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한국 선생님이 쥐여준 카메라로 ‘사진작가’ 됐어요

등록 2015-11-16 20:10수정 2015-11-17 10:41

지난달 31일 베트남 라오까이성 사빠현에 위치한 낌동중에서 학생들이 사진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베트남 라오까이성 사빠현에 위치한 낌동중에서 학생들이 사진전 준비를 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 사업
‘2013년. 한국에서 온 장근범 선생님이 손에 카메라를 쥐여줬다. 친구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신기했다. 맨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달랐다. 꽃잎 한장, 푸른 하늘을 자세히,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됐다. 선생님이 떠나고 카메라만 남았다. 혼자 이웃마을에 갔다.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트래킹하러 온 관광객들의 ‘피사체’였던 내가 어느새 ‘사진가’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베트남 사빠현에서 만난 부이아인응우옛의 이야기다. 1번고등학교 2학년인 그는 한국의 예술 강사 덕분에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사진을 모아 ‘용수(응우옛이 직접 지은 한국 이름)와 몽족 사람들’이란 포트폴리오까지 직접 만들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정 10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해외 지원

베트남 소외지역 아이들 대상으로
사진·미술 융합수업에 전시회까지
사범대생·현지교사 교육 통해
지속가능한 배움 되도록 돕기도

지난달 3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9시간 반 야간열차를 타고 라오까이성으로 갔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두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사빠현. 중국과 접경지역으로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오전수업이 끝나고 응우옛을 포함한 베트남 낌동중학교 학생 20여명이 사진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들은 도화지에 사진을 붙이고 그림을 그렸다. 지난 9월부터 라오짜이, 따반, 바이다꼬 마을을 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이었다. 사탕수수를 뜯어 먹는 소수민족 아이, 도로를 건너는 오리 떼의 행렬, 재봉틀로 가방을 만드는 여인의 모습 등 사진은 아이들의 모습처럼 각양각색이었다.

이 사진전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진행한 것이다. 보통 ‘공적개발원조 사업’이라 하면 기술·경제적 지원을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 사업’은 개발도상국에 예술 강사와 기획자를 보내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 예술교육의 우수사례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해당 국가의 문화예술 역량을 키워 자생적으로 유지 가능한 기반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이 때문에 단순히 학생뿐 아니라 사범대 학생과 관계자, 교사를 대상으로 한 ‘매개자 교육’도 동시에 진행한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다.

1일 베트남 라오까이사범대에서 진행한 매개자 교육에서 교수와 학생, 직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이야기로 만들어 소리를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1일 베트남 라오까이사범대에서 진행한 매개자 교육에서 교수와 학생, 직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이야기로 만들어 소리를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됐다. 초기 문화예술교육은 아동과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특수계층에 초점을 둔 ‘복지’ 성격이 강했다. 현재는 소외계층 외 일상 곳곳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해외로까지 그 가지를 뻗고 있다.

2013년부터 베트남에서 사업을 진행한 진흥원은 올해 8월부터 사빠현 지역동아리 아이들과 박하현의 따짜이초·중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진·미술 융합수업을 했다. 주변 소수민족 마을과 트래킹 코스를 돌며 사진을 찍은 뒤 스토리텔링식으로 설명을 쓰고 직접 전시회까지 여는 과정이다. 참여 학생인 김선은 “첫 사진은 렌즈에 손을 대고 찍어 아무것도 안 보였다”며 “처음 보는 이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며 다가가 이야기도 나누고 많은 사람을 알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프엉도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 어디서 왔는지, 사빠를 방문한 느낌이 어떤지 묻고 사진도 찍었다. 이 수업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회가 없었을 텐데 재밌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국·영·수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예체능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중학교의 경우 음악, 미술이 각각 일주일에 한 시간이고 고등학교는 한 시간도 없다. 체육은 중·고등학교 모두 일주일에 두시간씩밖에 없다.

이번 사업을 담당한 사빠교육처의 응우옌득남은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지역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자신감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사진에 소질이 있는 학생은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전시회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예술교육은 오후에 특별 프로그램으로 아주 가끔 진행합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도 여기 참가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사진교육을 꾸준히 할 것입니다.”

이튿날 라오까이성에 위치한 라오까이사범대 강의실. 예정원 강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것에 민감해 소꿉놀이를 하거나 놀 때 자신의 느낌을 소리로 표현합니다. 우리도 오늘 소리에 집중해 이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해봅시다.”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 원리를 활용한 수업이다. 일상 속 다양한 소리를 그림이나 글씨, 이미지 등과 접목해 표현하는 것으로, 다양한 감각활동을 이용한 통합문화예술교육이다. 교수와 학생들은 모둠별로 몸이나 입으로 소리를 만들거나 강의실 밖에서 소리를 찾아 녹음해왔다. 이후 전 시간에 각자 희로애락을 표현해 찍은 사진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뒤 여기에 소리를 입혔다. 예 강사는 “매개자 교육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배우는 기회다. 내용을 전달하고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보다 내 수업에서 영감을 얻거나 내용 일부를 착안해 각자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에 참가한 교육품질검정부 직원인 응우옌응옥응언은 “소수민족 아이들이 베트남어를 배우긴 하지만 온전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해 교육받는 게 힘들다”며 “수업을 통해 음악이나 미술, 소리로 얼마든지 자신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범대 3학년 레응옥비엣은 “강사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친구처럼 편하게 수업을 이끄는 게 인상적이었다”면서도 “솔직히 이 교육을 받았다고 교수들의 강의 방식이 바로 바뀌지는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나중에 교사가 돼도 장비나 교육과정의 문제로 이 수업을 그대로 하기엔 무리입니다. 하지만 수업 내용 중 좋다고 느낀 부분은 최대한 적용해볼 생각입니다.” 사빠를 떠나기 전 낌동중 사진전이 열렸다. 응우옛의 작품 중 소수민족 아이와 자신이 손을 맞잡거나 아이들이 앉아 있는 사진 옆에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보통 나에게 기대하는 건데, 나도 가끔은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내 눈에 사빠는 제일 예쁜 곳이다. 17년 동안 나를 키워주고 지켜준 곳. 그곳에서 나는 지금 젊은 사진작가가 돼 있었다.’ 그는 생애 처음 만든 포트폴리오를 (너무 소중한 물건이라 극구 사양했음에도) ‘장근범 선생님’께 선물했다.

베트남 라오까이성/글·사진 최화진 한겨레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