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논어·장자 함께 읽고 토론하니 글 실력 쑥쑥

등록 2014-03-31 20:00수정 2014-04-01 12:04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시 수진중 교정에서 <늘품 논어> 이(e)북을 펴낸 최지희 도덕교사와 학생들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 구절이 쓰인 문구를 들고 서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A href="mailto:kwak1027@hani.co.kr">kwak1027@hani.co.kr</A>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시 수진중 교정에서 <늘품 논어> 이(e)북을 펴낸 최지희 도덕교사와 학생들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 구절이 쓰인 문구를 들고 서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함께하는 교육] 고전 읽고 e북 내기

학생들이 고전을 읽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글쓰기에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장자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논어 구절을 현실과 연계시켜 체험활동을 벌인다.
“장자(莊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조삼모사’(朝三暮四) 우화를 들어 세 개든 네 개든 전체적인 상황에서 본다면 같은 것인데, 인간은 그 본질적인 도를 모른다고 비판했습니다. 군자는 부분에서 벗어나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침에 도토리 세 개를 받는 것과 네 개를 받는 것은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아침부터 저녁 사이는 꽤 긴 시간입니다. 도토리를 돈으로 치면 아침에 400만원을 받아 저녁까지 뭔가 더 많은 일을 벌일 수 있기 때문에 아침에 더 받고 싶어 하는 걸 어리석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한수민군의 얘기다. 우리가 흔히 알던 ‘조삼모사’의 해석과는 다르다. 지난 21일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고전 속 이야기를 펼쳐낸 부산 광명고 학생들을 만났다.

수민군이 속한 논술 동아리 ‘광명희망’ 학생들은 중국 고대 사상가인 장자를 분석한 <장자에서 길을 찾다>를 지난 2월 이(e)북으로 펴냈다. 번역본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자기가 재해석해서 해당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덧붙였다.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얻은 결과였다.

시작은 필사였다. 2, 3학년 학생 40명은 <장자, 자연 속에서 찾은 자유의 세계>라는 번역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썼다. 학생들은 주말은 물론 자습시간에도 틈틈이 ‘작업’했다. 동아리를 맡고 있는 최선길(54) 국어교사는 “담임교사들이 자습시간에 영·수 공부는 안 하고 고전만 본다고 항의가 들어올 정도”였다고 했다.

필사가 끝난 뒤, 각자 하나의 구절을 맡아서 분석한 뒤 상호 토론을 했다. 가령, 이휘본군은 <소요유>(逍遙遊)에 나온 ‘곤(鯤)과 붕(鵬)’이라는 우화의 해석을 맡았다. “장자는 매미와 비둘기처럼 한정적 사고를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이해하며 남과 비교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만 사물을 보면 사람들의 사고가 획일화될 수 있잖아요. 또 남과 비교하는 게 무조건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경쟁을 하면서 서로에게 자극이 되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은 어느 정도 필요하죠.”

이 의견에 대해 대현군은 “경쟁이 과열되면 오히려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또 자기 논리만 주장하다 보면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21일 부산 광명고 ‘광명희망’ 학생들이 <장자> 번역본을 필사한 노트와 각자 해석한 글을 모아 만든 자료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지난 21일 부산 광명고 ‘광명희망’ 학생들이 <장자> 번역본을 필사한 노트와 각자 해석한 글을 모아 만든 자료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부산 광명고 논술 동아리
장자 번역본 필사부터 시작
한구절씩 맡아 분석하고 토론

성남 수진중 논어 교안 만들어
구절 해석을 일상생활에 적용
퍼즐 맞추기·체험활동 신바람

문장 똑바로 새겨 읽다보니 이해력 높아져

학생들은 토·일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도서관에 모여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종합토론회를 할 때는 각자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고 다 같이 의견을 나누며 원고를 다듬어나갔다. 자문을 맡은 심지희(부산대 한문학 전공) 박사가 전문지식을 덧붙여 지적해줬다.

진동경군은 “옛 성현이고 대단하긴 하지만 장자의 의견에 국한되지 말고 우리 생각대로 재해석해보고, 장자의 의견이 진짜 올바른지 이야기하면 또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대로 해 봤다”며 “고전이 사고력이나 논리력을 높여준다는 건 알았지만 혼자 도전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 기회에 공부가 많이 됐다”고 말했다.

책을 내기까지 최 교사의 역할이 컸다. 40명 중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이과생인데다 처음 아이들의 글은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그는 필사부터 종합토론과 원고 작업하는 동안 아이들을 다독이고 때로는 채근하며 이끌었다. 또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중이라 아이들이 쓴 글의 근거가 되는 원전의 한문을 직접 찾았다. 총 60편의 학생들 글을 묶어 최종 편집할 때는 일주일 동안 밤을 새웠다.

“솔직히 처음 장자를 다뤄보자 마음먹은 건 입시 때문입니다. 비유와 상징이 많고 간단한 책은 아니지만 장자 번역본이 수능 제시문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지각한다고 혼나고 필사하고 분석하는 게 힘들어 저를 원망하기도 했죠. 지금은 글을 썼던 게 재밌었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뿌듯합니다. 올해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을 가지고 공부하는데 필사는 안 시킬 겁니다. 저나 아이들이나 너무 힘들어요.(웃음)”

실제로 아이들은 장자를 분석하고 글을 쓰면서 달라졌다. 대부분 글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길러졌고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최석영군은 “이과생들은 상대적으로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문제 풀 때 문학 지문을 다 읽고 나서도 ‘대체 내가 뭘 읽었지’ 할 때가 많았다”며 “장자를 분석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똑바로 새겨서 읽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제시문을 이해하는 능력이 좋아져서 이제 헤매지 않는다”고 말했다.

체육학과를 지망하는 박준길군도 스스로 “사람이 됐다”고 자평했다. “일단 주말에 학교 나오는 걸 꿈도 못 꿨는데 그것만 봐도 성실해졌죠. 그리고 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글을 써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처음에는 단어를 이해하는 거 자체가 어렵고 글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는데 선생님께 여쭤보면서 하다 보니 지금은 글을 읽고 쓰는 게 많이 좋아졌어요.”

시종일관 진지한 답변을 내놓은 이진혁군은 ‘뭔가를 크게 얻었다’는 표정이었다. “장자를 분석하고 책을 쓰면서 ‘결국, 만물은 하나’라는 걸 알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외양만으로 평가하고 남과 비교를 합니다. 이번 기회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볼 때 좀더 넓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에게는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는 계기가 된 셈이죠.(웃음)”

논어를 일상에 끌어와 곱씹으며 실천

경기도 성남시 수진중에 근무하는 최지희(29) 도덕교사는 대학 때 <논어>(論語)를 읽었다. 이후 종종 떠오른 구절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하거나 조언자 구실을 했다.

“<논어>는 인간관계·효도·학업·예절 등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요. 학교 현장에 가장 필요한 독서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교사가 된 뒤 제가 배우고 의미 있게 생각한 것들을 아이들과 나누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임을 맡은 1학년 7반 아이들과 지난해 7월 말부터 자기주도학습 시간에 <논어>를 읽었다. 구절이 짧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체험활동을 연계하자 최종적으로 9명의 학생이 남았다. 최 교사는 <논어> 중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구절만 발췌해 교안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한자를 한번 따라 쓰면 음과 뜻을 풀이해줬다. 이후에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직역이나 의역을 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묻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외쳤다. <논어>의 가장 첫 편에 나오는 이 구절의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를 두고 학생들은 반발심을 가졌다고 한다. 당시 토론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아이들은 다들 “배우는 게 즐겁다고요? 전혀요!”, “배우고 익히는 게 어떻게 즐거울 수 있죠?”란 반응을 보였다. 최소명양은 “치열한 입시제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며 나름 원인을 분석했다. 최 교사도 아이들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우리 삶과 인생이 배움이라고 해도 아이들은 듣지 않아요. 오히려 어떻게 국어나 수학을 배우면서 즐거울 수 있냐고 반문해요. 아이들의 배움이 교과학습에만 머물러 있어서 즐거울 수 없는 거 같아요.”

구절과 연계한 체험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는 거의 학생들이 직접 내놓았다. 최 교사는 단지 “이 구절을 보고 어떤 걸 해보고 싶니”라고 묻기만 했다.

학생들은 최고의 활동으로 ‘춘천 여행’을 꼽았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을 보면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가 되어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었으며, 40세가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50세가 되어서는 천명을 알았다…(중략)”(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는 구절이 나온다.

최 교사와 학생들은 춘천에서 레일바이크를 타며 ‘내 인생 여정 달리기’라는 의미를 붙였다. 레일바이크로 달린 길을 인생의 여정에 비유해 본 것이다. 학생들은 레일바이크를 탄 뒤 10대는 “초반에 신나게 달릴 때처럼 설렌다”, 30대는 “중간에 휴게실 도착하기 전까지 뒷사람이 빨리 가라고 재촉했는데,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빡빡하게 일을 재촉할 거 같다”, 40대는 “휴게실에서 쉬면서 지금까지 달렸던 길을 돌아봤는데 40대도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삶을 되돌아 볼 거 같다”고 얘기했다. 아이들의 해석에 최 교사도 놀랐다.

“제가 대학 때 구절을 해석한 관점은 아이들에 비해 협소하다는 걸 느껴요. 한자 하나에 대한 해석을 일상생활에 가지고 와서 씹어낸다고 할까요. 사람들은 중1이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아이들이 논어를 소화하는 능력은 놀라워요.”

<옹야>(雍也) 편에서 공자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그어 스스로 포기하는 제자 염구를 꾸짖는 구절이 나온다. 아이들은 실력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인내심을 기르고 멀리 나아가자는 의미로 ‘퍼즐 맞추기’를 제안했다. 방과후에 시작한 퍼즐 맞추기는 밤 9시까지 이어졌다. 더디긴 했지만 아이들은 끝까지 해냈다. 최 교사는 “학문도 많이 쌓아야 결과를 보는데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삶을 퍼즐로 비유해 조각 하나하나 맞춰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제대로 된 인생이 완성된다는 걸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유경석군은 “예전부터 욕을 많이 해서 친구 관계가 힘들었다. 논어를 쭉 읽다 보니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많이 길러졌다”고 했다. 옆에 있던 최 교사와 아이들도 웃으며 “지금은 욕을 진짜 현저하게 안 한다”고 인정했다. 이들도 그동안 논어를 읽고 생각하고 활동한 내용을 정리해 지난 2월 <늘품 논어>(늘품은 앞으로 좋게 발전할 품성이라는 뜻)라는 e북을 펴냈다.

광명고와 수진중 학생들이 낸 책은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최한 ‘2013 마이 라이프 북’에 응모해 선정된 뒤 정부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2013 마이 라이프 북’은 교사와 학생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내 생애 첫 책’을 쓰는 프로젝트로 창의적 체험활동 정보검색 포털인 ‘크레존’(crezone.net)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