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라곤에서 배우자>
윌리엄 F. 화이트, 캐서린 K. 화이트 지음, 김성오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2012년
경영학과에 오면 팀플(팀프로젝트)을 자주 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겐 모둠활동이라는 말이 익숙할 것 같네요.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교의 팀플은 배신과 독박, 무임승차와 추격전으로 얼룩집니다. 같은 반에서 하루 종일 얼굴 마주하는 생활이 아니기 때문이죠. 슬프게도 저는 주로 ‘독박’을 담당했습니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 있는 160여개 노동자 생산협동조합들의 협동조합 네트워크 ‘몬드라곤’의 성장스토리를 담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휴학하고 대학언론협동조합을 창립하면서 읽게 됐습니다. 협동조합은 내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기업 형태로 19세기부터 주식회사의 대안으로 설립되었습니다.
19세기의 협동조합은 실패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다수 조합원 간 불화와 경영 악화가 이유였죠. 특히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은 성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통념까지 있었습니다. 발표 한 번 하자고 모인 팀플도 싸움이 끊이질 않는데 시간과 돈, 인생을 걸고 공동으로 사업을 하니 얼마나 갈등이 심했을까요.
많은 이들이 노동자협동조합은 성공할 수 없다며 시도조차 안 하고 있을 때, 1956년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서 특이한 기업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석유난로를 만드는 ‘울고’라는 협동조합입니다. 마을사람 100여명의 투자를 받은 다섯 명의 공동설립자가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켜 울고를 스페인 100대 기업으로 키워냈고, 1980년대에는 제조업·금융·유통·연구·교육을 포괄한 거대 협동조합 그룹 ‘몬드라곤’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불가능하게 여기던 거대한 팀플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요? 이들한테는 정신적 지주가 있었습니다. 울고의 공동설립자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제자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협동조합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팀플이 힘들 땐 좋은 조언자를 찾아보세요.
또한 이들은 사고의 틀을 공유했습니다. 몬드라곤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평등, 연대, 노동의 존엄, 참여를 기본 가치로 여깁니다.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달리 고용창출과 고용보장, 인간과 사회의 발전, 자치와 자주관리 등이 사업의 주목적인 것도 특징입니다. 서로의 가치와 목적이 일치할 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몬드라곤에는 토론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몬드라곤은 1974년 첫 파업을 겪었습니다. 새로 도입된 직무평가 프로그램에 반기를 든 400여명의 노동자들이 재평가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영진은 파업 주동자 17명을 해고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몬드라곤의 가치에 어긋난다는 내부 여론으로 대부분 복직시키고 조합평의회 등 노동자의 의견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의사결정 체계를 재편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제 망했던 팀플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조금만 일찍 읽었더라면 저 혼자 자료조사, 피피티(PPT), 발표까지 하고서 욕먹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요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죠. 앞으로 이 분야에 많은 기회가 열릴 것 같습니다. 경제·경영 쪽 진로를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정상석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