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펼쳐 보인 귀납법의 창시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 한겨레자료사진
유전자 조작·동물복제·핵융합…
17세기에 그린 과학 유토피아
거기엔 매연·방사능도 없다고?
17세기에 그린 과학 유토피아
거기엔 매연·방사능도 없다고?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비과학적인 ‘과학적 낙관주의’의 시작
프랜시스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
“우리가 만든 물을 마시면 건강이 증진되고 생명이 연장됩니다…우리는 유성의 체계와 운동을 모방한 거대한 건물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눈, 비, 우박 등을 인공적으로 내리게 하며, 천둥과 번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개구리, 파리 등 다양한 생물체를 번식시킬 수 있습니다…동물의 손상된 부위를 재생하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한 번 먹고 나면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고기, 빵, 음료수도 개발했습니다… 우리는 태양을 모방한 발열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또한 빛을 먼 거리까지 날려보낼 수 있고, 빛을 이용해 사물의 크기, 부피, 움직임,색상을 왜곡되게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벤살렘 섬의 솔로몬 학술원 회원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그 섬에 조난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문명적 성취를 끝없이 나열한다. 그러고는 “이것은 요행의 산물이 아닙니다.” 라고 단호히 말한다. 즉 과학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긴 그가 나열한 것은 오늘날의 첨단 과학 기술의 성과가 무색할 정도다. 유전자 조작, 동물 복제, 세포 재생, 인공 천둥과 번개, 우주여행 때 쓸 법한 영양식, 핵융합, 레이저 광선, 디지털 가상현실의 조작 등이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베이컨이 1600년 대 초 <뉴 아틀란티스>에서 묘사한 ‘과학적 유토피아’의 섬에서는 불가능이 없어 보인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풍요하고, 모든 욕망의 성취가 가능해 보인다. 학술원 회원은 앞서 말한 것을 넘어서 쉴 새 없이 많은 과학적 성취를 더 나열하는 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욕망의 총목록과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행복의 개념은 욕망의 완전한 충족으로 얻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섬의 별명은 ‘행복의 섬’이다. 가히 에덴의 낙원에 버금갈 듯 하다. 다만 에덴 동산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낙원이고, 벤살렘 섬은 과학의 힘을 이용해 인공으로 만든 낙원이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로도 잘 알려진 베이컨은, 이 책에서 솔로몬 학술원 회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우리 학술원의 목적은 사물의 숨겨진 원인과 작용을 탐구하는 데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 활동의 영역을 넓히며 인간의 목적에 맞게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자연 법칙에 대한 지식과 과학 기술의 힘으로 이루어 내는 행복의 나라가 베이컨이 추구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베이컨은 과학적 낙관주의자였다. 그에게 ‘과학적’이라는 말보다 더 값진 것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베이컨은 매우 ‘비과학적’인 사람이었다. 벤살렘 왕국에서는 학술원이 발명한 수많은 기계가 돌아간다. 그런데 이들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듯, 연소에 의한 매연도 방사능 폐기물도 배출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씨앗 없이 배양토의 혼합만으로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지만, 땅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곳에서는 이상하게도(아니면 기적적으로) 모든 과학적 성취에 부작용이 전혀 따르지 않는다(우리가 부작용이라고 쓰는 말은 ‘동반 작용’이라고 해야 옳다. 그 작용이 꼭 부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반하는 작용은 원 작용보다 작을 수도 있고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동반 작용이 있다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과학의 동반 작용을 인식하는 것이 과학적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베이컨은 비과학적이었다. 물론 동반 작용이 무서워서 과학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과학은 더욱 발전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온전하게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과학을 총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이 바로 자연을 총체적으로 인식함으로써 법칙들을 발견해왔다는 사실도 이를 잘 말해 준다.
<뉴 아틀란티스>는 미완성 작품으로서 베이컨 사후에 출간되었다. 만일 그가 이 작품을 완성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과학적 성취를 상상했겠는가. 그만큼 얼마나 많은 과학적 동반 작용을 망각했겠는가. 과학적이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과학의 발전 단계에 동반하는 작용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베이컨의 작품이 반면 거울의 효과로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6S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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