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을 거닐다 보면 담 벽에 표현된 여러 무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정사각형 모양 안에 붉은 색과 하얀 색, 두 가지의 색깔만으로 표현된 무늬가 다양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붉은 부분에 집중해 눈을 움직여 보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90도 돌아 움직이다 보면 끝날 것 같은 길이 이어진다. 막다른 길에 이를 경우 다시 돌아가 다른 길을 선택하면 끝이 없을 것 같던 길이 어느새 끝나고 만다.(그림 1) 마치 미로 속을 헤매다 길을 찾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학에선 끝이 없는 것을 무한(無限), 끝이 있는 것을 유한(有限)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옛 사람들은 유한적인 공간 안에 무한의 생각을 담으려 했던 것 같다. 수학적인 관점에서 담장의 무늬를 좀 더 관찰해 보자. 관찰하고 추측하기 1. 정사각형 안에 가상적인 가로선과 세로선을 그어 보라. 붉은 색에 집중해 관찰하면 네 개의 작은 정사각형 모양 안에 ‘영원’을 상징하는 만(卍)자가 한 개씩 모두 네 개 보인다. 이번에는 하얀 부분에 집중해 관찰하면 네 개의 작은 정사각형 모양 안에 어느 것이나 한글의 모음 ㅏ, ㅓ, ㅗ, ㅜ가 보인다. 마치 한글의 모음 ㅏ, ㅓ, ㅗ, ㅜ가 중앙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에 배열되어 만(卍)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 무늬들은 부분적으로는 세로선을 기준으로 대칭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비대칭이다.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것을 양의 방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것을 음의 방향이라고 정하면 이 무늬들은 마치 음양의 두 방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그림 2) 이것은 궁궐의 담 벽 이외에 길 위의 맨홀 뚜껑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자연스런 무늬라 할 수 있다.(그림 3) 2. 궁궐이나 기와집 담 벽에 사용되는 무늬 중에는 ‘영원’ 또는 ‘무한ㅓㅘㅜ’을 상징하는 무늬로 회(回)자를 변형시킨 것이 있다. 이것은 대개 위나 아래 부분에 표현되어 길게 이어지고, 중앙 부분에 표현되어 정사각형 모양 안에서 맴돌게 된다.(그림 4) 이런 발상은 화엄사상으로 유명한 의상대사(672~702년)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도 더욱 강조되어 활용된다. 그는 불교의 화엄사상을 210자의 글자로 요약해 정사각형 모양 안에 써 넣었다. 유한한 현상을 나타내는 글자 법(法)에서 출발해서 돌고 돌아 무한한 깨달음을 나타내는 글자 불(佛)에 이르고, 불은 바로 법으로 이어진다.(그림 5, 6) 결국 화엄일승법계도에서 법과 불은 가운데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마치 작은 먼지 속에서도 우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다. 최근 수학에서 기하학의 한 분야로 연구되고 있는 프랙털 기하(fractal geometry)의 특성을 앞서 표현했다고 생각하니 감동과 놀라움에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는다.
김흥규/서울 광신고 교사 heung13@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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