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일정씨의 <핵노답>을 비롯해 인문학카페 36.5에서는 2015년 진행된 모임들의 결과물을 엮어 <계간 진지> 등 7종의 독립출판물을 발간했다. 사진은 출판에 참여한 청소년ㆍ청년들이 모여 함께 연 출간기념회. 허일정씨 제공
청소년 잡지 <핵노답> 낸 허일정씨
“당연하고 단순한 회의였다. “왜 공부해야 하지?” 꽤 열심히 공부하던 나는 어느 순간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중략)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이걸 왜 해야 하지.”
학교 밖 청소년 허일정(19)씨가 지난 12월 펴낸 청소년 잡지 <핵노답> 창간호 3쪽에 있는 ‘무기력 연대기’ 가운데 일부다. 창간호에는 무기력증에 대한 청소년, 청년, 전문가의 인터뷰는 물론 무기력을 주제로 한 청소년들의 수기, 만화, 토론, 핵노답 십자말풀이 등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제가 무기력했거든요.”
‘어떻게 무기력이라는 키워드로 잡지를 만들었는지’를 물었을 때, 허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신을 누르는 무기력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는 말이다. 허씨는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될까 두려웠다. 성적이 전부가 아닌 다른 세계가 있을 것 같았다.
“많은 청소년들이 무기력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 개인보다는 사회의 문제이지 않을까? ‘청소년들이 무기력하다’는 건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난 12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허씨는 잡지를 발간하게 된 계기부터 과정, 향후 계획까지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무기력’한 청소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적극성이 보였다.
“인문학카페 36.5도나, 우물밖청개구리 등 학교 밖 청소년들이 모여 세미나, 문화 활동 등을 하는 활동공간에 계속 있었어요. 덕분에 잡지를 함께 만들 수 있는 친구들도 비교적 쉽게 찾았죠. <핵노답>은 저를 포함해 2명의 친구가 함께 기획한 매체예요. 제목인 ‘핵노답’은 청소년들에게 친숙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는 단어를 생각하다 나온 말이에요. 예술 활동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원고를 부탁하기도 했으니, 총 8~10명 정도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참여했네요.”
허씨를 비롯한 3명의 기획팀이 책을 완성하기까지는 약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만 5개월간 ‘무기력 탐구생활’을 거치니, 무기력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어요. 경쟁이 심한 사회다 보니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무기력 상태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핵노답> 발간에 드는 인쇄비 등은 아름다운재단의 2015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해결됐다. 허씨는 “향후에도 청소년들을 꿰뚫는 좋은 열쇳말이 있으면 그것을 주제로 이런 출판물 발간 활동을 계속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핵노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메일(purple_huh@naver.com)로 문의하면 된다.
정유미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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