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조합원들이 2015년 6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 폐지 공식화에 이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의 전수평가 방식(일제고사)이 9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학교 서열화’를 완화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이 속도를 내고 있다. 교육계가 대체로 환영하고 있는 가운데 ‘경쟁교육’에서 ‘협력·평등교육’으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 20일 일제고사, 시·도교육청 자율로 교육부는 모든 중3과 고2 학생이 20일 치를 예정이었던 일제고사를 일부 학생만 대상으로 하는 표집(샘플) 방식으로 바꾼다고 14일 밝혔다. 교육부는 “평가 결과 공개에 따른 시·도 및 학교 간 등수 경쟁, 시험에 대비한 교육과정 파행운영 우려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고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올해 평가는 교육부가 선정한 표집 학교에서만 실시하고, 그 외 학교의 평가는 각 시·도교육청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표집 대상은 중학교 476곳 3학년생 1만3649명과 고등학교 472곳 2학년생 1만4997명이다. 평가 교과는 국어·수학·영어이며, 시험 결과는 학생들에게 개별 통지한다. 그러나 시·도교육청별 결과나 학교 정보공시는 없으며, 11월 평가 결과 발표 때도 국가수준의 분석 결과만 내놓는다.
■ 시·도교육청 반응은? 학업성취도평가는 1986년 표집평가 방식으로 처음 도입된 뒤 김영삼 정부 시절(1993~1997년)에는 전수평가 방식으로 치러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1998~2007년)에서는 표집평가로 실시되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는 전수평가로 다시 바뀌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학업 보충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학생들의 시험 부담이 늘고 ‘학교 서열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중3, 고2를 빼고 초등 6학년의 일제교사를 폐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머지 일제고사도 폐지한다고 공약했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간담회에서 오는 20일 평가부터 즉각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교육부 발표가 나오자 서울·부산·경기·강원·충남·전북·광주·전남·제주교육청은 전수평가 대신 표집평가 방식으로 바꿀 뜻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성명을 내어 “(일제고사는) 학생들의 시험 부담과 점수 경쟁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업무 부담을 증가시켜 평가 시행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있었다”며 “전수 시행을 폐지하고 표집 시행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한다”고 밝혔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결정된 것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논평을 내어 “교육시민사회가 전개해온 경쟁교육 폐지 운동의 성과”라고 환영하면서도 “시·도교육청 방침에 따라 학교 단위 일제고사가 시행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며 학교 현장의 혼란을 우려했다.
■ 학생별 학업성취 평가는 어떻게? 전문가들은 일제고사 폐지 뒤 학생의 학업성취를 평가할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일제고사가 폐지되면 교사가 학생의 학업 수준을 파악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학생 개인별 프로파일을 만들어 학생이 어느 과목에 관심이 있고 역량 정도가 어떠한지 교사와 학교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30여개 문항인 현재 일제고사는 학생의 기초학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 학생-학부모-교사 삼자 면담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앞으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위해 학교나 시·도교육청에서 자체 평가를 한 뒤 자율적으로 학습수준을 진단해 지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은주 김미향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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