는 내 생각만 앞섰다. 세상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구분했다. 역사의 현장에 서 보니 각자 다른 입장들이 많았다. 다양한 입장에서 고민하고,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틀에 갇히거나 편을 가르는 게 아닌, 처지를 바꾸어서 이해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아이들은 역사동아리 활동으로 익혀나가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은 학교 졸업 뒤에도 동아리원들과 함께 떠나는 답사를 꿈꾼다. 박 교사는 “아이들 스스로 부딪치며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면,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역사의 현장에서 언제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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