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30 18:12 수정 : 2005.01.30 18:12

인간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이성의 놀라운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언어는 사물의 어느 측면을 고정화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서양에서는 ‘변증법’이 대두되었고 우리나라의 원효 스님은 ‘화쟁(和諍)’사상을 내세웠다.

원효(617∼686)가 살던 시대에는 이미 불교의 여러 종파와 사상이 도입돼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교설들의 대립’이나 ‘세속과 종교의 대립’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원효는 언어와 교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대립을 넘어선 회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으니, 이것이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화쟁사상이다.

많은 경우 대립된 주장들은 각론에서 차이가 있지만 총론에서는 서로 통할 수 있다. 가령 불교의 여러 교설들은 심지어 서로 모순되기도 하지만 본래 부처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리의 일면들임이 밝혀진다. 중관학파는 사물에 실체가 없다(空)는 점을 강조하고 유식학파는 현존하는 나의 의식과 현상의 존재(有)를 주장한다. 여기서 앞의 관점에만 집착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것이며, 뒤의 관점에 고정되면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주장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태도로 원효는 당시 대립된 열 가지 주요 논제들을 택해 이들을 통일적으로 화합시켰다(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우리는 언어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긍정과 부정, 같음과 다름, 있음과 없음 등 모든 개념은 방편적이다. 그 때문에 맥락에 따라 그 근본 취지를 살린다면 겉으로 대립된 것처럼 보이는 교리들도 서로 상보적이고 회통됨이 밝혀질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종파적 고착성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원효에 의하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본심으로서 일심(一心)이다. 참된 깨달음은 언어와 분별을 넘어선다.

실제로 원효는 분별과 경계를 넘어서는 삶을 실천했다. <삼국유사>에서도 그의 전기의 제목을 ‘원효,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국가적 불교 지도자이면서도 많은 시간 저잣거리의 민중들과 함께 지냈다. 그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불도의 모든 사상에 통달한 고승이면서도 스스로 파계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기도 했다. 경희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