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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밌어요. 얼마나 웃긴지 몰라요. 한 번 보세요.” 재영(9)이가 방구석에 돌아서서 혼자 실컷 웃으면서 본 책을 나한테 꼭 보라고 내밀어요. ‘자살토끼?’ 표지에는 빵 굽는 스토브 안에 하얀 토끼 귀만 쫑긋 나와 있고 그 아래에 이렇게 써있어요.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조금은 섬짓한 느낌이 들었어요.
하얀색 작은 토끼가 나오는, 그림만 있는 책이었어요. 집에 오면서 차 안에서 꺼내 보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한 컷 한 컷,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그림책이었요. 그 다음에도 몇 번이나 보면서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찬희(11)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찬희는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면 어떻게 반응을 할까?’ 궁금했어요. 찬희는 상처가 많은 아이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와서 좋은 책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노는 내 동무예요.
찬희는 내가 건네준 책을 받아서 책상 저 쪽에 가서 혼자 몇 장을 보더니, 내가 이렇게 넘겨다 보니까 나한테 가져 오면서 “우리 같이 봐요. 여기서 보면 이상하니까.” 아무 말 없이 나는 찬희 옆에 앉아 있었어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혼잣말처럼 그래요.
“토끼 꼭 죽고 싶었나 봐요. 그 정도로 사람이 싫다는 거겠지요?”
슬픈 얼굴로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면서 혼자 조잘거려요.
“토끼 정말 죽고 싶나봐요.”
번지점프하러 가면서 커다란 가위를 가지고 가는 토끼를 보면서, 큰 바위 아래 누워있는 토끼를 만날 때도, 잠자는 불독 꼬리에 호치키스를 박을려고 하는 토끼를 볼 때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나한테 물어봐요.
“왜 죽고 싶은지 알아요? ” “난 잘 모르겠는데.” “왜 죽을려고 했냐면 사냥꾼이 토끼 잡아가니까 지가 먼저 죽을려고 한거예요.” 목소리를 가늘게 높여서 단정을 짓듯이 또박또박 말을 했어요.
또 다시 책을 펴서 보는데 처음하고는 달랐어요. 이제는 한 장면 한 장면 둘이서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봤어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도 각자 하면서 놀았어요. 그림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엄청나게 웃었어요. 방바닥을 구르면서 배꼽 빠지겠다 하면서도 자꾸 웃었어요.
“아~~하하, 아~~아!”
배가 꼬이고 아팠어요.
“토끼가 죽고 싶어서 외계인 거시기를 차버리잖아요. 저 외계인이 얼마나 황당한 지 저 표정 좀 보세요.”
보고 또 웃고 또 웃다가 보고 화장지로 눈물을 닦아가면서 웃었어요. 이렇게 통쾌한 웃음을 얼마 만에 웃어보는지 모르겠어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쏟아내는 것 같아요. 찬희는 졸랐어요.
“이 책 꼬옥 빌려가고 싶어요. 엄마 아빠가 보면 배꼽 빠지겠다.”
찬희가 그 다음 주에 책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림 속에서는 볼 수 없는 세계까지도 보는 힘을 가졌더라고요. 좋은 책을 발견하면 늘 반복하고 즐기고 서로 공감하면서 그 이야기 세계를 하나의 체험으로 터득하게 해 주는 게 소중하겠지요. 재영이가 숙양이한테, 숙양이는 찬희한테, 찬희는 엄마·아빠한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같이 나누고 싶겠지요. 재미와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만족감이 크면 클수록. 앤디 라일리 글-거름/6500원. 이숙양/공부방 활동가 animator-1@hanmail.net
“왜 죽고 싶은지 알아요? ” “난 잘 모르겠는데.” “왜 죽을려고 했냐면 사냥꾼이 토끼 잡아가니까 지가 먼저 죽을려고 한거예요.” 목소리를 가늘게 높여서 단정을 짓듯이 또박또박 말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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