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때때로 사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성북동이다. 그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둘로 나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 “와, 요새도 성북동에 비둘기 많아요?” 교과서에서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를 배운 아이들은 성북동 하면 비둘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어른들 반응은 전혀 다르다. “부자인가보네요, 도둑골이라는 성북동에 사시니.” 마치 <어린 왕자>의 한 대목 같은 이런 경우를 당하면 나는 그저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다.
그 성북동이 요즘 재개발 바람에 정신이 없다. 시내에서 가깝고, 북한산이 배경으로 흐뭇하게 앉아 있는 성북동이야말로 투자 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재개발 소문이 나자 하루 건너 늘어나는 가게가 부동산이다. 부동산마다 재개발 상담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어, 머지않아 온 동네가 파헤쳐질 것만 같다.
성북동은 한 번 자리잡은 사람이 좀체 떠나지 않고 대대로 살아가는 서울에서도 드문 토박이 마을이다. 초등학교 행사에 가 보면, 교가를 따라 부르는 학부모들이 제법 되는 것도 부모와 자식이 같은 학교를 다닌 토박이 마을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나는 그곳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 밤새도록 어머니와 함께 맷돌을 돌리고, 아침이면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초두부를 한 그릇 먹고 등교했다. 이웃에 누가 살고, 그 집 제사가 언제인지까지 시시콜콜 다 아는 사람들이 살던 성북동,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뻗어 산으로 이어지던 그 길과, 오월 저녁 무렵이면 마당으로 움씰움씰 내려오던 아카시아 향내를 맡으며 자랐다.
돌아보면 성북동에서 보낸 내 사춘기 시절이 내게는 성장통의 시기였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의 아픔을 거치며 또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그 성장통의 시기는 돌아보면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제 아파트를 짓게 되면 그 모든 그리움들은 콘크리트 포장으로 덮여질 것이다. 거대한 자본은 결코 인간의 삶을 현상대로 놓아두질 않는다. 이제 성북동에는 비둘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마당을 둘러 피던 붉은 장미를 떠올리는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평가되는 세태를 성북동이라고 비켜갈 수는 없으리라. 이제, 콘크리트와 컴퓨터 게임으로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은, 내 나이쯤 되면 무엇으로 성장통의 그리움을 되살려 낼 수 있을까?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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