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30 18:13
수정 : 2005.01.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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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전집 김용직, 손병희 깊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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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혹한도 녹일 만큼 뜨거운 열정과 신념을 가진 사나이.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상큼한 가슴을 가진 사나이. 이육사(1904∼1944)는 국내에 열일곱 차례나 잠입하며 항일 투쟁에 앞장 선 독립투사이자 <청포도>와 같이 한없이 맑고 고운 시심을 펼쳐 낸 서정 시인이다. 조국 광복을 의심하지 않았던 투철한 역사의식 위에 자신의 삶을 뜨겁게 불태웠고, 아름다움과 치열함으로 모국어의 미학적 지평을 넓혔다.
<절정>의 첫대목인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에서 ‘매운 계절’을 단지 ‘추운 겨울’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매운 계절’은 자연스럽게 엄혹한 시대 상황이란 의미를 얻는다. 이어지는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를 보자. 언뜻 휩쓸리고 지치는 듯 싶어도 시적 자아는 고통의 극한에서조차 분명히 서 있다. 짓눌리는 대신 끝까지 자신을 다잡아 세운다. 더 이상 맞서지 못할 그 순간에도 ‘눈감아’ 정신적 초월과 극복을 꿈꾼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고통의 절정을 스스로 선택해 다시 환희의 절정으로 만들고야 마는 육사의 삶과 시는 분명 하나다.
<광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육사는 ‘까마득한 날’ 하늘이 처음 열리는 태초의 세상을 떠올릴 수 있는 영혼이다. 산맥들이 휘달리고 부지런한 계절이 꽃처럼 피고 지는 엄청난 시간을 머리 속에서 되돌아 볼 수 있는 가슴이며, ‘다시 천고의 뒤’를 꿈꾸는 지성이다. 어느 누가 이렇게 광대한 시간과 공간을 노래했을까.
그러기에 그에게 눈 내리는 광야, 즉 어두운 현실은 찰나 중의 찰나다. 엄청나게 광대한 시간을 자유롭게 종횡무진하는 상상력과 역사의식을 가졌기에 육사의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 흔들림이 없다. 윤동주의 시가 흔들리면서도 끝내 버티는 미학을 보여 준다면 이육사의 시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광대한 영혼의 세계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의 시와 삶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펜은 총을 그리워하고 총은 다시 펜을 잡는다. 육사, 당신의 삶과 시를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차가운 북경의 감옥에서 마흔이란 젊은 나이에 요절한 당신이 문득 보고 싶어진다. 추위 속에서 더욱 더 뜨겁게 타오르는 육사의 삶과 시! 허병두/서울 숭문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대표wisefr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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