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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악에 담보 잡힌 영웅의 비극

등록 2005-12-25 21:08수정 2005-12-27 18:11

제다이 기사단의 영웅으로 태어났으나 악의 유혹에 무릎을 꿇었던 다스 베이더는 아들 루크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영웅의 희생이 비극적 서사로 완결될 때, 선은 그 존재 의미를 확인 받는다. <한겨레> 자료사진
제다이 기사단의 영웅으로 태어났으나 악의 유혹에 무릎을 꿇었던 다스 베이더는 아들 루크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영웅의 희생이 비극적 서사로 완결될 때, 선은 그 존재 의미를 확인 받는다. <한겨레> 자료사진
악의 하수인이 된 다스 베이더 마지막 죽음으로 선을 구원하다 선-악 균형자의 운명 풀어놓은 SF서사시 ‘20세기 신화’로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조지 루커스의 <스타워즈>

1895년 영화가 탄생하면서 곧 이어 나온 작품들 가운데 공상과학(SF) 영화가 눈에 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이 그 대표적 작품인데, 사람들은 공상을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영화에서 찾은 것이다. 그로부터 SF영화는 다양한 ‘현실들’을 제공하면서 철학적 사고를 자극하는 분야가 되었다.

1977년 처음 출시된 루카스의 <스타워즈>는 작가의 말대로 “여섯 개의 이야기로 된 한 편의 영화”로서 서구인들에게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SF 작품이다. 저명한 역사학자 매즐리시는 “<스타워즈>는 신화적 주제를 고전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영화이며,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비교할 만한 20세기의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영원토록 살아남을 영화들은 사실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영화들이다. 그런 영화들에는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지만, 겉으로만 보기에는 관객들이 어렸을 때 좋아하던 옛날 얘기 같아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타워즈>가 담고 있는 심오한 사상은 무엇일까?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 영화가 선과 악이 부딪치는 선명한 이미지 속에서 “인간의 행동을 통해 성취되거나, 부서지거나, 억압되는 생명의 힘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스타워즈>의 키워드 ‘포스(Force)’가 의미하는 것 또한 그런 ‘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철학자 마크 롤랜즈 역시, 각기 실재적이고 독자적인 원리로서 대립하는 선과 악을 이 작품의 주제로 본다.

하지만 이 정도로 사상의 심오함에 이를 수는 없다. 우리는 선과 악이 미묘하게 교섭하는 지점들을 잘 보아야 한다. 이 영화의 선악 개념은 악에 우선하는 선의 위상도 아니고, 동등한 자격으로 대립하는 선과 악의 관계도 아니다. <스타워즈>는, 주인공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에피소드 1, 2,3) 그리고 루크가 아버지 베이더와 대적하는 과정을 통해서(에피소드 4, 5, 6), 선과 악은 ‘형평적 상반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과 선의 투쟁에서 악은 선에 대해 항상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악은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면 그만이지만(즉 일관되게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지만), 선은 악에 대해서도 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둠과 밝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둠은 자기 자신 안으로 침잠할수록 더욱 어두워질 수 있지만, 밝음은 어둠조차도 밝혀야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다. 즉 자기 존재 이유를 충족시킬 수 있다.

악과 선이 형평적 상반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은 그들이 서로 맞설 때 악은 어드벤티지를 갖고 선은 핸디캡을 감수하는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에게는 싸운다는 것조차 악한 것이며, 설사 악을 굴복시키고 승리하더라도 타자의 굴복과 승리라는 성취조차 선의 본질은 아니다. 그렇다면 선은 악에게 항상 패할 것인가? 선은 어떻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의 비균형적 상반 관계의 비밀은 존재의 고통, 그 심연에 눈을 돌려야 알 수 있다. 선의 존재 의미는 ‘비극적 서사’로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은 악에게 희생물을 담보로 잡혀야만, 악해지지 않으면서도 악의 공세를 견뎌 낼 수 있고 악이 물러서게 할 수 있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김용석/영산대 교수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제다이의 오랜 전설에 의해 ‘포스’의 균형을 맞추어줄 인물로 예언된 바 있다. 하지만 악에 유혹된 그는 암흑의 황제에게 봉사하게 된다. 그러나 아들 루크를 구하기 위해 황제의 공격을 물리치고 자신은 죽음으로써 결국 죄과를 치른다.

아나킨은 제다이 기사단의 영웅으로 태어났으나 시스 제국의 봉사자 베이더로서의 삶을 살다가, 젊은 제다이인 자신의 아들을 구하고 영웅적 삶을 마감한 것이다. 아나킨-베이더의 희생은 선의 세계가 악의 공격을 막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잡혔던 불가피한 담보였던 것이다(다스 베이더의 철가면 뒤로 들리는 저 음산한 숨소리는 담보 잡힌 존재의 고통을 담고 있다). 그럼으로써 영웅의 비극은 마침내 선에 봉사하는 것이다. 영웅의 희생이 비극적 서사로 이행되어 그 완결을 볼 때, 우리는 악에 대해 항상 불리한 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가능성과 그 존재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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