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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군주를 위한 조언, 국민에의 경고

등록 2005-11-13 16:03수정 2005-11-14 14:23

마키아벨리는 역사 속에서 공화론자였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한길사)에 실린 그의 삽화.
마키아벨리는 역사 속에서 공화론자였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한길사)에 실린 그의 삽화.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흔들리는 공화제에 군주예찬
그대여 자유를 원하는가
그럼 정치의식을 높여라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큼 지난 오백 년 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책이 또 있을까. 작은 고추가 맵다고, 백 쪽도 채 안 되는 저서가 뭇사람의 관심을 확 끌어당김과 동시에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그렇게 한 만큼 이 책의 내용을 경계하게 했고 이 책의 저자를 미워하게 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군주론>은 뿌리치기 어려울 만치 매혹적이자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가?

그 첫째 이유는 이 책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진실을 말했는가? 그 답은 책의 제목에 있다. 바로 군주에 대한 진실을 말했다. <군주론>의 핵심적 내용은 명확하다. 그것은 일반적인 위정자나 정치인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책 제목 그대로 ‘군주’를 위한 조언이다. 다시 말해 공화정이나 민주주의 체제의 위정자를 위한 지침이 아니라, 독재와 전제정치가 거리낌 없이 활용되는 군주국가의 위정자를 위한 지침이다.

마키아벨리는 책의 시작부터 “군주국에 대해서만 논하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공화정을 비롯해 다른 어떤 형태의 국가를 이끄는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세습 또는 찬탈에 의한 권력 획득이 필요하고 독재와 전제정의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반면 민의에 의한 선출이나 헌법에 의한 권력 감시가 존재하지 않는 군주국의 위정자에 대해서 논한다는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적인 권력탈취와 권력유지가 불가피한 군주국가의 ‘군주는 이렇다’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런 현실에 바탕해서 ‘군주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엄밀한 관찰과 성실한 탐구 정신으로 허황한 관념이 아니라 군주국과 군주의 구체적 현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하지만 <군주론>의 해석자들은 그의 주장을 일반화하려는 욕구를 버리지 못했다(이것이야말로 묘한 일이며 분석 대상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란 이렇다’라고 한 것을 ‘위정자란 이렇다’라고 보편화했다. 더 나아가 ‘정치란 이렇다’라고 해석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현실주의 정치이론가라고 칭송하기도 했고, 마키아벨리즘의 창시자라고 혐오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5세기 동안 매혹적이면서도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군주론의 신화’는 지속되었다. 현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던 사상가의 말이 ‘현실주의 정치’라는 신화의 언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론>은, 특별한 정치 체제를 이끄는 위정자인 군주는 ‘이렇다’는 것을 보여준 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군주론을 뒤집어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따라온다. ‘군주의 통치술을 위해 바치는 책이 국민에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사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공화론자였다. 그는 자기의 조국이 공화정을 유지하면서도 당시의 어려운 정치 외교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국민이 공화제를 이룰 능력이 없고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군주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군주제는 그가 책에서 설파했듯이 국민에게 고통, 희생, 기만의 굴욕을 감수하도록 요구한다. “군주의 잘못을 물을 법정은 없다.” 군주제 아래에서 인민은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의 폭정에 의해 국민의 자유는 언제든지 억압당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군주론>은 양면의 거울이다. 군주에겐 조언이지만 국민에겐 경고이다. ‘그대들이 공화제를 이루지 못해, 군주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군주란 바로 이렇게 행동하는 위정자다. 똑똑히 보아둬라.’ 이것이 국민에게 하고 싶었던 마키아벨리의 말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군주제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상황은 -지정학적이고 국제정치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대들이, 자유가 보장되는 정치 체제를 원한다면 그대들의 정치 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며 오늘날까지도 유효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인 것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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