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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누구를 위하여 운동회는 열리나

등록 2005-11-13 19:02수정 2005-11-14 14:27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운동회연습 재미없고 힘만 들어요”
왜 해야 하나 묻는 말에 난감
교육 앞세운 동심 괴롭히기 아닌지

가을하늘이 청명하다. 얼마 전까지 운동회 연습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운동회는 어느 학교에서나 하는 뜻있는 가을행사다.

3월에 말썽쟁이 2호로 출발했다가 드물게 착한 어린이가 된 제자 김한솔이 운동회 연습을 하다가, “선생님, 저 지금 몸이 으슬으슬 추워요. 어떡해요?” 하기에 이마를 짚어봤더니 열은 없고 오히려 차갑다. 꾀병 부릴 녀석이 아니어서 “일단 양호실에 가 봐라.” 일렀다. 잠시 뒤 김한솔이 털레털레 다가오더니, “선생님, 저 감기래요.” 하고는 자리로 들어간다. 운동회 때 선보일 새천년체조를 계속 연습해야 하므로. 한솔이가 몹시 힘들어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교실에 들어가서 쉬어라.” 했더니 세상사에 지친 노인처럼 터덜터덜 걸어서 교실로 들어간다.

운동회 연습 끝나고 교실에 들어서니 한솔이 대뜸 묻는다.

“선생님, 왜 운동회 연습을 하는 거예요?” “왜? 힘드니?” “운동회 연습을 왜 해야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운동회 연습하기 싫은가 보구나. 지겹지?” “네, 솔직히 운동회 연습하기 싫어요. 재미는 하나도 없고 힘만 들어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솔이 마음 이해해.”

아이들 입에서 재미는 하나도 없고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소리가 튀어나오면 좀 곤란하다. 누구를 위한 운동회인가. 아이들 즐거우라고 하는 운동회 아닌가. 그렇다. 남들에게 근사하게 보이기 위한 운동회는 좋은 운동회가 아니다. 어른들 욕심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난다. 가을 땡볕에 아이들을 줄 세워놓고 지겹도록 반복연습시키는 교사들이나, 그렇게 하라고 고집을 세우는 교장이나 모두 반성해야 한다. 교육, 교육 앞세우는 사람치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교육 펼치는 걸 나는 아직 못 보았다. 교육을 앞세워 동심을 억누른다면 나쁜 교육이다. 이 환장하게 좋은 가을 햇살 아래서 동심을 괴롭히는 어른들은 모두 나쁘다.

아하! 그러고 생각해보니 동심을 업신여긴 역사가 참 오래되었다. 저 창세기의 아브라함이 어린 아들을 야훼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대목. 아브라함은 아버지로서 잠시 고뇌하지만 결국 야훼의 제단에 아들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아브라함은 먼저 아들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그게 어려우면 양해라도 구했어야 옳다. 야훼의 제단에 아들의 생목숨을 바치는 아비의 비정함을 용서해 달라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앙은 아들의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일방적인 것일까. 아브라함은 신앙을 앞세워 가장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다. 아브라함은 순정한 동심을 짓밟았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요즘 우리 둘레에는 교육을 앞세워 일방통행을 강요하는 비정한 아비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아브라함의 함정에 빠진 냉혹한 교육자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송언/서울 동명초등학교 교사 so131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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