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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안 치과 “하나도 안무서워요”

등록 2005-10-09 15:36수정 2005-10-10 14:01

지난 4일 점심 시간 대구 남덕초등학교 구강보건실에서 치위생사 이상숙씨가 2학년 이연희 어린이의 이를 말끔히 닦아 주는 동안 친구 한혜진이가 부럽다는 듯 얼굴을 들이밀며 바라보고 있다.
지난 4일 점심 시간 대구 남덕초등학교 구강보건실에서 치위생사 이상숙씨가 2학년 이연희 어린이의 이를 말끔히 닦아 주는 동안 친구 한혜진이가 부럽다는 듯 얼굴을 들이밀며 바라보고 있다.
<충치 없는 세상 만들기>
대구남덕초 구강보건실
놀이터처럼 북적북적
치아홈 메우고 불소 덧바르고
해마다 충치발생률 뚝
시설 갖춘 학교 4% 그쳐
“더 늘려야 ”한 목소리

아이들은 마치 제 집 거실인 양 들락거렸다. 아니면 동네 놀이터로나 여기는지…. 지난 4일 점심 시간, 대구남덕초등학교의 구강보건실은 아이들로 북적댔다.

“선생님, 이가 너무 흔들려요. 뽑아 주실 수 없나요?” 4학년 김나희(11)가 구강보건실 담당 치위생사 이상숙(41)씨에게 입을 열어 보인다. “그래, 앉아 봐라.” 나희는 서슴 없이 치과용 진료의자에 누웠다. 몇 초나 흘렀을까. 이가 뽑히고, 솜을 앙다문 채 몸을 일으킨 나희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개운해 하는 눈치다.

칫솔을 물고 하얀 거품을 머금은 아이, 자일리톨 정제를 꺼내 먹는 아이, 벽에 붙은 충치 그림판을 들여다보는 아이…. 치과 하면 무서워하고 진료의자만 봐도 뒷걸음질치련만, 여기 아이들은 달랐다. 구강보건실은 병원이라기보다 카페 같은 분위기다. 밝고 상쾌한 느낌이 교실이나 교무실과는 비할 바 아니다.

대구남덕초교 어린이들의 우식 경험 영구치 지수 변화
대구남덕초교 어린이들의 우식 경험 영구치 지수 변화
대구 남구 대명동 ‘앞산’ 자락에 있는 전교생 500명 안팎의 작은 학교에 구강보건실이 들어선 것은 2002년 말이다. 대구 남구보건소가 주축이 돼 국비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절반씩 지원받아 마련했다. 학교는 교실 반 칸을 내놓았다. 치과의사로는 유일한 보건소장인 유영아(51) 남구보건소장은 ‘성실하고 적극적인’ 치위생사 최순례씨를 구강보건실에 보냈다.

최씨는 충치예방 교육, 치아 홈 메우기, 불소 덧씌우기, 불소용액 양치, 자일리톨 정제 먹기 등 일정을 짜고 학교와 학부모들을 설득하며 바탕을 다졌다. 화~목요일엔 학교 구강보건실에서, 월·금요일엔 보건소 구강진료센터에서 일하며 땀을 흘렸다. 2년 동안 일한 최씨도, 올해 바통을 넘겨받은 이상숙씨도 남구보건소 치위생사이다.

구강보건실을 가동한 지 얼마 안 돼 반응은 나타났다. “2학년이던 둘째 아들이 학교에서 불소 도포(덧바르기)를 하고 왔대요. 하나에 2만원씩은 줘야 하는데 말이에요. 4학년이던 큰아들은 치과 진료가 필요한 이가 두 개라는 통지를 가져 왔고요.” 올해 학교 운영위원을 맡은 학부모 이윤정(39)씨는 무엇보다 학교에서 아이의 구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보살펴 줘서 좋다고 말했다.


이 학교 김종달(60) 교장은 “치과의사가 한두 차례 방문해 구강 검진을 하는 여느 학교와는 달리, 우리 학교엔 작은 치과의원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다른 학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6학년 김영철(13)군은 “학원 친구는 ‘자기 학교엔 구강보건실이 없는데, 거짓말 아니냐’고 하더라”며 자랑했고, 올해 강원도에서 전학온 3학년 박나영(10)양은 전에 다니던 학교에는 이런 게 없었다며 집에서도 좋아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개학 하면 구강 검사부터 받고, 한 학기에 두 교시씩 충치예방 수업에 참여한다. 실습 나온 치과대생이나 치위생과 학생들이 인형극으로 올바른 칫솔질법 등을 일러 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식사한 뒤 칫솔질하는 습관이 익히고, 불소용액으로 하루 한 차례 양치질을 하며, 자일리톨 정제도 하루 1알씩 먹는다.

구강보건실은 만 6살 때부터 12살 무렵까지 1~2년 간격으로 솟아나는 어금니(영구치) 16개에다 치아 홈 메우기를 해 주고, 3~6년생들에게는 불소겔 덧바르기를, 6학년생들에게 치면 세마, 곧 ‘스케일링’도 해 준다.

효과는 그대로 숫자로 나타났다. 영구치가 모두 다 나는 12살 어린이(6학년)의 ‘우식’(치아가 무뎌지고 닳는 것) 경험 영구치 지수가 2003년 2.56개에서 올해 1.26개로 줄었다([그림] 참조). 보건복지부의 2010년 목표치 2.8개보다 훨씬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인 1.2개에 다가선 것이다.

불소용액이나 치아 홈 메우기 재료 등은 보건소가 거저 제공한다. 하지만 인력 확보가 부담이다. 그럼에도 학교 구강보건실을 더 늘려야 한다고 학부모들도, 학교장도, 남구보건소장도 한 목소리를 냈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밀착해 관리하는 학교 구강보건실의 성과가 바로 그 필요성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9년 처음 선보인 초등학교 구강보건실은 올해까지 209곳에 들어설 예정이다. 전국 초등학교 5646곳의 4%선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근 학생들을 살피는 보건소·보건지소 1517곳 가운데 구강보건실은 10%선인 157곳이 올해까지 마련된다.

칫솔질하러 화장실이나 운동장 수돗가보다 구강보건실로 몰려든 아이들로 떠들썩한 틈새로, 장난끼가 묻어나는 2학년 이연희(9)가 이상숙씨에게 매달렸다. “쉴 틈도 없어요. 점심 때든, 쉬는 시간이든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거든요. 입을 벌리면서 이를 보여 주는데 그냥 돌려보낼 순 없잖아요.” 이모나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맞아 주는 이씨 모습은, 구강보건실의 문턱을 낮추는 또 하나의 힘이다.

글·사진 대구/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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