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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꽃향기에 빠져…발품 팔아 지역 생태 지킨다

등록 2015-07-27 21:20수정 2015-08-31 23:45

[함께하는 교육] 생태계 보전 앞장서는 청소년들
지난 18일 서울 강동구 고덕수변생태복원지에서 그린 나래 학생들이 강변 입구에 생태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강동구 고덕수변생태복원지에서 그린 나래 학생들이 강변 입구에 생태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작은 동식물을 관찰하는 게 재밌어요. 자세히 보면 작은 제비꽃도 예쁘잖아요.”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니까 더 잘 보여요.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볼수록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로 시작하는 시의 한 구절을 읊은 게 아니다. 고교 남학생들이 평소 해왔던 생각들을 털어놓은 것이다. 한술 더 떠 그들이 보여준 휴대폰에는 각양각색의 꽃사진과 세밀화 그림이 가득했다. 게임과 스포츠보다 꽃과 식물에 푹 빠진, ‘감성 돋는’ 남학생들의 정체는 뭘까.

체험학습·봉사활동 느는 방학
내가 사는 지역 생태 연구하고
‘산경험식’ 환경공부하는 학생들
야생식물 등 세밀화까지 그리며 관찰
생태복원지 지키려 규제판 제작
시간때우기식 활동 한계 벗고
문제해결력 기르고 환경 이슈 관심

지난 11일 양구고 온새미로 학생들이 동면 임당리에 있는 개느삼 서식지에서 개체수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11일 양구고 온새미로 학생들이 동면 임당리에 있는 개느삼 서식지에서 개체수를 조사하고 있다.
강원 양구 멸종위기식물 연구하는 ‘온새미로’

‘온새미로’(‘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는 양구고 남학생 32명이 꾸린 생태 연구 동아리다. 강원도교육청 지역특화교육과정의 하나로 운영하며 양구지역 생태환경의 특징을 이해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활동을 한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의 체험학습이나 봉사활동이 늘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가 놀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교과학습 연계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 봉사활동이 시간 때우기식으로 대충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야외학습이든 봉사든 본인 스스로 관심을 갖고 좋아해야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지역의 특성을 살려 직접 생태 연구에 나서며 환경문제 해결이나 진로 탐색 등에 적극 나서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교내에 머무르는 일반 동아리와 달리 지역을 돌아다니고 관련 단체와 협업하는 등 학교 밖으로 범위를 넓혀 활동 중이다.

지난 11일 오전. 온새미로 학생들은 양구 생태식물원을 방문했다. 세밀화를 직접 그리기 위한 사진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미리 만들어 온 흰색 판을 꽃 뒤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꽃의 형태나 잎의 모양을 그대로 재연하는 세밀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깨끗한 배경 아래 꽃의 모습만 온전히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 뒤 김우섭군은 휴대폰을 내밀며 “도라지꽃·마타리·처녀치마·둥굴레꽃 등 신기한 꽃을 많이 보고 찍었다”고 말했다.

꽃을 사진으로 보면 한번 보고 까먹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세밀화를 그리면 식물을 좀 더 제대로 관찰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온새미로는 이 자료를 활용해 세밀화를 그리고 설명을 붙여 식물도감을 만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학기 초부터 화가를 초청해 세밀화 그리기 교육도 받았다.

학생들 대부분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활동에 애착이 생겨서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야외에서 활동하면서 친구들과 친해지고 진로탐색의 기회도 생겼다. 이태산군은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니까 식물이 전보다 눈에 잘 띈다. 애들이랑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식물을 찾는 게 즐겁고 이 분야에 관심이 더 생겼다”고 말했다. 이재준군도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식물연구원처럼 대단한 연구를 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며 “앞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연구결과를 잘 만들어서 다른 학교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만의 ‘명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의 특징을 살린 활동은 아이들이 본인이 사는 지역을 알아가는 동시에 멸종위기 식물을 공부하고 보호하는 계기도 된다. 이날 오후 학생들은 동면 임당리에 있는 ‘개느삼’ 서식지를 방문했다. 산에 오르자마자 학생들은 알아서 개체수를 세고 스마트폰을 꺼내 고도나 조도, 땅의 경사도 등을 측정했다.

엄태호 지도교사는 “학생들 대부분 이 활동을 통해 개느삼이란 멸종위기 식물을 처음 알고 번식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됐다. 지난달에 허가받아 채취한 씨앗을 국립수목원에 보내 유전자분석 결과를 받은 뒤 논문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주호군은 “지난달 광치휴양림 뒷산의 개느삼 서식지에 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등산로가 아니고 경사가 심하다 보니 미끄러워서 두 손과 발을 다 써서 기어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뱀도 보고 힘들어서 먹은 것을 게워내는 친구도 있었다. 이름만 들어선 독특할 거 같았는데 실제 가서 보니 그냥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노란 꽃이었다.(웃음)”

개느삼은 양구와 인제에서만 자라는 멸종위기 식물이다. 현재 이들은 양구에 있는 개느삼 서식지 세 곳을 비교연구하고 있다. 각각의 서식지에서 섹터를 나눠서 개체수와 한 가지에 달려 있는 꽃의 수 등을 세어 최적의 서식환경을 알아보는 식이다. 이는 개느삼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활동이다.

그린나래 학생들이 직접 만든 설명판.
그린나래 학생들이 직접 만든 설명판.
서울 고덕수변생태복원지 지킴이 ‘그린나래’

형식적인 봉사활동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의 생태를 보전하는 데 적극 나선 학생들도 있다.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고덕생태공원’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아기자기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담배를 피우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내용의 규제판이다. 정형화된 이미지에 ‘~하지 말라’는 의미의 빨간색 엑스표 표식 대신 투박한 나무판에 그려진 귀여운 그림과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 규제판은 상일여고의 ‘그린나래’ 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 이들은 3년 전부터 고덕수변생태복원지(이하 복원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주변 동식물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린나래는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뜻으로 날개가 부러진 자연을 치료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만들어가자는 의미다.

복원지는 과거 불법시설물과 농약으로 오염돼 있던 곳이었다. 지난 2001년부터 복원공사를 진행해 많은 노력 끝에 2008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이곳은 한강의 배후습지로 현재 300여종의 식물과 곤충을 비롯해 황조롱이와 박새 등 100여종의 조류, 고라니·두더지·족제비 등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

온새미로 학생들이 직접 그린 세밀화.
온새미로 학생들이 직접 그린 세밀화.
그린나래 학생들은 이곳을 수탁관리하는 환경 엔지오(NGO) 단체 ‘생태보전시민모임’과 함께 ‘그린디자인’을 접목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린디자인이란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든 친환경적인 디자인을 뜻한다.

김재인양은 그린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동아리에 참여했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입시 위주의 미술공부만 한다. 이곳에 오면 새로운 디자인을 해볼 수도 있고 봉사하면서 환경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김양은 “특히 잉크가 안 들어간 종이와 계란껍질을 물에 불려 만든 종이죽에 씨앗을 뿌려서 씨앗판을 만들었는데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 씨앗판은 사람들이 새들의 서식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강변 입구 쪽 나무에 둘러 설치했다.

“전동드릴로 나사 박을 사람?”

“나무 위쪽은 키 큰 사람이 맡는 게 좋을 거 같아.”

“난 나무 기둥 안쪽을 가로로 이을 얇은 가지를 고를게.”

지난 18일 복원지 강변 조류전망대 옆에 생태조형물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이 접근금지구역인 강변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도자기 흙을 빚어 만든 토우를 버려진 나무에 붙여 강변 근처에 세우기로 했다. 그린디자인을 활용한 변형된 솟대 형태의 생태울타리다.

전동드릴이나 톱질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의 작업은 느리게 진행됐다. 하지만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서로 도와가며 생태조형물을 하나씩 완성했다. 적당한 크기의 나뭇가지를 골라 땅을 파서 세우고 위쪽에 전동드릴로 나사를 박았다. 이후 토우 바닥을 조각칼로 깎아서 나사에 끼우거나 접착제로 붙였다.

그린나래 활동에는 규칙이 있다. 애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단체 활동가와 그린디자이너는 멘토 역할을 하며 이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거들어준다. 빨리 하라고 볶지 않고 아이들이 알아서 생각할 수 있게끔 한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 섞여 동식물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하기 위함이다. 이후 아이들이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자연을 이용하고 지킬지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는 뜻에서다. 김선민 활동가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디게 진행하다 보니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 방식을 우리 모두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름다운재단의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활동 자금도 지원받았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안을 쓰고 발표 심사를 거쳐 당선된 것이다.

학생들이 복원지에 오려면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비닐하우스촌까지 20분, 주택가까지 다시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다른 계절은 괜찮지만 여름 땡볕 아래 오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이지영양은 “사실 주변에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먼길을 걸어오는 게 힘들긴 하다”면서도 “이곳에 오면 서울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들이 걸어다니는 거 보면 애들이랑 박수치면서 좋아한다. 이곳을 좀더 알리고 싶어 후배들에게도 적극 홍보했다”고 말했다.

그린나래 학생들은 이 활동을 통해 장소에 대한 이해도 달라졌다. 김선민씨는 “처음에는 아이들이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했다면 이제는 실제 이곳에 살고 있는 동식물이 주인이라고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동아리 활동이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데 그린나래 친구들은 이곳에 와서 흙도 밟고 살에 풀도 스치고 곤충이나 꽃을 직접 보고 만진다. 지역의 자연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식적인 내용보다 자연 속에서 받아가는 감성들,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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