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학년도 서울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안내 책자에는 2018년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합격자의 자기소개서(자소서)가 실려 있다. 서울대는 안내 책자에서 ‘입학 서류 작성은 이렇게 하세요’라는 제목과 함께 추천 사례로 이 자소서를 게재했다. 그런데 이 합격자는 자소서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 ‘엡실론 델타’ 논법을 공부했다고 적어뒀다. 엡실론 델타 논법은 함수의 극한 및 연속성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논법으로 미적분의 기초를 쌓기 위해 배우는 대학 과정의 개념이다. 자소서에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 교과서에 나오는 증명들을 읽어보는 것을 목표로 방학을 보냈다”며 “함수의 극한의 성질에 대한 증명이 없는 것을 발견해 선생님께 질문했고 엡실론 델타 논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공부를 한 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서울대는 이 자소서와 함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충분히 나타나지 않은 나만의 특성을 자소서에 보여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같은 책자에는 2018년 서울대 공과대학 재료공학부에 입학한 학생의 학종 자소서도 추천 사례로 올라 있다. 이 자소서에는 논문을 검색해 ‘작업전극과 상대전극에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특성연구(김보라 외)’를 읽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 “처음에 논문을 읽는데 논문의 높은 난이도에 충격을 받았다”며 “EIS, J-V 특성곡선과 같은 생소한 학술적인 용어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적혀 있다.
2019학년도 서울대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책자
#2.
서울대 입학본부에서 발행하는 웹진 ‘아로리’ 2호 ‘나도 입학사정관’ 코너에도 2014년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과학중점고등학교 학생이 대학원 수준의 연구를 했다는 내용이 담긴 자소서가 실려 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과 연계해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인 아르앤이(R&E, Research and Education) 활동을 한 결과물을 소개한 자소서다. 이 합격생은 “대학원 수준의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연구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그 부분에 집중하여 학습한 결과 해당 분야에서만큼은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며 “대학에서는 자율연구를 보장하고자 거의 관여하지 않았고, 기기사용법, 결과분석법 등의 기본적인 내용만 알려주었다”고 자소서에 썼다.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의 모습 등을 그린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인기를 끌면서 학종과 자소서, 수시와 정시 등 입시에 관여하고 있는 부모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가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벗어난 대학과 대학원 등의 교육과정을 선행학습했다고 자랑하는 합격생들의 자소서를 입시 안내 책자에 버젓이 추천 사례로 소개하고 있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교육부가 발간한 ‘중고등학교 2018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과 교육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학생부에는 공교육 내에서 이뤄진 활동만 기재가 가능하다. 공교육과 관련 없는 교외 활동을 작성하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작성을 금지하고 있다. 학생부에는 학교에서 실시한 각종 교육활동의 이수사항을 기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학교장이 승인한 경우 학교 밖 체험활동을 기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다만, 학생의 학습 과정이 사교육의 개입 없이 자율적인 학습으로 학교 내에서 이뤄졌다면, 교육과정 밖의 내용이라도 학종 자소서에 담길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논문 읽기 프로그램 같은 경우 고등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서, 우수 학생을 위해 좀 더 심화한 내용을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학교장 판단하에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해당 내용을 자소서에 적는 것에 대해서는) 현행 선행학습금지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현장 교사와 학생들, 전문가들은 대학 입시가 여전히 서울대를 정점으로 짜여 있는 서열 구조 아래서 이런 학종 자소서가 추천 사례로 제시되면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의 한 공립고 교사는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어 서울대를 정점으로 모든 교육과정이 짜여 있다”며 “(서울대 학종 합격 자소서는) 몇명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표준이 된다. 모든 학교들이 서울대 보내려면 이런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일반고 수학교사는 “서울대가 대학 과정에 나오는 이런 개념을 합격 자소서의 전면적인 주요 소재로 보여주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교육과정을 지키라는 교육부 지침에 대한 위배”라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 ㄱ(20)씨는 “교과과정을 넘어 연구를 한 의대 합격생의 학종 자소서처럼 아르앤이 활동에 접근할 수 있는 학생 자체가 굉장히 소수”라며 “그런 내용이 아직도 (서울대 학종 자소서에) 적혀 있다면 학종에서 문제가 된다”고 했다. 입시전략컨설팅 관계자도 “학생부 기록 지침이 있으나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며 “누가 봐도 냄새는 나는데, 누구도 책임질 수 없고 뭐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입학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등학교 교육과정 밖이냐, 안이냐는 것이 논점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더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을 교육적으로 해도 된다거나 안 된다고 결정할 수 있나”라고 했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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