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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새들아 놀러와 맛난 밥상 차렸어

등록 2005-12-04 15:20수정 2005-12-05 14:04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며칠 전 이른 아침, 옆집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청딱따구리가 톡톡 쪼아먹고 있었어. 주로 산에서만 보이던 초록빛 산새가 우리 집 가까이까지 내려온 거야. 겨울이 되면 새들은 먹을 게 부족하니까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 내려와. 추운 겨울은 사람들한테도 힘든 계절이지만 새들한테는 더 힘들어. 많이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지. 그래서 우리는 새들한테 맛난 밥상을 차려 주기로 했어.

창고에서 못 쓰게 된 가구를 찾아 조그만 서랍을 밥상으로 썼어. 먹다가 혹시 고양이들한테 당할 수도 있으니까 밥상을 높게 차려 주려고 다리도 만들고 받침대도 만들고 말이야. 새들은 어떤 먹이를 좋아할까? 쌀도 놓고 보리도 놓고 조그만 약콩도 놓고 우리 집 햄스터 똘똘이 먹이에서 해바라기 씨도 슬쩍 골라 놓고 빵 부스러기도 놓았어. 먹다 남은 홍시감도 놓고 지난 번 열매놀이 할 때 모은 빨간 팥배나무, 청미래덩굴 열매, 도토리도 놓았어. 아참, 물도 잊지 말아야지.

“직박구리가 좋아하는 향나무 열매도 놓아야 해.” 나무가 말했어.

새들을 위한 푸짐한 밥상이 차려졌어. 새들아, 어서 와. 맛난 밥상 차렸어. 새들이 오려면 우리가 비켜 주어야겠지. 날씨도 조금 흐리고 오후라 새들이 오기나 할까? 우리는 꼭 몰려다니는 참새들처럼 축구를 하다말고 기차놀이를 하다말고 쪼르르 살금살금 다가가 몰래 지켜보았지만 아직 새들한테 우리가 차린 밥상 소문이 안 났는지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지. 오늘 따라 수다쟁이 직박구리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어.

밥상에 오는 손님을 기다리다 새들을 보러 뒷산으로 올라갔어. 나뭇잎을 몽땅 떨어뜨린 숲은 눈앞이 휑해. 아주 고요하고 조금은 쓸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 하지만 그 텅 빈 숲 속에서 잠깐만 멈춰 기다리면 뭔가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조잘조잘 재잘재잘 수다쟁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고 말이야. 텅 빈 겨울 숲은 새를 보기 아주 좋아. 게다 겨울엔 박새 무리, 쇠딱따구리, 동고비 따위 이 새 저 새 함께 무리 지어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 종류 새를 한꺼번에 볼 수도 있어.

따글따글따글 수다쟁이 직박구리들이 팥배나무 빨간 열매를 먹느라 시끄러워. 가만, 톡톡 토독토독 톡톡 쇠딱따구리가 팥배나무 줄기를 쪼고 있어. 기다란 부리로 나무줄기 속 애벌레를 찾아먹는 거야. 어, 나무줄기 두드리는 소리가 좀더 커. 쇠딱따구리보다 더 몸집이 큰 큰오색딱따구리가 나무줄기를 쪼고 있어. 몸을 숙이고 천천히 살금살금 다가가. 그런데 포르륵! 새들이 날아가고 말았어. 새들을 보러 갈 때는 눈에 띄지 않는 색 옷을 입어야 하는데 나무는 노란 점퍼, 단이는 파란 바지를 입었어. 새들은 눈이 좋아서 새들한테 안 들키려면 원색 옷은 안 입고 가는 게 좋아.

저기 참나무 아래에 어치 세 마리가 있어. 들락날락 뭘 하는 걸까? 혹시 땅속에다 도토리를 숨기는 게 아닐까?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나무구멍 속에 있는 물을 먹느라 들락날락 한 거지. 소나무 높은 곳에서 조그마한 상모솔새들이 열매를 먹느라 바빠. 텃밭 옆 덤불에선 박새들이, 단풍나무 위에선 오목눈이들이, 모두 이리저리 포등포등 포드등 먹이를 먹느라 바쁘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꿩이랑 까치 깃털을 주웠어. 집에 내려와서 재미난 깃털 그림을 그렸지. 깃대 끝을 비스듬히 잘라 물감을 묻혀 선을 꼬불꼬불 쭉쭉 색다른 느낌이야. 이제 우리는 내일 아침을 기다릴 거야. 새처럼 부지런히 일어나 우리가 차린 밥상에 어떤 손님이 왔나 손님맞이를 해야지.

na-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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