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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학-정부 ‘논술 줄다리기’에 등 터지는 수험생들

등록 2014-07-14 19:24수정 2014-07-14 20:38

이화여대 201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가 실시된 지난해 11월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포스코관에서 수험생들이 논술시험을 치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화여대 201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가 실시된 지난해 11월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포스코관에서 수험생들이 논술시험을 치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함께하는 교육] 궤도 이탈한 ‘대입 논술’

정부가 통합사고력 평가를 위해 대입 논술제도를 도입했지만 공교육만으로 논술을 대비하는 것은 무리다. 수능과 내신 위주의 학교 교육과 대학별 논술고사를 고수하려는 대학 사이에서 학생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간다.
서울대가 지난해 11월 정시 논술을 폐지했다. 수능 이외의 다른 요소를 줄여 학생의 입시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교육부가 대입전형에서 논술·적성고사·구술면접을 최대한 치르지 않도록 권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9월부터 시행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입논술이 고교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나 필연적으로 사교육을 조장하게 된다며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제한하고 있다. 지난 6월17일에는 ‘고교 교육 정상화 기여대학’을 선정하여 평가 결과를 토대로 지원금을 차등지급하는 등 교육부의 대입전형 규제는 적극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교육부는 지난해 12월에 개정, 고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에서 고교 교양 선택과목에 논술 과목을 신설하기도 했다. 논술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미국의 에스에이티(SAT) 에세이 문제 등 교육 선진국들은 ‘논술’ 형태의 평가를 학생들의 대입에 활용하고 있다. 제시된 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이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 평가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외국의 논술시험을 벤치마킹하고 우수한 학생들을 평가하기 위해 논술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교육부의 모호한 태도와 고교 교육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고자 하는 대학의 욕심은 논술제도의 본 취지를 흐리고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준다. 공교육 체계에서 학생들에게 논술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니 결국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분절형 논술 문제가 되레 사고력 방해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논술을 연구하는 서울사대부고 이욱희 교사는 현행 논술제도가 학생들의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기계적으로 ‘기형적 글쓰기’를 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절형’ 논술 문제가 학생들의 사고를 간섭한다. 대학별로 패턴화된 유형이 있다”고 비판했다.

“하나의 논제를 두고 본인의 생각을 전개하는 ‘통글’ 형태는 그나마 낫지만, 제시문을 요약하라는 문제가 여러 개 나와 문제를 풀면서 글을 완성하는 형태는 학생들의 사고를 방해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문제로부터 ‘간섭’받게 된다. 또한 대학별 논술고사를 실시하다 보니 대학별로 특색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서울대형, 연세대형, 고려대형 문제가 모두 따로 있는 것이다.”

이 교사는 “대학에서 모의논술을 시행하면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의 모의논술을 보고 해당 대학에 맞춘 ‘맞춤형 글쓰기’를 연습한다”며 “모의논술제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긴 하지만 패턴화된 글쓰기를 유도한다.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애초 논술 도입 취지와는 동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대입논술 대비를 위해 사교육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학교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대입논술 대비를 위해 사교육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사고력 평가’ 본래 취지 실종
우수학생 선별 수단으로 전락
학교선 체계적 학습 기회 없고
‘통글’ 논제 아닌 분절형 문제는
틀에 박힌 글쓰기 방식 부추겨
학교 현실과 동떨어진 입시에
학생들은 다시 사교육시장으로

상위권 대학만 실시하는 ‘그들만의 리그’

논술 고사를 실시하는 대학은 상위 29개. 2012년 기준 한국 전체 353개 대학의 12분의 1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고교 졸업자의 70.7%가 대학을 가는 현재, 논술제도의 변화로 영향을 받는 학생은 전체에 비해 소수다. 자립형사립고에 출강하는 한 논술강사는 “논술교육을 공교육에서 실시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수요가 없다는 것”이라며 “논술 교사들이 있는 학교는 보통 자립형 사립고이거나 강남의 입시 명문고들”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서울 비강남 일반계고나 지방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논술 공부가 필요한 학생들의 비율은 현저히 낮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일반 인문계고의 공교육 교사들에게 논술교육을 시행하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욱희 교사는 “논술과는 무관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자연히 ‘소외’된다”며 “논술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만 모아 방과 후 수업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데 대학은 ‘보다 더 우수한 인재’를 찾는다. 대학 입장에서 우수한 인재를 뽑고자 하는 욕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주입식 입시교육에 길들어 이해와 암기에만 열중한 수험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다. ‘표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은 기존의 입시부담에 더해 대학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되기 위해 사교육 시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 시행되고 있는 ‘통합교과형’ 문제는 고교 교육의 현실과 더 멀어졌다.

“노령화지수는 유소년 인구(14세 이하의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이다. 그리고 노년부양비는 생산 가능 인구(15세 이상 64세 이하의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이다. 시점 χ에서의 노년부양비를 f(χ)라고 하자. 여기에서 f(χ)는 실수 전체의 집합 R에서 R로의 함수라고 가정한다. 어느 국가의 노령화지수가 (노령화지수)=(노년부양비)²을 만족하고, f(χ)는 R에서의 일대일 함수라고 가정하면, (노년부양비-노령화지수)<¼이 되는 시점 χ가 항상 존재함을 설명하시오.”

2012년 고려대 모의논술 문제 중 일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루아침에 교사들이 수학과 논술을 넘나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술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공교육 교사들이 있지만 그들은 소수일 뿐이고, 매번 입시논술만을 연구해 온 사교육 강사들과 역량 차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논술문제가 점점 쉬워지고는 있다지만 글쓰기 교육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통합사고형 글쓰기’를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큰 부담이다. 대입논술은 정부 주도로 시행하는 수능의 변별력으로는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할 수 없다는 요구에 맞춰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공교육이 주체적인 사고를 하도록 학생들을 교육할 수 없는데 ‘주체적인 학생’들을 찾기 위해 입시논술을 주무르는 것은 억지다.

서울 혜성여고 3년 임가영양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입시를 위해 갑자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결국 사교육 없이는 준비할 수 없는 것”이라며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힘든 만큼 수험생에게는 부담이다. 전형 자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고 밝혔다.

이욱희 교사는 “비판적 사고력, 표현력, 이해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고 싶다면 공교육 일선의 교사, 대학교수, 교육부가 모두 모여 논술제도를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며, “공교육 모든 교과에서 서술형 교육을 확대해 표현교육을 시작하고, 어떤 형태의 논술을 출제할 것이며 어떻게 채점의 공정성을 최대한 확보할 것인지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원하는 ‘사고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한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고교교육에서 양질의 독서와 토론, 작문 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다.

C&A논술 윤기혁 부원장은 “책을 읽히고, 토론을 하게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게 하는 등 실제 논술교육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진짜 논술’은 학원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평가하는 데 논술이 적합한 도구라는 게 맞다면, 당연히 공교육이 논술교육을 주도해야 한다”며 “그러나 그게 안 되니 사교육 시장의 논술 교사들이 공교육이 못하는 걸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출제’ 교육부 지침 실효성 떨어져

실제로 교육부는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대학에서 출제하는 논술을 풀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대학에 여러 번 지침을 내렸다. ‘교과서 지문을 활용하라’거나, ‘해설 답안을 발표하라’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한 논술 강사는 “2008년 서울대가 교과형 논술을 표방하여 사회과 교과서의 지문들로 문제를 출제했는데, 현재까지 출제된 논술 문제 중 가장 난해한 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교육부 방침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논술 문제를 교과서 지문으로 출제하라고 하거나, 대학 쪽에 해제를 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인 논술의 취지를 흐리게 된다. 학생 스스로 정답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이 본디 논술의 취지인데, 교육부는 ‘정답 있는’ 논술을 원한다. 교과서 지문으로 출제한다고 해서 논술 문제가 쉬워지지 않는다. 교육부의 지침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한 대학의 입학처 관계자는 “교육부가 어떤 지침을 내린다 하여도 대학들, 특히 주요 대학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변별력을 만들 수 있다”며 “대학들 입장에서도 문제를 출제한 후 고등학생 수준에 적절한지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대학의 노력에도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교육부가 공교육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미국의 에스에이티 에세이 등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인정을 받는 것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첫째, 공교육 내에서 논리적 글쓰기 교육이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둘째로는 고등학생들을 직접 가르친 고교 교사가 출제, 채점한다. 마지막으로 이들 시험의 논술 문제는 답이 없다. 고교과정에서 배운 내용을 이용하여 제시된 논제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는 논술시험은 이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다. 학생들의 사고력을 향상,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며, 논술제도에 맞는 고교 교육과정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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