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권리연합회가 지난 19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을 애도하며 추모회를 열고 있다.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제공
고3 실습생 이민호군의 죽음을 계기로 현장실습 제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취업률을 높일 목적으로 확대해온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시기 및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아예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 실습생한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현장실습 서약서’ 폐지 등도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꼽힌다.
지난 24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현장실습 폐지를 포함한 전면 개편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현장실습 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특성화고 학생을 업체에 파견하는 ‘조기 취업’ 형태의 현행 제도로는 크고 작은 사고가 거듭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지난 19일 숨진 이민호군도 업체와 근로계약서 및 표준협약서 등을 모두 맺었지만, 실제 이군의 노동 강도는 훨씬 높았다. 이군한테 현장실습이란, 곧 취업을 위한 동아줄이었다.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노무사는 “지금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고교 교육과정과 전혀 관계없이 취업의 개념으로 이뤄진다. 학교가 취업률 압박에 내몰려 안전한 일자리인지 가리지 않은 채 학생을 조기 취업시키는 방식의 현장실습은 중장기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에서 이뤄질 수 있는 현장실습의 유형은 교내실습과 창업동아리, 학교기업, 현장체험학습, 위탁교육,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등이다. 이 가운데 대다수 직업계고에서 선택하는 건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다. 이를 당장 폐지하기 어렵다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등 정부의 관리·감독이 가능한 산업체에만 학생을 파견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관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논란을 빚는 근본적 이유는 실습 업체를 정부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가능한 업체에만 학생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노동자 10인 이상 업체면 학교장이 파견을 보낼 수 있다. 참고로 2008년 상반기까지는 실업계고(직업계고) 3학년 2학기 과정의 3분의 2를 마치고 해당 업체에 취업이 보장됐을 때에만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한 바 있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중단하거나 그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중장기적 과제라면,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대안도 있다. 먼저 업체 파견 직전 실습생한테 작성하게 하는 서약서는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약서의 주된 내용은 ‘(업체) 준수사항 위반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한다’ 등 실습생한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실습생이 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충분히 이의제기할 수 없게 하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9월말 국가인권위원회는 각 시·도교육청에 “현장실습생에게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전국 17곳 시·도교육청 중 서울·경남·전남교육청을 제외한 14곳은 폐지 여부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서약서 대신 학생이 신체적 이상이나 위험 등을 감지했을 때 스스로 실습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학생은 실습 도중 아프거나 안전 장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등 문제가 발생해도 스스로 그만둘 권한이 없다.
아울러 국회에서는 현장실습의 법적 근거인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 움직임도 있다. 지금도 현장실습 업체가 표준협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일을 시키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돼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수단이 없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표준협약서 내용을 준수하지 않을 때 과태료를 물릴 수 있는 개정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경기도의 한 공업고가 지난해 현장실습생에게 작성하도록 한 서약서. ‘현장실습 기간 중 학교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겠다’, ‘무단결근 및 무단퇴사, 무단이탈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학생이 서약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