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중 학생들이 잔아문학박물관과 연계해 진행한 융합수업시간에 여순희 작가와 테라코타 흉상을 만들고 있다. 서종중 제공
주목할 만한 ‘마을학교’ 사례
학교 본관 입구에 테라코타 흉상이 쭉 늘어서 있다. 어떤 작품의 입부분에는 엑스 자 표시가 붙어 있다. 머리 위에 도깨비뿔이 달렸거나 눈·코·입이 아예 없는 것도 있다. 지난달 23일 찾아간 경기도 양평 서종중학교. 갤러리로 꾸민 현관엔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가끔 마을에 사는 작가 전시도 열린다.
마을교육공동체 사업 늘지만
일부 학교 참여하거나 외부 위탁 많아
내실있는 운영 어려운 상황 마을-학교 구심체 구실 하는 서종중
교사·학부모가 섭외한 마을주민들
진로 강사로 나서 삶 이야기 들려줘
학생들은 마을행사 팔걷고 나서기도 이 작품들은 ‘함께 나누고 싶은 나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한 국어와 기술·가정, 미술, 영어 과목 융합수업의 결과물이다. 도자기처럼 찰흙을 빚고 가마에 구워야 하는 테라코타를 일반 학교에서 만들기는 힘들다. 인근의 잔아문학박물관 도움으로 가능했다. 곽현선 교사는 “박물관과 연계해 융합수업을 진행하니 좀더 내실있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형규 교장은 3년 전 교장공모제로 이곳에 오면서 학교 주변 환경부터 살폈다. 서울에서 옮겨와 터전을 꾸린 이들 중 전문직이나 문화예술인들이 특히 많았다. 또 작은 규모 학교들이 많아 순회교사가 여러 학교를 가르치기도 했다. 최 교장은 ‘좋은 멘토로 삼을 만한 이들이 많다는 점, 교사가 한 학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아예 학교의 울타리를 없애고 마을 주민들을 최대한 끌어들였다. 아이들에게 교과서가 아니라 어른들로부터 삶에 대한 배움을 체득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마을학교’를 지향점으로 삼은 것이다.
최근 지자체나 교육청 차원에서 진행하는 ‘마을결합형 학교’나 ‘마을교육공동체’처럼 학교와 마을을 연계한 사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내실있는 교육을 지속하는 건 쉽지 않다. 실제 사업이 진행중인 한 지역의 교사 이아무개씨는 “일부 학부모들이나 민간단체 주도로 운영하거나 아예 프로그램 전체를 외부 기관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외부기관에 위탁하면 학교 쪽에서는 부담을 덜 수 있지만 ‘학교와 마을이 힘을 합친다’는 취지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학교가 직접 나서 진행한다 해도 전담교사를 두지 않는 이상 마을주민과 꾸준히 교류하고 프로그램을 일일이 챙기기가 쉽지 않다.
최 교장은 “사실 마을이나 공동체 문화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억지로 마을교육공동체사업을 끌고 가는 건 한계가 있다”며 “모든 주민이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학교와 마을 간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이후 한쪽이 뭔가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마을교육공동체가 흐지부지되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 주도해서 끌고 가지 않는 이상 질 좋은 교육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서종중의 경우 최 교장은 물론 학부모, 교사들이 함께 마을 주민들을 찾아 나섰다. 문학박물관은 물론 작가, 빵집 주인, 개그우먼까지 아이들에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줄 사람을 섭외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직업인을 다른 지역에서 모셔 오기도 했다.
진로의 날 행사는 ‘사람책’ 방식으로 진행했다. 최 교장은 “진로교육은 단순히 직업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 일을 어떻게 하게 됐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3학년 안효진양은 “생활반경이 비슷한 주민이 강사로 오니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편했다”며 “동네에서 마주치기만 했던 분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고 이후에 만나도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송승인양은 “푸드트럭 창업자가 기억에 남는다”며 “직업소개나 창업비법이 아니라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찾는 과정 등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 좋았다”고 했다.
강사로 나선 ‘빵집 사장님’ 조진용씨는 빵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보다 건강한 먹거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삶의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다. 왜 일본에서 회사 다니다 시골에 와서 빵집을 하게 됐는지, 천연효모에 빠지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는데 흥미로워했다. 강의 뒤 천연효모 빵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찾아온 학생들도 있었다.”
최 교장은 “마을학교를 운영하는 건 아이들을 건강한 공동체의 시민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라며 “그러려면 마을 자체가 배움의 장이 돼야 한다. 아이들이 마을에 관심을 갖고 어른들과 교류하며 시민의 권리를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종중은 체육대회와 동아리 발표회로 종일 떠들썩했다. 늦은 오후 어른들이 운동장에 모여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양평에 사는 문화예술인의 벼룩장터인 ‘문호리버마켓’ 판매자들이 고기 100근과 김치·과일·음료수 등 각자 여유가 되는 만큼 음식을 제공했다. 학부모들도 일손을 도왔다.
서종중 졸업생이면서 마켓에서 육개장을 파는 김은정(39)씨는 가마솥을 가져와 아이들 밥과 찌개를 끓여줬다. “마을의 큰 행사인 마켓이 열릴 때마다 서종중 봉사단 ‘두드림’ 아이들이 와서 짐도 옮겨주고 교통정리도 도와준다. 너무 고마워서 판매자들이 먼저 밥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혼자 하려면 힘든데 다 같이 준비하니까 수월하고 모교라 감회도 남다르다. 무엇보다 공동체성이 회복되는 게 느껴져서 좋고 아이들 덕분에 마을 잔치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곽 교사는 “학부모들은 보통 자기 아이 위주로 생각하고 마을 주민도 아이들한테 관심이 없었는데 여러 행사를 함께 치르며 다들 ‘마을의 아이’가 ‘내 아이’라는 인식이 생긴 거 같다”고 했다.
최 교장은 내년에 전면 도입되는 자유학기제도 마을 안에서 모두 소화해볼 생각이다. “지역적 특수성도 있지만 주변을 잘 둘러보면 아이들에게 영감을 줄 만한 멘토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이 와서 이벤트성으로 특강하고 가는 것보다 아이들 주변에 머물며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어른이 훨씬 더 낫다.”
양평/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일부 학교 참여하거나 외부 위탁 많아
내실있는 운영 어려운 상황 마을-학교 구심체 구실 하는 서종중
교사·학부모가 섭외한 마을주민들
진로 강사로 나서 삶 이야기 들려줘
학생들은 마을행사 팔걷고 나서기도 이 작품들은 ‘함께 나누고 싶은 나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한 국어와 기술·가정, 미술, 영어 과목 융합수업의 결과물이다. 도자기처럼 찰흙을 빚고 가마에 구워야 하는 테라코타를 일반 학교에서 만들기는 힘들다. 인근의 잔아문학박물관 도움으로 가능했다. 곽현선 교사는 “박물관과 연계해 융합수업을 진행하니 좀더 내실있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형규 교장은 3년 전 교장공모제로 이곳에 오면서 학교 주변 환경부터 살폈다. 서울에서 옮겨와 터전을 꾸린 이들 중 전문직이나 문화예술인들이 특히 많았다. 또 작은 규모 학교들이 많아 순회교사가 여러 학교를 가르치기도 했다. 최 교장은 ‘좋은 멘토로 삼을 만한 이들이 많다는 점, 교사가 한 학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아예 학교의 울타리를 없애고 마을 주민들을 최대한 끌어들였다. 아이들에게 교과서가 아니라 어른들로부터 삶에 대한 배움을 체득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마을학교’를 지향점으로 삼은 것이다.
서종중은 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을학교’를 운영중이다. 지난달 23일 열린 체육대회를 찾은 주민들이 음식을 장만해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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