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 구암고 정인섭군, 서울 선린인터넷고 이기정군, 광주 광주중 양원준군, 광주 동성고 홍준영군, 서울 배재고 최진유군이 컴퓨터에 ‘제곱’을 소개할 만한 이미지를 띄워놓고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
청소년 IT 기업 ‘제곱’
IT기기에 푹 빠진 중고생 17명
컴퓨터 조립 판매하고 SW 개발
어른들 부정적 시선 힘들지만
청소년도 주체적인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IT기기에 푹 빠진 중고생 17명
컴퓨터 조립 판매하고 SW 개발
어른들 부정적 시선 힘들지만
청소년도 주체적인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어른들 눈엔 온라인 놀이터로만 보일 수 있다. 한데 이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뜻이 맞는 친구도 사귀고 기업까지 세운 청소년들이 있다. 아이티(IT) 기업 ‘제곱’(xecop.co.kr)의 멤버들이다. 지난 8일, 서울 신촌에 모인 제곱의 다섯 명은 인터뷰에 앞서 각자 노트북부터 꺼냈다. 아이티 전문가다운 모습이었다.
광주광역시 광주중 2년 양원준군. 양군은 지난해 우연한 일로 제곱을 알게 됐다. 카카오톡 검색창에 ‘아이폰’(iPhone)이라는 단어를 입력했던 게 계기였다. 검색 결과로 나온 누군가의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청소년 아이티 기업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초등 6년 때부터 앱 개발을 했다. 아이티에 관심이 많았지만 혼자 연구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여럿이 모이면 혼자일 때보다 배울 수 있는 게 많고 내가 하는 활동을 더 쉽게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
양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 대전, 부산, 광주, 창원.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전국에 흩어져 살던 이들을 엮어준 건 사회관계망서비스였다. “나 말고 이런 애들(아이티 마니아 청소년)이 많았네?” 선린인터넷고 1년 이기정군은 “처음 제곱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말이 나왔다”며 웃었다.
‘같은 수를 두 번 곱했다’는 뜻의 순우리말 제곱. 여럿이 모여 ‘상상력을 곱하자’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제곱의 탄생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이오(CEO) 홍준영군(광주 동성고 2년)을 비롯해 블로그로 아이티 관련 정보를 나누던 네 명의 청소년은 기업을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께 동의를 얻어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었다. 동아리가 아닌 기업을 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은 공부만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또 사회의 정형화된 틀 안에서 어른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만 하는 입장이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소비자로만 머물러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청소년도 주체적인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으로 홍보를 하자 중학교 2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 다양한 청소년이 모였다. 현재 제곱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은 17명.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나 휴대폰 등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냥 관심 수준에 머문 게 아니었다. 이 기기들을 갖고 노는 걸 넘어 뜯어보고 연구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제곱은 경영팀, 하드웨어팀, 소프트웨어팀, 디자인팀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소비자가 원하는 사양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직접 조립해 판매하는 게 첫 번째다. 누리집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하드웨어팀 팀원 중 주문자가 사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팀원이 컴퓨터를 조립한다.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다. 양원준군은 “조립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타지역인 대전의 이지운군한테 연락해 문제를 해결했었다”며 “서로 떨어져 있지만 상의해서 제품을 만든다”고 했다. 제곱에서 만든 ‘제곱 센슈얼 시리즈’는 타사 데스크톱과 다른 점이 있다. 소형 메인보드와 미니 타워 케이스를 사용했다. 타사 제품에 비해 작고 가볍다. 컴퓨터 가격대는 20만원대부터 7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올해 1월부터 판매를 시작해 약 30대가 팔렸다.
또 하나의 중점사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이들이 만들어 무료로 배포한 카카오톡 테마(배경화면) 벡터(Vector) 시리즈는 올 5월 기준, 2만6000건 다운로드됐다.
하드웨어팀·소프트웨어팀·디자인팀이 컴퓨터와 프로그램, 홈페이지 제작 등을 주로 한다면 경영팀은 기획, 마케팅 홍보로 바쁘다. 서울 배재고 2년 최진유군은 “이 일 덕분에 사회성이 생겼다”고 했다.
“다른 기업이나 기관들과 미팅할 일이 많다. 사람을 대하는 법, 협상하는 법 등을 배우고 있다. 방과후 미팅 때문에 야간자율학습을 빠질 때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생인 내가 어른들과 전화로 사업 관련 이야기를 하니 주변에서 나를 ‘별난 아이’로 보는 것도 같다.”
제곱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우선 컴퓨터를 좋아해야 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열정도 있어야 한다. 서울 구암고 1년 정인섭군은 “여기에 더해 ‘인성’도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제곱의 경영철학 중 하나가 ‘팀원 존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협동과 소통이 중요하다. 온라인에서 채팅 등으로 면접을 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성을 알기 어렵다. 가능하면 대면면접을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제곱이 단체카톡방을 열어 공식 회의를 하는 시간이다. 최근에는 현재 준비하는 INS(Interest Social-Networking, 책·영화 등 관심 있는 분야를 설정해두면 같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맺을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곧 ‘제곱 랩스(labs)’도 운영할 예정이다. 제곱 랩스는 제곱의 산하연구소로 아이티 관련 아이디어가 있는 청소년들의 제안을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함께 일하는 게 어렵지 않으냐는 말에 이들은 “그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어려움은 다른 부분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홍준영군은 “청소년이어서 받는 혜택도 있겠지만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받을 때도 많아 힘들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저작권을 취득해야 할 때, 사업 관련 조언을 구해야 할 때 ‘애들이 뭘 아냐’, ‘공부나 해라. 벌써부터 이런 걸 하고 있느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어른도 많다. 그런 점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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