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과정에서 독서활동이 ‘스펙’이 되는 시대, 많은 청소년들이 ‘양적 독서’에 치중하지만 책 한 권을 읽어도 내 것으로 소화하고, 그것을 통해 내 전공과 진로 등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도서부 활동을 하면 한 학기에 봉사활동 20시간을 준다기에 냉큼 신청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책 정리하고 대출·반납 처리 등을 한 뒤 남는 시간에 빈둥거리는 게 주 업무였습니다. ‘근묵자흑’이라고, 책 옆에 있으니 책을 조금씩은 읽게 되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게 책은 ‘시간 있으면 읽고 없으면 마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2학년이 되던 날, 사서 선생님이 새로 부임했습니다. 배우 임수정을 닮은 분이었습니다. 눈이 부셨죠.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대충 짐작이 되시죠? 그렇게 첫사랑이 시작됐고, 전 그분에게 한마디라도 더 붙여보려고 쉬는 시간마다 도서실에 가서 책을 빌렸습니다. 그해에 읽은 책이 90권 넘은 걸로 기억합니다. 방학 때는 책을 빌리지 못했으니 적어도 2.5일에 한 권씩 읽은 셈이죠. 정치, 역사, 종교, 철학, 과학, 문학 가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금 하는 생각의 절반 이상은 그때 완성됐는지도 모릅니다. 첫사랑은 완성되지 못했지만요.
저에게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입니다. 단순히 사서 선생님과 말문을 트기 위한 도구를 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저자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저자가 10년 동안 고생해서 쓴 책을 하루이틀 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은 매우 효율적인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요즘 입시에서 독서활동이 중요한 평가요소로 자리잡으면서 중고등학교 친구들의 독서량은 제 학창시절보다 훨씬 늘어난 걸로 압니다. 하지만 학생부나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한 ‘스펙 독서’, ‘적기 위한 독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립니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한 권을 읽어도 내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과연 그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딩 선배가 말하는 ‘내 전공, 이 책’’에서는 대학생 선배들이 전공을 결정하면서, 입시 과정에서, 전공 공부 또는 관련 활동을 하면서 도움이 됐던 책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단순히 책 소개를 넘어, 책과 관련된 생생한 경험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매주 나오는 이 칼럼이 여러분의 독서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필진은 대학언론협동조합에 소속된 대학생들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대학언론협동조합은 대학에서 독립언론 창간과 운영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여러분이 대학에 가면 대학신문, 대학방송국, 영자신문 등의 공식 언론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미 망해서 없어진 곳도 있겠지만요. 절대다수의 대학언론사는 학칙에 따라 기사 발행 전 총장 또는 총장 대리인인 주간교수의 검열을 받습니다. 때문에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가 학생들에게 전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저 역시 그런 일을 수차례 겪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뜻이 맞는 대학언론인들이 대학언론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저널리즘·편집디자인 교육, 운영매뉴얼 제공, 광고영업 등을 통해 대학본부의 검열이 없는 독립언론 활동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조합에 소속된 매체는 한국외대 ‘외대알리’, 성공회대 ‘회대알리’, 이화여대 ‘이대알리’, 세종대 ‘세종알리’입니다.
서로 다른 전공을 하고 있는 총 10명의 대학생 선배들이 돌아가며 책에 대한 기억을 담으려 합니다. 이 다채로운 기억나눔이 후배 여러분에게 좋은 책을 접하는 기회가 되기를, 좋은 전공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상석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