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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외국 친구들 위해 남한산성 번역서 썼어요

등록 2014-11-24 20:19수정 2014-11-25 08:32

지난 10월26일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정평중 셰프(S.H.E.F.F) 학생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남한산성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S.H.E.F.F 제공
지난 10월26일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정평중 셰프(S.H.E.F.F) 학생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남한산성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S.H.E.F.F 제공
문화 해설서 새로 쓴 정평중 셰프
유네스코 등재된 어엿한 문화재인데
소개 책자들 너무 어려워
나라밖 청소년들 이해 돕기위해
기존 도서 활용해 ‘맞춤 번역서’ 준비
필요한 곳 무료로 보내주기도
A4 용지 절반 크기, 163쪽 분량의 남한산성 영문 해설서 〈Journey to Namhansanseong〉(남한산성으로의 여행)에는 다른 문화재 영문 해설서와 달리 남한산성의 역사, 걷기 코스, 남한산성에 얽힌 설화 등 다양한 정보가 쉽게 설명되어 있다. 2011년 출간된 수원지기학교 신영주 교장의 <우리 아이 첫 남한산성 여행>(삼성당)의 내용을 재구성하고 번역한 이 책은 경기 용인 정평중학교 2·3학년 6명이 모여 함께 펴냈다.

스포츠 에이전트를 꿈꾸는 정평중학교 2학년 강현구군은 스포츠를 넘어 역사·예술 등 다양한 문화 요소들을 홍보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강군은 기존에 나와 있는 문화재 영문 안내서들이 또래의 외국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강군이 외국 청소년들도 쉽게 우리 문화재를 접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재 영문해설서 만들기’ 동아리 활동을 구상한 계기다.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유지원 교사(영어)였다. 강군은 유 교사에게 문화해설 동아리의 지도교사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지도를 맡은 유 교사는 강군과 함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았다. 강군을 비롯한 2학년 4명(강현구·곽서진·박지환·정의석), 3학년 2명(신수빈·최민우)으로 구성된 정평중 ‘S.H.E.F.F’(셰프)는 이렇게 탄생했다. 동아리 이름은 정의석군의 생각이다. ‘셰프’라는 이름은 ‘Sharing Heritage Easily For Foreigners: 외국인들과 쉽게 문화유산 공유하기’의 영문 두문자에서 따온 말로 ‘문화재 해설 요리사’라는 뜻도 담고 있다.

여름방학 직전인 6월23일 유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3반 교실에서 첫 모임을 연 이들은 첫 프로젝트로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남한산성은 지난 6월 유네스코에 등재됐지만 민간 차원에서 홍보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소재였다. 학생들이 사는 용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정보를 얻기 쉽다는 점도 좋았다. 기존에 있는 남한산성 안내서 중 설명이 가장 쉽게 되어 있고,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우리 아이 첫 남한산성 여행>을 번역하기로 했다. 책을 발간하면 모두 비매품으로 사용하겠다는 조건으로 저자와 사진작가에게 저작권 사용 허가를 받았다.

학생들은 각자 번역할 부분을 장별로 나눴지만 단순히 ‘번역’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번역 초안을 완성한 다음에는 어떤 부분을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인지 또는 삭제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는 ‘편집회의’를 열었다. 더 좋은 정보를 많이 전달하기 위해 여름방학 내내 함께 남한산성을 찾아 문화재해설사를 통해 설명도 듣고, 관련 도서와 자료 등을 찾으며 공부도 했다.

기존 책에는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한글 고유명사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또 ‘이런 것까지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대목도 꽤 있었다. 학생들은 기존 책을 놓고 이런 점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고유명사가 너무 많으니 한글 고유명사만 따로 정리하자’, ‘굳이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필요 없는 것들은 빼고 정보 위주의 해설서로 편집하자’ 등 회의록에는 아이디어를 교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번역 대상으로 정한 책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쓴 한국 문화재 해설서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최민우양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외국인들은 잘 모른다”며 “외국인들이 잘 모를 수 있는 한국에 대한 간단한 배경지식도 넣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외국인들에게 ‘맞춤한’ 남한산성 설명서가 나왔다. 고유명사가 나올 때는 한자어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고, 영어로 뜻풀이를 했다. 산성 남문에 대해 소개를 시작할 때는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 때문에 남문에는 지화(한자로 ‘조화와 유대’를 뜻함)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내용을 적었다.(114쪽)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들을 위해 ‘병자호란’(청의 두 번째 한국침략)과 같이 간략한 역사적 사실을 병기하기도 했다.(80쪽) 셰프 학생들이 방학을 반납해 매주 모여 회의를 하고, 최종 편집 과정에서 ‘밤샘’ 작업까지 했던 노력의 결과다.

정평중학교 셰프(S.H.E.F.F)의 구성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의석, 강현구, 박지환, 유지원 교사, 최민우, 곽서진, 신수빈 학생.  정유미 기자
정평중학교 셰프(S.H.E.F.F)의 구성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의석, 강현구, 박지환, 유지원 교사, 최민우, 곽서진, 신수빈 학생. 정유미 기자
정의석군은 “편집회의는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친구들 성향이 다르다 보니 문체도 다 달랐다. 편집을 하면서 내가 지환이가 쓴 글을 손봤는데 지환이가 나중에 다시 고쳐놓은 걸 봤다”고 했다.

정군의 말이 끝나자 박지환군은 “남의 글을 함부로 건드리니까 화도 났다”며 “각자 문체가 달라서 글의 통일성이 없다는 문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각 장별로 조금씩 다른 문체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 나름의 맛이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10월 학교와 학부모들의 지원을 받아 책을 출간했고, 출간 뒤 서울 인사동에서 남한산성 안내 캠페인을 벌였다.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미국의 중·고등학교들을 비롯해 영어권의 공공도서관, <코리아 헤럴드> 등의 영자신문사에 전자우편을 보내 책을 소개하고, 필요한 곳에 무료로 책을 보내고 있다. 유 교사는 “가까이서 과정을 지켜봤는데 서로 다른 성향의 아이들이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갈등을 겪으면서도 합의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이 기특했다”며 웃었다.

학생들이 번역한 남한산성 해설서가 필요할 경우, 전화(070-7606-9366, 유지원 교사)나 전자우편(jpsheff2014@gmail.com)을 보내면 책을 기증받을 수 있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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