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험생이 17일 오전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장인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앞에서 긴급수송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러려고 대박났나’, ‘온 우주의 기를 모아 합격’….
국정농단 사태는 17일 실시된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원전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고 앞에선 서문여고 학생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담화문에 나온 문장을 고쳐 ‘이러려고 대박났나. 만족감 들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와 선배들을 응원했다.
전북 전주 기전여고 앞에서 응원하던 남학생들은 ‘2016년 헬게이트 시험’이라고 쓴 팻말을 들었다. 아래엔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 사진을 배치하고 '다음 두 인물은 어떤 학파 출신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①차움 학파 ②새누리 공법학파 ③그네학파 ④떡검학파 ⑤프라다 승마학파'라는 보기를 써넣었다.
이날 오전 8시40분부터 전국 85개 시험지구, 1183개 시험장에서 수험생 60만5000여명이 일제히 수능을 치렀다. 자녀를 시험장에 들여보낸 부모들은 마음을 졸였다. 서울 종로구 동성고 앞에서 아들을 배웅하고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아버지 배용주(52)씨는 “‘차분히 긴장하지말고 시험보면 된다’고 말했다”며 “1년 동안 딴 짓 안하고 학원 다니며 공부해준 게 고맙다”고 말하며 눈가를 닦았다. 환일고 고3 담임을 맡은 김주경 교사는 “지난해보다 시험이 일주일 미뤄져 아이들이 더욱 고생했다”며 “1년 동안 애썼다,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자들이 지나갈 때 김씨는 활짝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수험생에겐 수능이 ‘일생일대’의 날이지만 각종 사건·사고도 발생했다. 경기 의왕시에서는 아파트 현관문이 갑자기 고장나는 바람에 집 안에 갇힌 수험생 2명이 소방관 도움을 받았다. 소방관들은 번호키 도어락이 고장난 것을 확인하고 문을 부순 뒤 수험생들을 시험장까지 태워줬다. 대구 수성구에선 새벽 5시54분께 수험생 어머니 ㄱ(54)씨가 인절미를 먹던 도중 기도가 막혔다. ㄱ씨는 명치 부분에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는 부분 기도 폐쇄증세를 보였다. 구급대는 어머니를 인근 대학병원에 이송한 뒤 딸 ㄴ양을 아침 7시께 수험장에 데려다줬다. 대구 수성 황급구급대 관계자는 “어머니 ㄱ씨는 상태가 회복됐다”고 전했다.
늦잠으로 지각하거나 시험장을 잘못 찾아간 일은 비일비재했다. 경찰청은 시험장을 잘못 찾아가거나 지각한 수험생을 데려다준 경우가 1380건이었다고 밝혔다. 경기 파주시 운정동에선 한 여학생이 “전날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복용하고 늦게 일어났다”며 112에 전화해 경찰이 시험장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휴대전화 반입이 적발돼 시험이 무효 처리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부산 금정구 남산고에서 시험을 보던 한 여학생은 도시락 가방 안에서 어머니 휴대전화 벨소리가 10초간 울리는 바람에 1교시가 끝난 뒤 귀가조처됐다. 울산에선 3교시를 치르던 수험생 1명이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켜 병원시험장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시험을 포기하지 않고 필수과목인 4교시에 응시했다고 울산시교육청은 밝혔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